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6월 22일 애플의 개발자 컨퍼런스인 WWDC20이 개막했다. 매년 수천 명이 실리콘밸리에 모여 애플의 생태계와 관련된 새로운 기술들을 나누는 이 행사는 올해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열리게 됐다. 키노트 역시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중계됐다. 생방송은 아니고 미리 녹화된 영상으로 진행했는데 덕분에 아주 짜임새 있고 탄탄하게 진행됐다. 이런 식의 발표도 익숙해지는 듯하다.
가장 관심을 끌 만한 부분은 ARM 맥에 대한 발표다. 순서상으로는 가장 뒤에 나온 ‘원 모어 싱(One more thing) 같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동안 소문도 많았고 관심도 많이 받은 부분이다. 그동안 맥에는 인텔의 코어 프로세서가 쓰였는데 이를 애플이 직접 설계한 프로세서로 대체하는 것이다. 애플이 특정 칩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신 애플의 반도체, 실리콘이라고 설명했다. A시리즈 칩이 확장하기 좋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걸 맥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는 정도였고 기기나 칩의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당장 기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기기를 내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앱 생태계가 꾸려지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ARM과 인텔의 x86은 구조가 완전히 다르고, 앱 개발 환경도 다르다. 개발자들에게 새 프로세서에 맞춰서 앱을 새로 개발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아주 서서히 앱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운 프로세서를 위해서 앱 개발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예고 정도로 볼 수 있다.
ARM과 인텔의 x86 프로세서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명령어, 바이너리 같은 걸 다 맞춰야 하고 그 변환을 위해 로제타스톤이라는 코드 변환 도구가 공개됐다. 또 개발 도구인 X코드는 기존 앱을 ARM에 맞춰서 컴파일할 수 있도록 바뀐다. 아이패드OS 앱을 맥에서 돌려주는 카탈리스트는 더 자연스러워졌고, iOS를 가상머신으로 돌릴 수 있게 해서 초기 앱 부족을 줄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애플이 보는 ARM 칩은 고성능과 저전력을 모두 잡겠다는 것인데, 아직 어떤 맥에 적용되고, 얼마의 성능을 내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개발자들을 위해 개발킷을 공개했는데, 맥미니에 A12Z 바이오닉 칩을 넣고 16GB 메모리, 512GB SSD가 들어간 제품이다. 실제 기기는 2년 뒤에 나올 계획이다. 하지만 인텔 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기의 특성에 따라서 칩을 골라 쓸 것으로 보인다.
WWDC의 주인공인 운영체제 환경에도 큰 변화가 있다. 먼저 iOS14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부사장은 iOS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iOS에는 UI의 변화가 좀 필요했는데 꽤 많은 부분을 뜯어고쳤다. 일단 홈 화면에 흩어진 앱들을 폴더 외에도 여러가지 주제에 따라서 자동으로 묶어주는 앱 라이브러리가 더해졌다. 앱을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보기 쉽게 정리된다. 깔아두고 쓰지 않는 앱들이 늘어나는 것도 애플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앱을 띄우지 않아도 정보를 알려주는 위젯이 굉장히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모양, 크기도 다양해졌고, 위젯들을 홈 화면으로 끌어낼 수도 있다. 하나의 위젯 칸에 여러개의 위젯을 겹쳐놓고 넘겨가면서 볼 수도 있는데, 아이폰을 쓰는 습관을 학습해 시간이나 조건에 따라서 적절한 위젯을 띄워준다.
PIP도 된다. 영상 보다가 홈 화면으로 빠져나가도 작은 화면으로 영상을 계속 볼 수 있다. 이 기능은 아이패드에서는 됐는데 아이폰에도 적용됐다. 안드로이드 폰에서는 일반적인 기능인데 이제 아이폰도 PIP를 받아들이게 됐다.
시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시리를 실행해도 전체 화면을 덮지 않고, 화면 아래에 동그란 시리 아이콘만 떠서 귀를 기울인다. 정보를 보여줄 때도 화면 전체를 덮지 않고, 필요한 정보들만 알림 메시지로 살짝 보여준다. 시리가 알려줄 수 있는 정보도 늘어나서 ‘날씨 변화가 왜 생기는지’, ‘명왕성은 행성인지’ 따위의 질문에 답을 한다. 이런 지식 정보를 기존보다 20배 늘렸다고 한다. 실시간 번역도 더해졌다. 텍스트도, 음성도 다른 언어로 바꾸어준다. 한국어도 바로 적용된다.
지도에서는 길거리 사진인 로드맵을 볼 수있고 경로를 찾는 옵션에는 자전거와 전기차가 더해졌다. 자전거는 오르막길 정보도 알려주고, 자전거로 가기 어려운 계단 구간을 알려줘서 피하거나 자전거를 들고 갈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게 했다. 자동차 운전 경로에서는 전기차 충전소 정보를 볼 수 있는데, 차량 정보를 미리 입력해두면 충전 방식을 읽어 적절한 충전소를 안내해준다.
‘카 키’는 아이폰을 차 열쇠로 쓸 수 있게 해준다. 차량 문 손잡이에 아이폰을 찍으면 문이 열리고 시동을 걸 수 있다. 그리고 이 키는 아이메시지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임시로 보낼 수 있다. 가족이 차 열쇠를 갖고 멀리 출장을 갔는데 갑자기 차를 써야 한다면 메시지로 보조키를 받는 셈이다. 아이폰 11에는 기기가 향하는 방향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U1 칩이 들어갔는데 이 기능을 더해 문을 열겠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눈에 띈다.
