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최근 택배업계 종사자들의 근로환경 개선을 주문한 가운데, 정작 택배업계는 “현장의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며 반감을 드러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10일 택배 업계 간담회를 열고 택배 종사자 보호조치 사항과 필요성을 설명하고, 대리점 등 영업소를 통해 이 같은 사항을 적극 준수할 것을 요청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업무량이 급증한 택배기사를 보호하려는 조치라는 설명이다.
요청사항을 살펴보면 △택배 차량·기사 조기 충원 △적정 근무량 체계 마련 △휴게시간 보장 △필요 시 지연배송 △건강관리자 지정 △산재보험 가입 및 응급·방역물품 구비 △비대면 배송 유도 등 일곱 가지다.
그러나 일부 현장에서는 이 같은 국토부 조치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일곱 항목 가운데 특히 ‘휴게시간 보장’이 지적된다. 국토부는 근로기준법 제54조에 따라 택배 종사자도 일일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하며, 택배기사가 일일 물량이 많을 경우 맡은 물량을 한 번에 배송하지 말고 오전과 오후 등 여러 차례로 나눠 배송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택배 업계는 대리점주와 기사들이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까닭에 일반 직장인처럼 일괄적으로 근로환경 개선 조치를 내리기 어려운 구조라고 주장한다. 택배업체 관계자는 “음식점 점주가 4시간당 30분씩 지켜가면서 쉬지는 않지 않나.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벌고 싶을 때 벌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구조인데 이를 정확히 규정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사 차원에서도 지침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물량을 나눠 배송해도 문제다. 쿠팡의 자체 택배기사 ‘쿠팡맨’들은 국토부 요청 전부터 하루 두 번으로 나눠 일하고 있는데, 업무 강도에 혀를 내두른다. 쿠팡은 당일 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과 새벽배송 등 빠른 배송을 요구하는 서비스가 주력 사업인 까닭에 자체적으로 업무를 분할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령 쿠팡맨들은 오전 12시 이전에 들어온 주문 상품들을 먼저 배송한 후, 물류센터로 복귀해서 이후 들어온 물량을 받아 배송하는 식이다.
정진영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장은 “이 같은 구조로 6개월 정도 일했다. 동료들과 함께 근로기준법에 따라 1시간씩 꼭 쉬려고 하는데, 솔직히 온전히 쉬지 못할 정도로 물량이 많다”며 “단순히 물량을 여러 번 나눠 배송하면 휴게시간이 보장될 것처럼 보이지만, 물량이 줄어들지 않으면 불필요한 이동 경로만 늘어나는 셈이다. 택배기사들의 피로는 누적되고, 휴게시간은 운전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택배기사들이 당일 물량을 한꺼번에 처리하고 쉬는 걸 더 바라는 이유다. 정부의 조치에 찬성하는 택배기사들이 있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쿠팡의 경우 서비스 향상을 목적으로 분할 업무를 택한 까닭에 다른 방법으로 쿠팡맨들의 업무강도를 낮추려 노력 중이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맨들은 고정 지역을 배송하는 게 아니다. 날마다 배송 지역 난이도에 따라 가구 수 배정을 달리한다. 쿠팡맨들의 업무 강도를 낮추려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이 같은 반응이 나오자 국토부 관계자들이 실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전국적으로 실사에 나서진 못하지만, 주요 택배업체 대리점을 방문해 현안을 점검 중”이라며 “일부 택배기사들의 주장에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닌 것도 몇 가지 확인했다. 현장 목소리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보완점, 개선점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찬익 한진물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국토부 요청에 대해서 국토부, 기업 본사, 대리점, 택배기사의 입장이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일본 야마토운수처럼 배송 정규직을 이원화해 운영하거나 ‘택배 취급 총량제’를 통해 일정 기간 택배 물량 증가량에 제한을 두어야 택배기사들의 업무 강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민간 차원에서 진행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개인적으로는 1인당 배송 물량 상한제를 검토하면 어떨까 싶다. 예를 들면 택배기사에게 하루 200개 이상 배송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지역별 물량분석을 통해 지역별 차등 상한제 등 유연성 발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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