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아젠다

[사이언스] 가모프가 잃어버린 '우주의 비밀을 품은 동전'

"태초의 우주는 고밀도 고온도의 작은 점" 예측했지만 관측자들만 조명

2020.06.29(Mon) 10:45:43

[비즈한국]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더 이상 정적이지 않은, 팽창하는 세상이라는 것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우주 시공간 자체가 오븐 속 빵 반죽처럼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관측으로 입증되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과, 그런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먼 과거 한 점에 우주가 응축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다.

 

천체물리학자 조지 가모프는 동전을 잃어버렸다. 그 동전은 그냥 동전이 아니었다. 우리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위대한 비밀을 품고 있던 동전이었다. 그 동전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었을까? 동전은 결국 다시 찾았을까?

 

천문학자 르메트르는 현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먼 과거 태초의 우주는 작은 한 점이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먼 옛날 한 점에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모여 있었고 그 점이 순간 불꽃놀이처럼 폭발해 우주가 탄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르메트르의 불꽃놀이 우주 모델은 마치 성경의 창세기를 연상시키는 문학적인 상상력으로만 여겨졌다. 르메트르는 순전히 수학을 통해 예측한 것이었지만, 그가 가톨릭 사제였기에 분명 종교적인 고정관념이 반영된 주장일 것이라는 비판이 함께했다. 

 

물리학자 가모프. 가모프는 앞서 우주가 팽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러시아 물리학자 프리드만의 제자였다. 사진=Smithsonian institution

 

머나먼 과거, 우주가 한 점이었을 것이라는 이 ‘미친’ 생각은 이후 또 다른 아웃사이더 조지 가모프에 의해서 재발견된다. 수차례 아내와 함께 소련을 탈출하려 시도했던 가모프는 1933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물리학회 참석을 핑계로 여권을 발급 받아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미국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뒤 본격적으로 팽창하는 우주 모델의 시간을 거꾸로 되감아가는 연구를 시작했다. 

 

가모프는 르메트르 말대로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되감으면 먼 과거 작은 한 점으로, 아주 높은 밀도와 온도로 압축되어 있는 우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모프가 보기에 빅뱅 직후 아주 뜨거운 우주의 상태는 고온 고밀도의 별 내부 상황과 유사했다. 뜨겁고 빽빽한 별 내부와 마찬가지로 태초의 우주에서도 가벼운 원자핵들이 빠르게 부딪치고 융합하는 핵융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빅뱅 핵융합을 통해 초기 우주의 원소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역사적인 논문이다. 사실 당시 가모프는 지도교수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했는데, 1저자인 학생의 동의 없이 논문 저자의 이름을 재밌게 구성하기 위해서 실제 연구에 기여하지 않은 유명 천문학자 한스 베테의 이름을 끼워 넣었다. 자기가 지도한 학생 앨퍼와 베테, 그리고 자기 이름을 함께 올려 그 유명한 알파-베타-감마 논문이 발표되었다. 사진=https://bit.ly/3eKIcUE

 

빅뱅 직후 우주에서 처음으로 원자핵끼리 융합하며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지는 연금술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빅뱅 핵융합이라고 부른다. 가모프는 태초의 연금술을 통해 태초의 우주에서 수소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헬륨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빅뱅 핵융합을 통해 우주 속 헬륨은 우주 전체 물질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는 놀랍게도 현재 우주를 구성하는 헬륨의 비중, 25퍼센트와 너무나 잘 들어맞았다. 오늘날 우리 우주를 채우고 있는 가장 많은 성분인 수소와 헬륨의 대부분은 빅뱅 직후부터 존재한, 우주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생존한 빅뱅의 산물인 것이다. 

 

가모프가 상상한 뜨거운 불지옥과 같은 빅뱅 순간의 우주는 아직 질서, 코스모스가 찾아오기 전인 혼돈, 카오스의 세계였다. 온도와 밀도가 너무 높아서 입자들이 서로 뭉치지 않고 잘게 쪼개진 채 빠르게 싸돌아다녔다. 작은 입자들이 잔뜩 들끓고 있는 이 스프와 같은 우주 속에서는 빛조차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었다. 빛이 조금만 날아가려고 하면 얼마 안 가서 바로 다른 입자에 부딪혔고, 다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려고 하면 또 다른 입자와 부딪혔다. 빅뱅 직후 갑갑한 우주에 갇혀 있던 빛은, 만원 지하철에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출퇴근 길 우리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가모프는 이 뜨거운 입자들의 스프와 같은 한 점에 모여 있던 태초의 우주, 원시 입자를 보고 모든 것의 기원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아일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날을 기념해 가모프는 친구들과 함께 아일럼 술병과 함께 이과 유머스러운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가모프가 초기 우주의 잔열 흔적에 관해 연구했던 동료들과 함께 찍은 재치 있는 사진. 아일럼 술병에서 귀신처럼 나오는 얼굴이 가모프다. 조지 가모프가 1949년 로스 알라모스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처음 공개한 사진이다.

