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경기도 파주시에 자리한 문화지구 ‘헤이리 예술마을(헤이리마을)’이 플리마켓 환경관리비를 둘러싸고 내홍에 빠졌다. 사단법인 헤이리 사무국과 주민회, 상인회가 헤이리마을 플리마켓 참가자(셀러)들에게 환경관리비 30만 원을 청구한다는 내용을 공지한 이후부터다. 인사동·대학로 등 문화지구로 지정된 다른 곳에서도 ‘상업화’를 둘러싼 논란이 여러 해 지속되고 있다. 헤이리마을을 방문해 자세한 사정을 들어봤다.
14일 일요일 오전 11시. 2200번 버스를 내려 헤이리마을 4번 게이트를 들어서자 플리마켓 매대 위에 물건을 펼치는 셀러들이 보였다. 헤이리마을을 자주 찾는지 묻자 한 셀러는 분주히 움직이며 “주말마다 플리마켓이 열리는 전국을 다양하게 돌아다닌다. 헤이리는 방문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마을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온다”고 말했다.
이날 플리마켓에서 판매되는 물건은 액세서리, 수제 가방·파우치, 나무도마 같은 수공예 제품부터 동대문시장에서 볼 법한 의류·아이용품, 수제 쿠키 등 다양했다. 헤이리마을 상인 일부가 가게 외부 혹은 내부 빈 공간을 이용해 셀러를 모았기 때문에 플리마켓은 지정된 공간이 아니라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열렸다. 셀러로 참가한 이들은 하루에 3만~5만 원가량의 참가비를 내고 매대를 제공받는다.
오후 1시가 되자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가족, 커플 단위 방문객이 주를 이뤘다. 헤이리마을 4번 게이트 근처에는 종합안내소를 통해 표를 끊어 방문할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관광객을 위한 카페와 식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 앞 도보와 카페 마당에는 외부에서 온 플리마켓 상인들이 매대 위에 물건을 펼쳐놓고 방문객의 발길을 끌었다. 일부 헤이리마을 상인이 일정 금액의 참가비를 받고 모집한 플리마켓 셀러들이었다.
2년 전부터 헤이리마을 4번 출구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해온 임대상인 A 씨는 카페 앞마당에서 매주 플리마켓을 연다. 플리마켓 셀러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매주 참가할 인원을 모집해 일정 금액을 받고 매대를 제공한다. A 씨 얘기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플리마켓은 헤이리마을 활성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유입된 방문객으로 가게 매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헤이리마을 상인회에서 플리마켓 운영을 하지 말라고 하더니, 6월부터 환경관리비를 매대당 30만 원씩 걷겠다고 5월 말 공지했다.
A 씨는 “헤이리마을 특성상 평일에는 관광객이 전혀 없어 매장 운영이 힘들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마련했다. 코로나19, 시설 낙후 등으로 관광객이 감소하면서 월세 부담으로 상가 공실이 많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 와중에 사무국과 상인회는 개인 건물에 임차인으로 들어온 상인들이 플리마켓을 운영하는 것도 막고 있다. 이곳은 2019년 관광특구로 지정돼 매장의 옥외 영업이 가능해졌다.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환경관리비를 강제한다면 영업방해와 손해배상청구, 사유지 침입 등으로 고소할 생각”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헤이리마을 상인 B 씨도 “환경관리비를 걷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지만 아직 관계자가 직접 찾아오거나 공식적으로 안내받은 적은 없다. 상인들이 힘들어진 건 건물주가 올린 임대료나 줄어든 관광객 때문이지, 플리마켓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부에서 같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서로 싸우게 된 상황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매대당 30만 원, 사무국 “법적 근거 없는 것 알고 있지만 경고 차원”
헤이리마을 사무국과 상인회에서는 6월 1일부터 받겠다는 공지와 달리 아직 환경관리비를 걷고 있지 않다. 사무국 관계자는 “헤이리마을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1998년 창립총회 후 예술인들이 모여 특화된 마을을 만들기 위해 회원을 모집하고 토지를 공동구매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업화된 모습은 문제가 있다. 공산품을 가져와서 판매하는 플리마켓에 문제를 제기하는 상인회의 말도 일리가 있다. 사무국은 공지에 이름만 올린 것이고, 환경관리비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누가 매대당 30만 원이라는 큰돈을 내겠는가. 실제 돈을 걷겠다는 게 아니라 경고 차원에서 공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무국과 상인회 측은 플리마켓이 헤이리마을 고유의 특성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사무국 관계자는 “헤이리마을에는 예술인과 수공예 제품을 파는 상인들이 모여 있다. 일부 플리마켓에서 파는 중국산 제품으로 인해 이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갈 뿐만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 씨는 “플리마켓 때문에 상인들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최자와 셀러 모두 세금 신고를 하고 있으며 상인회에서 문제 삼는 쓰레기 처리나 화장실 이용도 각자 건물에서 해결한다. 개인 사유지와 개인 땅에서 하는 일에 대해 어떤 근거로 돈을 걷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상인회 측은 물러설 생각이 없다. 사무국과 상인회 이름으로 공지된 ‘헤이리예술마을 내 플리마켓 환경관리비 청구의 건’ 공지에 따르면 헤이리마을은 현재까지 발전기금과 환경부담금의 납입으로 마을 운영과 유지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는 플리마켓을 운영하는 개별 상업행위에 1일 1매대당 30만 원, 미납 시 월 20% 추가 과태료가 부과된다. 상인회 측은 이 내용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리는 등 강하게 제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주시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파주시 관계자는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헤이리마을 쪽에서 공식적으로 전달받은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문화지구의 상업화’ 고질적인 문제…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파주 헤이리마을은 서울 인사동과 대학로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문화지구로 지정됐다. 연간 120만 명이 찾는 파주시 문화예술명소다. 문화지구는 ‘문화예술진흥법’에 의거해 문화시설과 민속공예품점·골동품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영업시설이 밀집되어 있거나, 이를 계획적으로 조성하려는 지역, 문화예술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지역들을 말한다. 파주시 헤이리 외에도 서울 인사동, 대학로, 인천 개항장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문화지구 지정 후 공통적으로 ‘상업화’ 문제에 부딪혔다. 서울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문화지구 활성화를 위한 서울시 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문화지구 제도는 보호하고자 했던 정체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노출했다. 지역 주민의 반발이 거셀 뿐 아니라 관심도 크게 떨어졌다. 현실에 맞게 개선해 좀 더 다양한 지역이 문화지구로 지정돼 관리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사동의 경우 관련 업종이 이면 지역으로 밀려나면서 상업화 양상을 띤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정현 서울연구원 도시사회연구실 연구원은 “문화지구가 만들어질 땐 상업화를 막고 문화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화자원이나 문화인·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이 작동하지 못했다. 대신 건축주에게 혜택이 가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는 문제들이 발생했다. 또 여러 곳이 지정돼야 제도 개선에도 힘을 받을 수 있는데, 문화지구 개수가 적다 보니 요구하는 목소리가 작다. 여러 요인으로 제도가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 헤이리마을 또한 유사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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