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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갑질' 근절할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규제 최신 동향

학계·산업계는 공정위 개입에 비판적 입장…사적 구제 중요성도 갈수록 부각

2020.07.13(Mon) 10:50:01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아두면 모 있는 즈니스 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공정거래법이 규제하는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중 하나로 거래상지위 남용행위가 있다. 거래상지위 남용이란 자기의 거래상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를 말한다. 거래상지위 남용행위가 문제된 사례로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계약조건을 설정한 행위(96누11280), 무리하게 설정된 계약조건의 이행과정에서 과다한 지체상금을 부과한 행위(96누20), 대리점 양도 승인을 거절한 행위(97누19427) 등이 있다.

 

거래상지위가 우월한 사업자가 거래상대방 의사를 구속해 불이익을 강요하는 행위는 불공정거래행위로서 금지된다. 공정한 거래 질서와 자유로운 경쟁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에 관해 ‘현실의 거래관계에서 경제력에 차이가 있는 거래주체 간에도 상호 대등한 지위에서 법이 보장하고자 하는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에 대해 그 지위를 남용해 상대방에게 거래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시키고자 하는 데 취지가 있다’고도 판시했다(97누19427).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7대 공기업 공정경제 정착 및 확산을 위한 협약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규제는 1980년 12월 31일 공정거래법 및 경제기획원 고시의 제정에 의해서 시작됐다. 규제의 시작 시점에서 보듯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규제가 이루어짐으로써 그간 상당한 분량의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처분 사례가 쌓였고 관련 법리도 발달해왔다.

 

현재 각 분야별로 적용대상이 구체화된 하도급법·가맹사업법·​대규모유통업법·​대리점법 등이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법률은 모두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를 특정 분야에 한정해 규율하는 법률로서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의 규제사례와 법리 등을 차용해 제정됐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는 공정위 접수 사건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는데, 2011~2015년 위반유형별 사건접수 현황을 살펴보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접수된 4359건 중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사건은 843건을 차지했다.

 

다만 학계 일각과 산업계는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모든 거래에는 거래상지위의 격차가 있으므로,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로 규제하는 범위와 대상을 확정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위가 유사한 행위들 중 일부는 개입하고 나머지는 개입하지 않는 것은 사건 선정에 자의성이 반영됐고 그러한 태도 자체가 불공정하다. 또 공정거래법은 당사자들 간 개별 분쟁해결을 목표로 하는 법이 아닌데,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는 당사자들 간의 분쟁에 직접 개입해 공정거래법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공정거래위원회. 사진=임준선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갑질 근절’에 대한 기대감으로 공정위에 접수된 민원(신고) 건수가 폭증했다. 특히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한 2017년 하반기 공정위에 접수된 민원 등은 총 2만 4983건으로 전년 대비 50.2%나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기업들이 공정위 조사에 대비하느라 사업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을 정도고, 공정위는 민원 처리에 급급해 시장감시라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제를 야기한 제도적, 이론적 배경으로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업계에서는 ‘거래상지위 남용’을 ‘거지 남용’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점만 보더라도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인지 공정위에 법 위반행위의 적용 법조를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로 특정해 신고하면 민사사건으로 취급돼 정식 신고 사건으로 접수되지 않고, ‘민원에 대한 회신’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거래상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거나 ‘거래상지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권리의무 귀속관계, 채권채무관계 등과 같은 계약조항의 해석에 대한 다툼에 불과하다’는 이유다. 민원에 대한 회신으로 처리되는 경우에는 정식 사건번호가 부여되지 않고, 공정위 조사가 개시되지도 않는다. 공정위 조사를 희망해 신고를 제기한 당사자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모든 신고 사건에 대해 정식 조사절차를 개시하기에는 공정위 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므로 이 같은 관행이 단기간 내에 개선될 듯하지는 않다.

 

앞으로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는 어떻게 취급될까? 헌법재판소의 경우 출범 초기 기소유예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해 단기간 내 많은 사건을 확보했으나, 위헌심사제도가 자리 잡은 이후 기소유예 사건의 비중은 점차 축소됐다.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도 공정거래법의 기틀이 자리 잡은 지금에 와서는 시대적 사명을 다하여 퇴장하는 것일까?

 

헌법재판소는 출범 초기 기소유예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해 단기간 내 많은 사건을 확보했으나, 위헌심사제도가 자리 잡은 이후 기소유예 사건의 비중은 점차 축소됐다.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에 헌법불합치를 선고한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 모습. 사진=비즈한국 DB


그러나 갑을관계가 명확한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의 적용대상이 축소됐다거나 적용의 필요성이 낮아졌다고 볼 수 없다.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를 둘러싼 비판적 견해 논거 중 상당부분은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상 구제를 독점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법원과 조정 등을 통한 사적 구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비판을 극복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

 

학계에서는 불공정거래행위 등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를 신의칙 위반과 권리 남용 등으로 구성해 해당 법률행위의 효력을 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최근 대법원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의 사법상 효력이 무효는 아니더라도 거래상대방에게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판시한 바도 있다(2010다53457).

 

법원이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사안에서 법 위반행위 효력을 부정하거나 거래상지위를 보유한 사업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시킨다면, 굳이 공정위가 나서지 않더라도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의 효과적인 구제가 될 수 있다.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금전적인 배상을 원한다. 따라서 법원의 판결을 받는 것이 공정위 시정명령보다 실효적인 구제일 수 있다.

 

최근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에 관한 논문이 공정거래법 영역이 아니라 민사법 영역에서 발표되는 모습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거래상지위 남용행위가 있으면 공정위 신고와 민사상 소제기를 모두 검토해 봐야 한다. 더 복잡해진 세상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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