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창업주인 김준기 회장의 사임으로 3년간 총수 공백 사태를 겪던 DB그룹이 이달 1일부로 김남호 회장이 취임하면서 2세 경영시대가 열렸다.
이제 재계의 관심사는 통상적인 재벌그룹 후계자 승계과정과 다른 특이한 과정을 밟아 온 김남호 회장이 아버지 김준기 전 회장의 경영 신화를 이어나갈지에 모아지고 있다.
고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장남인 김준기 전 회장은 재계에서 원조 청년 신화로 꼽힌다. 1944년생인 그는 불과 25세였던 1969년 그룹의 모태인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창립했다.
이후 그는 1971년 동부고속을 창립한 데 이어 1970년대 중동 (서남아시아) 붐에 편성하는 전략을 통해 사세를 급속히 성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김 전 회장은 1980년 한국자동차보험(현 DB손해보험)을 인수하면서 동부그룹을 형성했다.
김 전 회장은 설립 31년 만인 2000년 동부그룹을 재계 10대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동부그룹은 확장을 위한 무리한 차입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결국 동부건설, 동부제철(현 KG동부제철), 동부팜한농(현 팜한농) 등 비금융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했다. 올 5월 1일 현재 DB그룹은 재계 39위로 외형이 축소된 상태다.
김 전 회장은 성범죄 혐의와 건강 악화 등 개인적으로 큰 부침을 겪고 있다. 그는 2017년 9월 자신의 여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되면서 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23일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올해 4월 1심 재판에서 김 전 회장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고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 수강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에 각 5년간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김 전 회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그는 2017년 사임 당시 외아들인 김남호 부사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바로 승계하지 않고 관료 출신인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회장으로 선임하는 과도기 형태를 택했다. 이근영 회장이 취임한 같은 해 11월 그룹 명칭은 현재의 DB그룹으로 변경됐다.
이번 김남호 회장의 선임은 이근영 회장의 퇴임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1937년생으로 올해 83세인 이근영 회장은 고령으로 인해 지난 6월말 그룹 경영진에게 퇴임의사를 공식화 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강력한 대처를 위해 대주주 책임 경영 명분으로 김남호 신임회장이 취임하게 됐다. 김 회장은 내년 정기주주총회를 거쳐 그룹 제조 서비스 부문 지주회사 DB Inc.의 이사회 의장도 겸임할 예정이다.
김남호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국내외 경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중임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DB를 어떠한 환경변화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속성장하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각 사 경영진과 임직원들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상품 기획, 생산, 판매, 고객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 컨버전스 구축과 온택트(Ontact·온라인 연결) 사업역량을 강화해줄 것”을 당부했다.
1975년생인 김남호 회장은 10대 시절인 1991년부터 계열사 지분을 승계하기 시작해 20년에 걸쳐 그룹 승계에 필요한 지분 확보를 일찌감치 마무리했다 김 회장은 금융계열사들을 지배하는 DB손해보험(9.01%)과 비금융계열사들을 지배하는 DB Inc.(16.83%)의 최대주주이다. DB손해보험은 DB생명, DB금융투자, DB캐피탈 등을, DB Inc.는 DB하이텍과 DB메탈 등을 지배하고 있다.
지분 승계를 조기에 매듭지은 것과 달리 김남호 회장의 경영 수업과 승계 과정을 점검해 보면 다른 재벌그룹 후계자 승계과정에 비해 특이한 점이 많다.
통상적으로 재벌그룹은 후계자가 입사하면 기획이나 재무 등 경영 현안과 밀접한 부서에 배치해 경영권 수업을 진행한다. 이후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후계자에게 계열사 대표를 맡겨 경영 실무를 경험하게 한 후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김남호 회장은 2009년 동부그룹에 입사한 후 장기간 경영 현안과 밀접한 부서라 할 수 없는 업무를 담당했고 부서나 조직을 이끌어 본 경험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
김 회장은 2009년 1월 동부제철에 입사해 아산만관리팀에서 근무했다. 이후 동부제철 인사팀 차장으로 자리를 옮겨 2012년 1월 인사팀 부장을 맡았다. 김 회장은 2013년 1월 동부팜한농(현 팜판농)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5년 4월부터 동부금융연구소(현 DB금융연구소)로 옮겨 2017년 1월 상무로 승진한 데 이어 2018년 1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DB금융연구소는 DB그룹 각 금융계열사들의 임원과 실무자들이 파견돼 계열사 시너지와 미래성장 전략을 연구하는 곳이다.
DB금융연구소 재직 시절에도 김 회장은 대부분 기간을 팀원으로 근무하다가 최근 보험·금융 혁신TF를 이끌던 중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게 됐다.
김남호 회장이 다른 재벌그룹 후계자와 다른 과정을 밟아 왔다는 지적과 관련해 DB그룹은 김 회장이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아 왔고 경영성과를 보여 왔다고 강변했다.
DB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이 주요 계열사에서 생산, 영업, 공정관리, 인사 등 각 분야 실무경험을 쌓으며 경영 참여를 위한 준비과정을 밟았다”며 “김 회장은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동부팜한농, 동부대우전자 등을 매각하는 작업에 깊이 관여해 금융·IT 중심으로 그룹을 재정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아울러 김 회장은 최근 DB메탈의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 유상증자를 이끄는 등 경영정상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김 회장은 최근까지 DB금융연구소에서 보험·금융 혁신TF를 이끌며 영업·마케팅 다변화, 자산운용 효율화, 해외시장 진출을 견인함으로써 날로 악화되는 업황 속에서도 DB금융 부문이 안정성, 수익성, 성장성 등 모든 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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