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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마침내 민간 유인우주선, 인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보스토크 이후 60년 만에 스페이스X 발사 성공…유인 우주탐사의 역사를 되짚다

2020.06.15(Mon) 11:12:08

[비즈한국] 1961년 1월 31일 미국 플로리다의 케이프 커내버럴에 로켓 한 대가 발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날 우주로 올라갈 머큐리-레드스톤 2(MR-2, Mercury-Redstone 2) 로켓에는 조금 특별한 손님이 타고 있었다. 역사상 최초로 우주로 올라간 우주 침팬지 햄(Ham)이 불편한 우주선 내부에 들어가 긴장된 모습으로 발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20년 이제는 국가가 아닌 민간 기업에서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는 시대이지만, 인류의 유인 우주 탐사 역사는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우주로 보내기 위한, 유인 우주 탐사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민간 유인 우주여행의 시대가 개막하는 듯한 오늘날 인류의 유인 우주 개발사를 돌아본다.

 

#킹콩보다 더 높이 올라간 침팬지 

 

햄이 우주로 올라간 그때는 미국과 소련의 체제 경쟁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까지 뻗어나가던 시절이었다. 두 나라는 누가 먼저 우주로 자국의 군인과 무기를 올리게 될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살아 있는 사람을 우주로 보내기 전 우주 환경에서 살아 있는 동물이 버틸 수 있는지를 미리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벌레부터 강아지, 거북이, 도마뱀, 침팬지에 이르는 다양한 동물들이 우주로 올라갔다. 아직 동물 실험에 대한 윤리적 고민도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사람의 안전을 위해 동물을 사지로 보내 실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우주 개발 역사에서 숭고한 탐험을 떠났던 선구자로 추억되는 우주 침팬지 햄은 열강들의 체제 경쟁의 희생자이기도 했다. 

 

시험 비행을 앞두고 연구진들과 함께 훈련을 받고 있는 침팬지 햄. 당시 세 살이었다. 사진=NASA

 

햄은 하늘 높이 약 250km까지 도달했다. 햄이 탄 우주선은 약 16분이라는 짧은 시간 지구 주변 우주를 여행하고 태평양 바다로 귀환했다. 비좁은 캡슐 안에 갇힌 햄의 눈앞에는 불빛이 깜빡이는 램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햄은 그 불빛이 켜지면 5초 안에 손에 쥔 레버를 당기도록 훈련을 받았다. 5초가 지나도 레버를 당기지 않으면 햄에게는 가혹한 전기 충격이 가해졌다. 5초 안에 레버를 잡아당기면 햄이 좋아하는 달콤한 바나나 조각이 배식구로 굴러내려왔다. 햄이 타고 있던 우주선이 지구 주변을 맴도는 동안 이 끔찍한 훈련 과정은 모두 지상의 관제실에 의해 통제되었다. 대단하게도 햄은 지구의 중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미소중력 상황에서도 레버를 잡아당기는 작업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우주 공간에서 햄의 인지 능력은 아주 미세하게 둔해졌을 뿐이었다. 

 

NASA의 과학자들은 우주 공간의 미소중력 상황에서도 동물의 인지 능력이나 운동 능력이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검증했다. 이를 바탕으로 별다른 걱정 없이 우주인들에게 우주에서의 복잡한 작업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햄은 다행히 지구로 무사히 돌아왔고 국립동물원에 머물던 1983년 2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햄이 지구로 귀환하던 당시 미국 언론에서는 햄을 유인 우주여행의 가능성을 보여준 영웅으로 칭송했다. 이후 우주를 여행한 침팬지라는 햄의 이야기는 ‘혹성탈출’을 비롯한 많은 SF 작품에도 영향을 줬다. 이 여행을 통해 햄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랐던 킹콩보다 더 높이 올라간 영장류가 되었다. 호모사피엔스라는 또 다른 영장류가 우주로 올라간 것은 햄의 첫 비행에서 약 두 달 반이 지난 후였다. 

 

#사람 이전에 마네킹이 있었다 

 

자동차 회사에서는 충돌 테스트를 할 때 마네킹의 일종인 더미(dummy)를 사용한다. 목덜미에 검은색과 노란색의 둥근 문양이 그려진 채 표정 없는 얼굴로 무심하게 앉아서 허우적거리는 더미의 모습은 왠지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처럼 사고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살아 있는 사람이 타기 전에 더미, 인형이 먼저 자동차를 시승한다. 이러한 관습은 오래전 사람이 우주로 올라가기 전 유인 우주 개발을 연습하던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이다. 

