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989년 용산전자상가 구석에서 30만 원으로 시작해 11년 만에 332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현주컴퓨터’는 1990년대 벤처신화의 대표 주자로 불렸다. 당시 정부로부터 인터넷 PC보급업체로 선정되며 ‘국민 PC’로 불리기도 했다. 현주컴퓨터는 2001년 코스닥에 입성하며 성공 가도를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4년 후인 2005년 4월 24억 원의 어음을 갚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됐다.
3000억 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던 회사가 24억 원의 어음을 갚지 못하고 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무리한 사업 다각화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30만 원으로 시작한 현주컴퓨터의 탄생
현주컴퓨터 창업자 김대성 대표는 1989년 11월 단돈 30만 원으로 서울 용산전자상가 매장 한구석을 임대해 조립 PC 사업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당시 PC 수요층이 대학생인 것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는 직접 서울시내 주요 대학을 돌아다니며 ‘고사양 조립 PC를 다른 업체에 비해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홍보하며 벽보를 붙이고 다녔다. 1990년대 현주컴퓨터의 조립 PC는 120만~150만 원 정도였는데, 200만~300만 원에 달하는 타사 컴퓨터에 비해 저렴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현주컴퓨터는 대학시장을 장악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중견·중소 컴퓨터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와중에도 현주컴퓨터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김대성 대표는 당시 월 5000만 원이던 광고예산을 3억 원으로 올리고 인력을 대거 고용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시도했다. PC에 관심 많은 대학생을 상대로 컴퓨터 사용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공격적인 마케팅 덕에 1998년 현주컴퓨터는 48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2배에 달하는 매출이다.
현주컴퓨터가 급성장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1999년 정부가 주도한 국민 PC 사업 덕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국민 PC 사업은 컴퓨터가 없는 사람들에게 저렴한 컴퓨터를 공급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현주컴퓨터도 이 사업에 참여해 빠르게 성장했다.
현주컴퓨터는 김 대표의 공격적 마케팅과 정책에 힘입어 2000년 매출 3325억 원을 달성한다. 2001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하며 ‘벤처대박’의 성공 사례로 거명됐다.
#노트북, 인터넷 전화, 사이트 운영…현주컴퓨터의 몰락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대부분의 국민들이 컴퓨터를 갖게 되면서 PC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더 이상 PC 사업만으로 현주컴퓨터를 키워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김대성 대표는 사업다각화를 시작했다. 2001년 40억 원을 투자해 노트북 시장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노트북 시장은 이미 대기업이 선점한 터라 현주컴퓨터의 노트북에는 냉담한 반응만이 돌아왔다.
연 100억 원 넘는 광고비를 집행했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이에 PC 재구매 시 가격의 40%를 환불해주는 ‘파워리턴’ 정책을 내놓았는데, 현주컴퓨터의 재정을 악화하는 데 일조했다. 현주컴퓨터는 2002년 2900억이 넘는 매출을 달성하고도 8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당시 김 대표는 인터넷 전화, 사이트 운영 사업에 손을 뻗었지만 실패했다. 또 코스닥 상장 공모자금으로 신사옥을 짓고 이를 담보로 80억 원을 대출받아 테마상가 분양에도 뛰어들었지만 이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사업 다각화에 실패한 김 대표는 회사 인력을 감축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했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직원들의 신뢰를 잃게 했다.
결국 김 대표는 2004년 2월 회사를 떠났다. 현주컴퓨터는 2005년 4월 부도로 상장폐지 된 후 2007년 1월 최종 파산됐다.
#김대성 대표의 잇단 실패와 이후 행적
김대성 대표는 현주컴퓨터를 떠난 뒤 D&S 글로벌이란 법인을 세운 뒤 전동 스쿠터(바이키키) 사업에 진출했다. 2005년에는 현주컴퓨터 연수원을 짓기 위해 마련한 강원도 춘천 부지에 ‘한마음리조트’를 지으며 리조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당시 김 대표는 “전동스쿠터 사업과 한마음리조트에서 흑자를 낸 뒤 건설업에 진출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재기를 꿈꿨다. 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사업에서 손을 떼는 듯했다.
사람들에게 잊혀가던 김 대표는 2006년 12월 ‘이안컴퓨터’의 대표로 복귀를 선언했다. 당시 김 대표는 이안컴퓨터 홈페이지를 통해 “현주컴퓨터를 떠난 뒤 많은 후회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현주컴퓨터에 대한 애착과 연민 등으로 결국 다시 PC 사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김 대표는 2009년 11월 4일 조선일보에 전면광고를 내기까지 했다. 자신의 약력을 나열하며 전문경영인으로 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전면광고에 힘입어 2010년 1월 5일 LED 업계인 화우테크놀러지에 국내영업본부장으로 영입됐다. 화우테크놀러지는 나중에 동부그룹에 인수되어 DB라이텍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김대성 대표의 이후 행적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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