 

빅뱅 직후 우주가 계속 팽창하면서 10억 도에 육박하던 우주의 온도는 서서히 식어갔다. 빅뱅 이후 38만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입자들의 스프는 식어갔다. 오랫동안 방치한 스프가 딱딱하게 말라가면서 덩어리지고 갈라지듯, 차갑게 식기 시작한 우주 스프 역시 입자들이 응어리지고 큰 원자로 뭉치면서 그 사이로 빛이 새어나갈 수 있는 틈새가 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한데 뒤섞여 있던 우주 속 물질과 빛이 분리, 디커플링이 진행된 순간이다. 그리고 이 순간 우주 역사상 처음으로 태초의 빛줄기가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왔다. 우주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절대온도 2.7도에 해당하는 아주 미미한 잡음이 우주 전역에 퍼져 있다. 바로 그 우주배경복사를 WMAP 위성으로 관측한 사진이다. 아주 미세하게 국지적으로 온도가 불균일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우주배경복사는 거의 완벽에 가깝게 균일한 온도 분포를 보인다. 사진=위키미디어/NASA

 

이후로도 꾸준히 우주는 팽창을 이어갔다. 최초의 빛 물질 분리 시기에 새어나온 빛도 계속 팽창하는 우주의 시공간과 함께 파장이 길게 늘어졌을 것이다. 그 순간 퍼져나온 빛은 우주 사방으로 고르게 퍼져나가기 때문에, 사방에서 고르게 비슷한 세기로 그 흔적이 관측돼야 한다. 

 

따라서 이 우주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는, 빅뱅 직후 지금까지 차갑게 식어버린 빛의 추억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정말로 오래전 우주가 작고 뜨거운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는, 르메트르와 가모프의 미친 생각을 입증할 수 있다. 바로 빅뱅 직후 뜨거웠던 우주가 차갑게 식어왔다는 증거, 거의 다 식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주 미세하게 남아 있는 빅뱅의 잔열을 느껴보는 것이다. 

 

가모프는 현재 우주의 온도가 절대온도 약 5도 수준으로 차갑고 고르게 식어 있을 것이라 계산했다. 이는 섭씨로 표현하면 약 -268도의 아주 낮은 온도다. 이렇게 낮은 온도라면 그 빛은 에너지가 너무 작아서 파장이 아주 긴 극초단파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주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는, 우주의 배경음악과도 같은 이 우주의 잔열을 우주의 배경복사(CMB)라고 부른다. 

 

가모프의 놀라운 추론 덕분에, 망상으로만 여겨졌던 르메트르의 불꽃놀이 가설은 실제 관측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실험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제 우주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이론가들의 손에서 관측가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물리학자들이 또 다시 새롭게 던진 이론적인 ‘헛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관측천문학자들의 거대한 전파 안테나가 고개를 들어 우주를 담기 시작했다. 

 

1960년대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미미한 우주배경복사를 주워 담는 시도가 준비되고 있었다. 프린스턴의 물리학자 제임스 피블스와 로버트 디케는 학교 건물 옥상에 작은 전파 안테나를 설치하던 중이었다. 일정이 예정보다 지연되었지만, 곧 사방에서 고르게 쏟아지는 전파 신호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물리학자 제임스 피블스. 피블스는 빅뱅 우주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작년 외계행성을 발견한 천문학자들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나눠가졌다. 사진=Princeton university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프린스턴 연구소로 예상치 못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한 곳은 천문학과도 물리학과도 아닌 학교와 전혀 상관없는 인근 벨 전화 연구소였다. 벨 연구소의 엔지니어들이 뜻밖에도 우주배경복사로 의심되는 신호를 발견했다며 확인해줄 수 있겠냐는 문의 전화였다.

 

빅뱅 직후 우주로 퍼진 우주의 잔열을 최초로 확인하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디케는 이 슬픈 소식을 듣자마자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 우리 망한 거 같은데.”  

 

곧바로 프린스턴의 물리학자들은 벨 연구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자신들보다 먼저 우주의 잔열을 포착한 두 엔지니어 아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이 기다리고 있었다. 

