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전 세계 200여 곳의 기업과 연구소가 뛰어든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완치자의 혈액을 이용한 혈장 치료제가 주목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완성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기 때문. 특히 신천지(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대구교회 신도들이 혈장을 공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점은 많다. 과연 이 치료제가 나오면 중증 환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또 혈장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신천지 신도들의 혈장 공여만으로 공급이 충분한지, 혈장 공여자들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혈장도 수입이 가능한지 등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적잖다. 혈장 치료제를 둘러싼 여러 의문을 들여다봤다.
#혈장 치료제란?
혈장 치료는 완치자 혈액에서 채취한 혈장을 감염자에게 주입하는 치료 방식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회복한 환자의 혈장에는 코로나19를 무력화하는 항체가 형성되는데, 이 혈장을 감염자에게 주입해 바이러스 저항력을 기르는 원리다. 혈장 치료제는 완치자 혈액에서 채취한 혈장을 고농도로 농축한 의약품이다. 혈장을 약제처럼 정제해서 만든 것이다.
혈장 치료 효과는 어느 정도 검증됐다. 국내에서는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최준용 교수팀이 코로나19 중증환자 2명을 대상으로 완치자의 혈장을 주입한 결과 혈장치료를 받은 두 명이 모두 완치되고 그중 한 명이 퇴원했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4월 대한의학회지에 실리면서 주목받았다. 완치자의 혈장을 이용한 치료는 처음이 아니다. 메르스·사스 사태 때도 혈장 치료가 활용됐다.
국내에서 혈장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기업은 GC녹십자다. GC녹십자는 질병관리본부의 코로나19 혈장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 과제에 우선순위 협상대상자로 선정돼 3억 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 개발을 진행 중이다. GC녹십자는 7월 중 인체에 직접 투여하는 임상2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 치료제를 상용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만약 GC녹십자가 코로나19 혈장 치료제를 개발하면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신천지 4000여 명 혈장 공여, 아직은 ‘검토중’
질병관리본부 신종감염병매개체연구과에 따르면 30일 기준 혈장 공여자로 등록된 사람은 229명, 혈장 채혈이 완료된 사람은 88명이다. 혈장 치료제는 혈장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채혈된 혈장의 수가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신천지 대구교회가 신도들의 혈장 공여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혈장 치료제 개발에 속도가 붙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회복한 환자는 4000여 명이다.
하지만 신천지 신도들의 혈장 채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 신종감염병매개체연구과 관계자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아직 한 명도 채혈이 진행되지 않았다. 녹십자·적십자와 함께 신도들 채혈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혈장성분헌혈을 진행하는 의료기관은 고려대 안산병원·대구 동산병원·경북대병원·파티마병원 등 네 곳뿐인데, 병원에 4000여 명에 달하는 신도들이 한 번에 오면 방역에 빈틈이 생길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신도들의 혈장 공여는 치료제 개발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다만 ‘질 좋은’ 혈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상황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설대우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는 “4000여 명의 혈장 공여자들이 나타났다고 하지만 쓸 수 있는 혈장은 20개 정도에 불과하리라 본다. 질병을 앓고 있거나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공여할 수 없다. 이들의 혈장에는 중화항체 양이 너무 적어 품질이 낮아 못 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여자 선별은 꽤 까다롭다. 질병관리본부가 4월 발표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완치자 혈장채혈 지침’을 보면 혈장 공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코로나19 완치에 따른 격리해제 후 14일 이상이 경과한 사람 중 핵산증폭검사, Anti-HTLV 검사 등 결과에서 모두 음성이 나온 17~69세다. 남자는 50kg, 여자는 45kg 이상에 혈색소 수치 12g/㎗ 이상 등 최소기준도 지켜져야 한다.
#혈장 공여 보상은 없다…수입도 불가능
지난 27일 SNS에서는 혈장 공여자들을 둘러싸고 흥미로운 논쟁이 일었다. “세금으로 치료비를 지원받고 정부에서 완치자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부탁하는데 혈장 제공을 거절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는 주장과 “적절한 보상 없이 공짜로 혈장을 받는 기업이 더 몰염치하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맞섰다. 이 논쟁의 밑에는 만약 혈장 공여자들에게 보상이 이뤄지면 혈장 치료제 개발이 빨리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은근히 깔려 있다.
질병관리본부 확인 결과, 보건당국에서 완치자에게 직접 연락해 혈장 공여 의사를 묻지는 않으며, 혈장 공여자들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추후 보상책이 검토될 가능성도 전무하다. 혈액관리법 제3조에 따라 금전·재산상 이익 또는 그 밖의 대가적 급부를 받거나 받기로 하고 자신의 혈액을 제공하거나 매매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GC녹십자 관계자는 “매혈이 법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정부 독려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물론 보상이 있다면 혈장 공여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 다만 혈장 치료제는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제약을 갖고 있다. 치료제는 품질이 모두 똑같아야 하는데 사람의 혈장은 성질이 균일하지 않아 확보된 혈장을 한데 모아 균일한 의약품으로 생산해내기 부적합하다. 만약 한 완치자가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등 공여자로 적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 치료제 개발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 때문에 한 완치자의 혈장을 감염자의 치료에 쓰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어 ‘혈장 치료제’보다는 ‘혈장 치료’가 지금 상황에서 적합한 표현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다.
국내 코로나19 환자 특성도 부정적 전망에 힘을 싣는다. 설대우 교수는 “전체 환자 만몇천 명 중 중증 이상 환자는 10~1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중증 환자의 절반 정도가 사망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사람들이 혈장을 공여하는 것도 아니다”며 “우리나라는 빠른 진단과 조기 치료로 중증 환자 발생률이 낮다”고 설명했다.
혈장은 수입도 어렵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가 매혈을 금지하는데, 이를 정부가 사들이는 행위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해외에서 확진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와중에 해외 국가가 우리나라에 혈장을 제공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몇몇 전문가들이 혈장 치료제를 향한 지나친 기대를 거둬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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