 

소련이 우주로 날려보냈던 마네킹 ‘이바노비치’. 지구로 돌아온 후 수습된 마네킹은 현재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Smithsonian Institution

 

1961년 소련은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의 역사적인 첫 유인 궤도 여행이 있기 전에 먼저 실제 사람 크기의 마네킹에 우주복을 입혀서 우주로 띄워 보내는 보스토크(Vostok)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961년 4월 우주로 올라간 카라비-스푸트니크 4(Karabi-Sputnik 4) 우주선 안에 탑승한 이 마네킹에게는 이반 이바노비치(Ivan Ivanovich)라는 이름도 붙었다. 이바노비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마네킹 몸체 안에는 60여 마리의 생쥐와 기니피그, 다양한 파충류가 있었고, 곁에는 체르뉴시카(Chernushka, 러시아어로 검은 열쇠라는 뜻)라는 이름의 라이카(Laika)의 뒤를 잇는 후배 우주 강아지도 한 마리 타고 있었다. 

 

우주에서 사람이 버텨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당시 과학자들은 마네킹 속에 가속도와 회전 속도의 변화를 측정하는 센서를 넣었다. 또 지구 궤도를 도는 동안 지상 관제실과 교신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마네킹 몸속에 포크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도 넣었다. 다행히 마네킹이 몸속에서 흥얼거린 이 음악 소리는 지구의 관제실까지 잘 전달되었다. 

 

과학자들은 이바노비치가 탄 우주선 캡슐이 지구로 귀환했을 때, 민가 근처에 떨어지지 않을지 걱정했다. 주민들이 우주선을 열어보고 사람같이 생긴 마네킹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바노비치의 헬멧 뒤에 크게 ‘MAKET(러시아어로 더미)’라고 써놓았다. 

 

마네킹을 우주로 보내는 퍼포먼스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유인 우주선 발사를 성공시킨 스페이스X에서도 지난 2018년 사람을 태우기 전에 먼저 우주복을 입힌 마네킹을 실어서 우주로 보내는 실험을 진행했다. 당시 우주선은 스페이스X에서 개발한 가장 강력한 추력의 팰컨-헤비(Falcon-Heavy) 로켓에 실린 채 무려 화성을 향해 날아갔다. 유인 화성 탐사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 로켓은 힘차게 올라갔다. 

 

스페이스X에서 화성 궤도로 날려보낸 로드스터 스포츠카와 그 안에 탄 ‘스타맨’. 아래는 발사 전 로켓에 싣기 전 모습이다. 멋진 사진 각도로 자동차와 마네킹을 찍기 위해 약간 비스듬하게 기울여서 탑재했다. 사진=SpaceX/NASA

 

우주선에 타고 있던 마네킹의 모습을 보면 일론 머스크(Elon Musk) 특유의 덕후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유인 우주선 발사에서도 화재가 된 스페이스X의 세련된 우주복을 입은 마네킹은 ‘스타맨(Starman)’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노래 ‘스타맨’에서 따온 것이다. 마네킹은 단순히 우주선 캡슐에 탑승한 게 아니었다. 머스크의 테슬라에서 만든 빨간 스포츠카 로드스터(Roadster)에 앉아 한 손으로 운전대를 쥐고 다른 쪽 팔은 창문에 기댔다. 스타맨이 타고 있는 스포츠카 앞의 사물함에는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사본과 ‘쫄지 마(Don’t panic)’이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수건도 함께 들어 있다. 또 자동차 라디오에서는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가 흘러나온다. 

 

마네킹이 화성 표면에 로드스터를 멋지게 주차해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마네킹은 무면허 운전 중이다. 심지어 우주를 말이다! 현재 로드스터는 태양을 중심으로 화성과 비슷한 크기의 타원 궤도를 돌고 있다. 태양을 가장 가까이서 지나가는 근일점에서 이 로드스터는 최대 시속 약 12만 km의 속도로 우주 공간을 질주하고 있다. 스타맨은 태양계에서 가장 빠른 스피드를 즐기는 ‘탈 지구’급 레이서가 된 셈이다. 아쉽게도 화성에 착륙하거나 화성의 중력에 붙잡혀 화성 주변을 맴도는 궤도를 돌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화성과 궤도가 만나면서 근처를 지나가고는 한다. 먼 미래에 사람이 직접 화성에 발을 딛고 차를 타고 사막 드라이브를 즐기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로드스터는 지금도 암흑 속의 외로운 드라이브를 이어가고 있다. 

 

#유인 우주 개발의 무모한 순간들

 

1961년 4월 말 소련에서 처음으로 진짜 사람이 우주로 올라가는 역사적인 비행을 성공시켰다. 당시 소련은 우주인 가가린이 첫 시도에서 유인 지구 궤도 여행을 무사히 하고 돌아왔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가가린보다 앞서 유인 우주 비행을 시도하다가 끔찍한 사고로 사망한 뒤 은폐된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가가린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미국도 질 수 없었다. 이후 같은 해 5월 미국에서도 우주인 앨런 셰퍼드(Alan Shepard)가 미사일을 개조한 로켓 위에 얹어져 있던 프리덤 7 머큐리(Freedom 7 Mercury) 캡슐을 타고 우주로 올라갔다. 셰퍼드는 15분 22초간의 짧은 지구 궤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다.

