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류 문명은 수많은 질병을 정복했지만 여전히 각종 희귀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적지 않다. 질병은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21세기 글로벌 시장에서 신약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요 제약사들은 과연 어떤 신약을 준비하고 있을까. 또 반대로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은데도 쉽게 신약이 나오지 않는 배경은 뭘까. 비즈한국은 국내외에서 높은 관심을 받는 신약을 소개하고 개발 현주소와 전망을 알아본다.
“약을 쓸 만큼 써 봤는데 발작이 멈추지 않고 차도가 없던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이 있다는 게 문제죠.” 뇌전증 환자를 많이 접한 강성석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대표는 환자들 사이에서 대마성분 의약품 섭취 허가에 대한 갈증이 컸던 핵심 요인으로 ‘치료제 내성에 대한 미충족 수요’를 꼽았다. 지난 2018년 12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료용 대마법)이 개정되면서 의료 목적의 대마성분 의약품 섭취가 가능해졌다. 대마성분 의약품의 주 수요층은 뇌전증, 그 중에서도 난치성 뇌전증 환자다.
지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뇌전증 치료제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를 허가받은 SK바이오팜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난치성 뇌전증 환자 치료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어서다. 다음 달 2일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앞둔 SK바이오팜을 둘러싼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24일 SK바이오팜의 공모주 일반청약 경쟁률은 323.02 대 1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마감했다. 주식을 사기 위한 청약 증거금은 30조 9889억 원이었는데, 이는 2014년 제일모직이 세운 30조 653억 원을 뛰어넘는 액수다.
#UCB제약 지배 시장에 균열 일으킬까
뇌전증은 뇌신경세포의 일시적이고 불규칙한 이상흥분현상에 의한 발작 증상이 반복되는 질환이다. 과거 간질이라 불린 뇌전증은 불치병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그리스어 어원이 ‘악령에 영혼이 사로잡힌다’는 뜻을 지닌 점도 이 같은 오해를 부추긴다. 그러나 뇌전증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시도가 이어지면서 이제 뇌전증은 증상 완화와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 되고 있다.
현재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효과 대비 부작용이 심했던 1세대 약물과 부작용이 개선된 2세대 약물을 지나,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3세대 약물 시장으로 넘어가는 양상이다. 특히 3세대 치료제로는 다국적 제약사인 UCB제약의 브리비액트(성분명 브리바라세탐), 빔팻(성분명 라코사미드) 등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빔팻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빔팻은 2018년 기준 1조 5000억 원대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기존 치료제가 발작 증세를 완화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면, SK바이오팜은 성인 부분 발작 증세의 완치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SK바이오팜은 지난 5월 11일 엑스코프리를 미국 시장에 출시하며 빔팻의 독보적 위치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11월 미국신경과학회 공식 학술지 ‘란셋 뉴롤로지(The Lancet Neurology)’에 게재된 엑스코프리의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엑스코프리를 투약한 그룹의 발작 빈도가 위약 투여군보다 발작 빈도가 낮아졌다. 최대 20% 환자들에게서 유지 기간 동안 발작이 발생하지 않는 ‘완전발작소실’이 달성됐다.
#국내 시장 진출 전 미국에서 처방 실적 높여야
미국 뇌전증 치료제 시장에서 SK바이오팜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SK바이오팜은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는 지난 15일 온라인으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엑스코프리가 출시된 지 한 달밖에 안 됐지만 처방률이 예상치를 상회하고 있다”며 “엑스코프리는 부분 발작 치료제로 승인받았지만 오프라벨로 전신 발작에도 처방된다. 진행 중인 전신 발작 임상시험을 통해 2023~2024년에 추가 적응증 확대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SK바이오팜이 국내 뇌전증 치료제 시장 진출 시점에도 관심이 쏠린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당장 출시할 계획은 아니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내 시장에도 도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인구가 많은 미국에서 치료제 수요가 더 많고, 미국에서 약을 허가받으면 이후 우리나라에 진출하기 용이하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내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외국 제약사가 신약을 내놓고 국내 제약사가 동일 성분의 제네릭(복제약)을 뒤따라 출시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내에서도 SK바이오팜은 신약 케프라(성분명 레비리타세탐)와 브리비액트로 국내 원외처방시장 점유율을 높인 UCB제약과 경쟁해야 한다. 향후 SK바이오팜이 신경질환 전문의들의 치료제 선택을 바꿀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삼진제약·동아에스티·명인제약·한미약품 등 국내 제약사가 출시한 제네릭들과도 경쟁해야 하지만, SK바이오팜이 가진 약은 신약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뇌전증 환자들은 재발 우려로 치료비용 민감도가 낮아 제네릭보다 신약을 선호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과 국내 의료 현장에서 뇌전증 치료제 최강자인 UCB제약 신약보다 유효성이 뛰어남을 인정받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중요한 과제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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