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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대기업 일방적인 프로젝트 취소, 어떻게 법으로 대응할까

대기업이 계약 성사 '신뢰' 심어줬다면 배상 가능성…민사소송‧공정위 신고 등 전략적 선택 중요

2020.06.15(Mon) 13:58:23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아두면 모 있는 즈니스 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프로젝트 기획은 완벽했더라도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준비와 능력 부족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힘든 시장 상황의 급격한 변화가 원인일 수도 있다.

 

문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선투자를 단행하거나 다른 영업 기회를 포기한 사람의 경우 프로젝트가 중도에 취소되면 투자금액 등을 날리는 손해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대기업은 태양전지의 주요 소재가 되는 고기능 필름 시장에 진출하기로 해 중소기업인 생산공장에 전속적인 거래를 제안했다. 이에 생산공장은 대기업 제안을 신뢰해 기존 거래를 중단했다. 그런데 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프로젝트가 갑작스럽게 취소돼 생산공장은 신규 매출을 확보하지 못하고 기존 거래를 상실하게 됐다.

 

이때 생산공장 입장에서는 배상을 원할 것이다. 대기업 제안을 신뢰해 기존의 영업 기회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생산공장과 어떠한 거래가 이루어진 것은 없으므로 생산공장에 거래상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경북 포항 포스코 스마트공장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청와대 제공


이러한 사안에 적용되는 법리는 이미 판례로 정립돼 있다. 대법원은 ‘어느 일방이 교섭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해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했음에도 타당한 이유 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해 손해를 입었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시한다(대법원 2001다53059 판결 등).

 

대기업은 생산공장과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므로 계약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다만 생산공장에 프로젝트 참가에 대한 신뢰를 주었음에도 이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그렇다면 대기업으로부터 배상받는 손해액은 어떻게 산정돼야 할까?

 

대법원은 ‘계약 교섭 단계에서는 아직 계약이 성립된 것이 아니어서 당사자 중 일방이 계약의 이행행위를 준비하거나 이를 착수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설령 이행에 착수했다 하더라도 이는 자기의 위험 판단과 책임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만일 이행의 착수가 상대방의 적극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고 이행에 들인 비용의 지급에 관해 이미 계약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 중 일방이 계약의 성립을 기대하고 이행을 위해 지출한 비용 상당의 손해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2다32301 판결 등).

 

해당 판시에 따르면 생산공장이 대기업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기존의 거래를 해지한 경우, 프로젝트 취소로 발생한 손해액은 생산공장이 기존의 거래에서 확실하게 받을 수 있었던 영업상 이익이다. 이는 기존 거래의 근거가 되는 계약의 계약 기간 동안 발생했을 영업상 이익이라고 볼 수 있다.​

 

생산공장이 대기업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기존의 거래를 해지한 경우, 프로젝트 취소로 발생한 손해액은 생산공장이 기존의 거래에서 확실하게 받을 수 있었던 영업상 이익이다.

 

다만 대기업 책임을 계약상 책임이 아닌 불법행위 책임으로 구성할 경우 생산공장에는 법리상 불이익이 발생한다. 피해자 과실을 참작해 손해액을 감경하는 과실상계는 계약상 책임에는 적용되지 않으나 불법행위 책임에는 적용된다. 때문에 법원은 생산공장이 대기업 제안을 믿고 기존 영업 기회를 포기한 것은 경솔하다고 보고 대기업이 배상할 손해액 중 일정 비율을 감액할 것이다. 사안에 따라 과실상계로 인해 감액되는 비율은 30~50%에 달하여 감액되는 금액이 적지 않다. 

 

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대기업은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외에 공정거래법상 금지되는 불공정거래행위를 했다고 판단돼 행정상 제재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된 공정거래법 조항으로는 거래거절(제23조 제1항 제1호)과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불이익제공, 제23조 제1항 제4호)가 있다. 거래거절 조항은 대체로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사업자들이 공동으로 특정 사업자에 대해 거래를 중단하는 ‘공동의 거래거절’ 사안에 적용된다. 따라서 개별 사업자들 간에 거래거절(기타 거래거절)이 문제 되는 위 사안에 적용되기는 어렵다.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불이익제공) 조항을 보자. 공정위 고시에 따르면 상대방과의 거래를 위해 선투자를 단행했고 이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그 상대방과 거래가 유지·​존속돼야 한다. 이 경우 상대방이 ‘거래상지위’를 갖고 있음이 인정된다. 앞서 본 것처럼 대기업의 일방적인 프로젝트 취소로 생산공장은 기존의 영업상 기회를 상실했으므로, 생산공장이 입은 불이익을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울고법 2007누9046 판결은 정상적인 거래관행 등에 비춰 민사상의 분쟁에 불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계약 해석 등에 다툼이 있더라도 공정거래법의 적용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따라서 대기업과 불법행위 책임의 존재여부에 관한 민사상 분쟁이 계속 중이라고 하더라도 공정거래법 적용이 가능하다.

 

이처럼 관련 규정 및 판결에 의하면 생산공장은 대기업에 대하여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불이익제공)를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생산공장이 위 주장을 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현재 일부 학계와 언론은 사적 자치 등을 이유로 개별기업 간의 분쟁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는데 부정적이다(이러한 주장이 현재의 규정 및 판례에 부합하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행정당국도 민사 분쟁이 가능한 사건에는 개입하는데 지극히 소극적이다.

 

생산공장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변론주의·당사자주의가 지배하는 민사소송 절차에서 주장 사실에 대한 입증할 수도 있다. 동일한 피해자가 다수 있어 대기업의 횡포가 언론에 보도되면 행정당국 담당자를 상대로 거래중단의 부당성을 설득하기 용이할 수 있다. 따라서 생산공장은 이 같은 사정을 숙고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민사소송과 공정위 신고 중 어느 절차를 선택할지, 아니면 모든 절차를 이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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