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풍력발전 사업 허가 과정에 국산 기자재 사용을 유도한다는 원성이 업계에 만연한 와중에 정부출연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가 여기에 힘을 실으며 불만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국산 기자재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풍력산업 전반이 정체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허가 과정에서 이런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주장해 파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자 “국산 사용 유도” 주장에 산업부 “허가에 영향 없어”
논란의 단초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6개 발전공기업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신재생에너지 공급비용 가격전망 분석 연구’ 보고서다. 6월 발표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육상풍력의 LCOE(Levelized Cost Of Electricity·균등화발전원가)는 국산 터빈이 1KWh당 175.5원, 외산 터빈이 164.8원이다. 균등화발전원가는 발전에 필요한 총 비용을 전체 발전량으로 나눈 값이다. 이 값이 높을수록 전력시장에서 경쟁력이 낮은 것으로 본다.
보고서는 육상풍력 사업에 국산 터빈을 사용했을 시 적정 고정가격 단가는 1kWh당 175.5원, 외산 터빈 사용 시 적정 고정가격 단가는 164.9원으로 책정했다. 고정가격 계약을 체결할 때 국산 터빈과 외산 터빈 사용 사업의 단가를 다르게 산정한 것인데, 국산 터빈을 사용할 경우 사업자가 받는 단가가 더 높다.
문제는 풍력발전 사업의 핵심인 터빈 기술은 국산이 외산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는 것. 풍력산업협회 관계자는 “풍력발전을 해외에서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기술력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발전기를 많이 파는 해외의 유명 회사들은 일 년에 몇천 대씩 공급하고 설치하기 때문에 국내에 비해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 설치 가능한 라인업도 훨씬 다양하다”고 전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산 기자재 사용 여부가 허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업부 재생에너지산업과 관계자는 “전기위원회 허가 기준에 그런 내용이 없다. 풍력추진단 사전 검토 단계에서 개별 사업에 ‘국산품이 이렇다’는 식으로 국산 기자재를 장려할 순 있지만, 허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풍력발전 사업자 A 씨는 지난해 하반기 산업부에 접수한 사업이 아직 승인이 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착공일이 임박한데도 환경부와 산림청을 통과한 사업이 산업부에서 막힌 것이다. A 씨는 “산업부가 국산 기자재를 쓰도록 압력을 넣으며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 ‘외산 터빈을 쓰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냐’는 식으로 말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보고서가 나오면 이를 기준 삼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라는 말도 했다”고 주장했다.
풍력발전 사업자 B 씨도 “산업부가 국산 기자재를 쓰도록 직접적으로 지시를 하진 않지만 유도를 한다. 경쟁 입찰이나 공개 제안을 통해 결정하는데도 사실상 승인 마지막 단계인 산업부에서 이렇게 나오면 갑갑하다. 발전공기업에서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국산 기자재를 쓰도록 유도한다”고 증언했다.
보고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B 씨는 “정부 부채 문제로 가뜩이나 세금을 통해 발전단가를 정산해주는 방식으로 산업이 굴러가는데, 정부가 비효율적인 자본재를 사용하게 하면서 산업을 굴리는 꼴 아닌가. 이를 기반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시장 경제에 맞지 않다. 국산과 외산 기자재에 차등을 두는 것에 대해 산업부 안에서도 논란이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업계는 보고서가 풍력사업 승인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풍력산업협회 관계자는 “국산 기자재 육성은 아직 논의만 되고 있는 상황으로 안다. 법령이나 지침이 개정된 건 없다. 국산과 외산 기자재에 차별을 두는 건 WTO에 제소될 수 있는 사항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풍력업계 관계자는 “개별 사업의 허가를 내고 시장을 키워야 국내 터빈 기자재 생산업체들에도 기회가 많아질 텐데…. 지금은 답을 정해놓고 억지로 국산을 밀어주는 꼴이다. 이대로라면 결국 시장이 정체될 거라고 본다. 돈이 안 된다면 자본이 왜 신재생 산업에 투자를 하겠나.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말하지만 부처에서 이와 반대 기조로 가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국산 터빈 경쟁력, 아직 외산에 비해 부족
발전 사업자들은 국산 터빈을 사용할 경우 비용 부담을 오롯이 사업자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자 B 씨는 “경쟁입찰을 해보면 1MW당 국산과 외산 터빈의 가격 차이가 1억 원 넘게 난다. 유럽 업체 터빈은 9억 원에 공급하는 걸 국내 업체는 10억 원에도 못 맞춘다. 기술력의 차이도 분명히 있다. ‘이렇게 진행할 거면 국가가 직접 하지’라는 원망도 나온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업자 C 씨 또한 국산 기자재 사용의 어려움을 주장했다. C 씨는 “실제 외산 터빈의 핵심 부품을 보면 기둥(타워) 등 국산 제품이 많이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 정부 기조를 알기 때문에 외국 업체도 이를 의식해 국산 부품으로 교체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도 산업부 관계자는 ‘메이커가 중요하다’고 했다. 현장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을 공언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신재생에너지 전력생산량을 2030년 20%까지 늘릴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산업부가 발표한 ‘환경과 공존하는 육상풍력 발전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풍력에너지 보급 규모는 2018년 168MW(목표 대비 84%), 2019년 상반기에는 133MW(목표 대비 20.4%)에 그쳤다(관련 기사 “친환경에너지 확대” 공언에도 풍력발전 속도 못 내는 까닭).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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