 

벨 연구소의 안테나로 우연히 우주배경복사의 흔적을 발견한 펜지아스와 윌슨. 그들 뒤에 찍힌 커다란 안테나가 바로 우주배경복사를 포착한 안테나다. 사진=Bell labs

 

펜지아스와 윌슨은 1958년부터 벨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뉴저지에 있는 15미터 크기의 거대한 소라 껍데기 모양의 홈델 혼 안테나를 활용해 통신 위성에서 날아오는 미미한 신호를 어떻게 하면 더 강하게 증폭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있었다. 천문학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연구였다. 사실 둘은 우주의 기원을 밝혀내겠다는 거창한 목표에는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방에서 계속 쏟아지는 미미한 노이즈로 골머리를 앓았다. 일단 잡음이 들리지 않아야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을 텐데 계속 하늘 전역에서 노이즈가 잡혔다. 인근 도시에서 새어나오는 생활 전파 잡음일까 싶어서 뉴욕 반대편으로 안테나를 돌렸지만 노이즈는 여전했다. 

 

날씨도 상관없었다. 심지어 커다란 안테나 내부 깊숙한 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비둘기를 쫓아내고 비둘기 똥까지 닦았다. 안테나를 아예 다 해체하고 다시 짓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노이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기기 결함도, 비둘기 똥 때문도 아니었다. 

 

지울 수 없는 그 잡음은 단순히 은하수 별이나 가스에서 새어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먼 우주 그 자체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 미미한 전파 잡음은 거의 절대온도 3도에 가까운 아주 미미하고 차가운 신호였다. 놀랍게도 이는 앞서 이론가들이 예측한 우주배경복사의 세기와 잘 들어맞았다. 

 

당시 그 신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지 못했던 두 엔지니어는 잡음을 없애보려고 고생하고 있었지만, 우주 그 자체에 녹아 있는 잡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뒤이어 프린스턴의 연구진도 서둘러 안테나를 완성했고, 이들이 발견한 것과 같은 우주배경복사를 확인했다. 프린스턴 연구팀이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빅뱅의 증거를 발견한 영광의 주인공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빅뱅 우주론이 이야기하는 우주의 진화 과정을 담은 그림. 우리가 빛을 통해 관측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우주의 모습은 바로 빅뱅 직후 38만 년이 지난 시점에 물질로부터 분리되어 퍼져 나온 태초의 빛, 우주배경복사의 모습이다. 그보다 더 이전의 우주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빛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암흑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진=NASA

 

더 재미있는 점은, 우주배경복사를 처음 포착한 윌슨은 사실 빅뱅 이론을 부정한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의 정상 상태 우주론을 배웠던 인물이란 점이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계속 물질이 새롭게 만들어져 우주의 밀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정상 상태 우주론은 지금은 폐기된 이론이다. 실제로 당시 윌슨은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전파 잡음이 정상 상태 우주론이 아니라 빅뱅 우주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라는 사실에 약간 불편해하기도 했다. 

 

어쨌든 1978년 펜지아스와 윌슨은 우주에 남아 있던 균일한 잔열의 흔적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먼저 수학적으로 우주배경복사의 존재와 온도를 정확하게 예견한 가모프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1967년 텍사스에서 열린 제4회 상대론적 천문학학회에서 가모프는 자신의 예측이 정확하게 관측으로 검증되었으나 다른 사람들만 주목받는 현실에 대해 의미심장한 소회를 남겼다. 

 

“내가 동전을 잃어버리고 누군가 동전을 찾았다고 해서 그 동전이 원래 내 것이었다고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나는 분명 그들이 동전을 찾은 그 자리에서 동전을 잃어버렸습니다.” 

 

가모프가 소중하게 간직했지만 안타깝게도 잃어버렸던 동전, 그리고 우연히 또 다른 이들이 발견해 가모프 대신 세상에 공개한 동전, 바로 그 동전은 우리 우주가 지금으로부터 130억 년 전 지갑 속 동전보다 더 작은 크기의 세상이었다는 놀라운 비밀을 품고 있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핫클릭]

· [사이언스] 돛단배로 광속 여행, 우주 대항해시대가 열린다
· [사이언스] 마침내 민간 유인우주선, 인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 [사이언스] 오늘 밤에도 소행성이 지구에 스치운다
· [사이언스] 30번째 생일 맞은 허블 우주망원경의 비밀 셋
· [사이언스] '자가격리 끝판왕' 화성탐사 우주인들 이야기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