앱스토어에 더해진 ‘앱 클립’은 앱 실행 속도와 즉답성을 높여준다. 기존 앱에 10MB 이내의 작은 앱을 하나 더해서 NFC나 QR 코드 등을 찍었을 때 특정 기능을 아주 빨리 풀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유자전거 잠금을 풀 때 NFC를 찍으면 본래 앱 대신 앱 클립이 빠르게 떠서, 인증과 결제만 빠르게 해주는 것이다.
이용자들이 바라던 기능 중 하나인 ‘콜 바’가 iOS14에 적용됐다. 전화가 걸려왔을 때 전체 화면이 뜨는 게 아니라 화면 위에서 작은 막대가 살짝 내려와서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앱 사용경험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필요했던 검색도 전체 화면을 쓰지 않고 작은 검색창을 불러와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 접근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검색, 시리, 전화 같은 화면이 굳이 전체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번 iOS14의 디자인 분위기다.
아이패드는 애플펜슬 기능 강화가 눈에 띈다. 노트 필기에 애플펜슬이 조금 더 지능적으로 관여하게 됐다. 기본적으로 마우스처럼 텍스트를 선택하고 복사, 붙여넣기 같은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애플펜슬은 선을 입력하는 용도가 더 컸는데 마우스의 역할도 맡게 된 것이다.
메모는 손글씨를 텍스트 정보로 읽어서 복사하고, 붙여넣을 수도 있고, 도형을 슬쩍 그리면 이를 읽어 정확한 원, 오각형, 별 같은 도형으로 바꿔준다. 펜슬로 검색창에 글자를 쓰면 그걸 인식해서 텍스트를 넣어주기도 한다. 펜의 기본 역할에 손으로 만든 문서의 맥락을 인공지능로 읽어내는 기술을 더한 것이다.
에어팟도 재미있는 업데이트가 있다. 여러 대의 기기를 쓸 때는 에어팟을 전환해가면서 쓸 때가 있는데 이걸 바꾸는 시나리오를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아이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맥에서 컨퍼런스콜을 하게 되면 저절로 에어팟이 맥에 연결됐다가, 아이폰에 전화가 오면 다시 아이폰으로 옮겨서 붙는 식이다. 필요할 때 에어팟 전환하는 것이 꽤 번거로운 일인데 매끄럽게 잘 된다면 반가운 기능이다.
에어팟의 오디오는 공간을 더 세밀하게 표현하게 됐다. 돌비 디지털 5.1, 7.1도 되고 돌비 애트모스도 에어팟으로 재생된다. 에어팟에 가속 센서와 자이로스코프가 있는데, 이걸 이용해서 머리의 움직임을 읽어서 고개를 움직이면 그에 따라서 소리가 포커싱되는 것도 재미있다. 아이패드의 방향도 인지해서 시각과 청각을 가상에서 실제 공간처럼 반영되도록 한 것이다. 애플은 요즘 증강현실 콘텐츠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기능이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에어팟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다는 건 놀랍다.
워치OS7도 나왔다. 컴플리케이션이 더 다양해졌고, 새로운 워치페이스도 더해졌다. 시계 화면인 워치페이스와 앱 요소인 컴플리케이션의 구성을 만들어서 공유할 수 있다. 앱들도 아예 적절한 워치페이스와 컴플리케이션을 구성해서 앱스토어에서 앱을 내려 받으면서 직접 워치페이스를 공유할 수도 있다.
운동은 춤이 더해졌는데, 라틴탠스나 힙합 같은 여러 춤 동작을 인지한다. 코어 트레이닝도 있고, 운동 후에 쿨다운하는 것도 체크해준다 기존 활동 앱은 피트니스로 이름을 바꾸고 더 많은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담는다.
소문으로 나왔던 수면 추적도 있다. 잘 시간, 일어날 시간 체크해주고, 잘 시간이 되면 아이폰의 메시지 알림을 끄고 자라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알려준다. 수면 습관, 질을 체크하는 것은 기본이다. 잘 때도 워치를 차고 자야 할 것 같은데, 충전은 언제하나 싶다.
맥OS는 ‘빅 서’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캘리포니아 몬터레이군에 있는 자연경관지의 이름이다. 맥OS는 디자인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더 플랫하면서도 더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모순되는 듯한 표현인데 맥OS의 분위기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앱 화면들은 버튼들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고 전반적으로 플랫해졌다. iOS의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다. 아이워크도 툴바까지 싹 바뀌었고, 콘트롤 센터가 더해졌다. 화면 밝기, 음량도 아이폰, 아이패드처럼 제어할 수 있다. 전체적인 경험을 통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메시지나 지도도 iOS와 똑같다. 기능이나 효과가 그대로 다 반영돼서 이제 불꽃놀이, 폭죽 같은 메시지 효과도 맥에서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이는 아이패드용 앱을 맥에서 똑같이 돌릴 수 있는 개발 환경인 카탈리스트 때문에 가능하게 된 일이다. 이 카탈리스트는 API가 늘어나서 그냥 이제 맥OS의 일부가 됐고, 이를 다시 맥OS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셈이다.
이외에도 보안이 더 강화돼서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앱들은 무조건 따로 허락을 받도록 정책을 바꿨다. 앱이 카메라나 녹음 등을 쓸 때는 화면 위 시계 옆에 작은 점을 찍어서 알려주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보안 관련해서는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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