 

장비를 갖추고 긴장한 모습으로 발사를 기다리고 있는 셰퍼드. 로켓이 발사된 직후 엔진 점화를 끄기까지 가속 시간 약 2분 22초 동안 셰퍼드는 약 6.3g의 중력가속도를 느꼈다. 지구 궤도를 돌며 바라본 지구에 대해 셰퍼드는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다(What a beautiful view)”라는 짧은 감상을 남겼다. 사진=NASA

 

초보적이던 우주 기술로 인해 끔찍한 사고와 희생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첫발을 내디딘 인류의 우주를 향한 열망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오히려 더 용감하고 무모한 도전을 이어갔다. 1965년 3월 18일 소련의 우주인 알렉세이 레오노프(Alexei Leonov)는 대담하게도 지구 궤도를 돌던 우주선 밖으로 나가 우주복만 입은 채 우주 공간을 부유하는 우주 유영(space walk)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용감한 시도는 그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 

 

그전에 우주 유영을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 우주 공간에 우주복만 입고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세심한 사전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내의 공기 압력을 조절할 수 있었던 우주선 내부와 달리, 우주복만 입은 채 우주 공간으로 나가자 레오노프의 몸을 감싸고 있던 우주복은 크게 부풀어 올랐다. 우주복이 너무 크게 팽창하는 바람에 우주복 가슴에 붙어 있던 카메라 셔터에 손이 닿지 않았다. 우주복 내부의 압력이 계속 낮아지면서 레오노프의 몸속 혈액도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몸에 땀방울도 맺혔다.

 

우주선 밖으로 나간 직후의 레오노프. 당시 레오노프는 갑자기 피부 바깥으로 맺히기 시작한 땀방울들이 우주복 안에서 떠다니고 눈꺼풀에도 달라붙으면서 시야가 잘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사진=Roscosmos/NASA

 

예상치 못한 문제로 몸을 가누기 어려웠던 레오노프는 다시 서둘러서 우주선으로 돌아오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너무 크게 부풀어오른 그의 우주복은 1.2m 크기의 우주선 에어로크 출입구에 들어가지 않았다. 레오노프는 목숨을 건 마지막 시도를 했다. 

 

우주복 속의 공기를 바깥으로 빼내기 위해서 우주복의 밸브를 서서히 열었다. 우주복 내부의 산소 잔여량을 잘못 계산한다면, 자칫 우주선으로 돌아가기 전에 산소가 부족해져서 더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정말 다행히 온갖 고생 끝에 우주선 에어로크 안으로 돌아왔지만 위험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무리해서 에어로크를 여는 바람에 중심을 잃은 우주선은 갑자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우주선의 자동 조종 장치도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레오노프와 동료 파벨 벨리야에프(Pavel Belyayev)는 수동으로 우주선을 조종해 지구로 귀환했다. 원래 예정 착륙지에서 한참 벗어난 수풀에 불시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주변 상황을 확인한 소련의 두 우주인은 자신들이 늑대와 곰이 득실거리는 깊은 숲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구조대가 찾아낼 때까지 이틀 동안 그들은 맹수들이 돌아다니는 숲 한가운데 우주선 캡슐 속에서 버텨야 했다. 

 

이제 우주인들은 우주 유영에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우주선 바깥에서 선외 작업을 별 탈 없이 잘 수행하고 있다. 우주정거장의 장비를 수리하고, 우주왕복선으로 실어간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등 우주에서 벌어진 많은 역사적인 작업들은 모두 레오노프의 목숨을 건 끔찍한 경험을 발판 삼아 진행될 수 있었다. 

 

#우주 낭만주의 시대의 개막 

 

스페이스(Space), 유니버스(Universe), 코스모스(Cosmos). 이 세 단어는 모두 우주를 의미하지만 사실 각각 다르다. 유니버스는 별이나 은하, 물리 법칙을 아우르는 물리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우주를 의미한다. 코스모스는 철학적인 개념의 삼라만상, 우주의 조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스페이스는 인류가 직접 또는 로봇을 통해 탐사할 수 있는 더 현실적이고 우리와 가장 가까운 우주를 의미한다. 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제 갓 인공위성을 쏜 인류의 스페이스는 기껏해야 지구 궤도 수준이었다. 그런데 1969년을 기점으로 인류의 스페이스는 혁신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1969년 7월 NASA 케네디 우주센터(Kenedy Space Center) 39번 발사장에서는 이름 그대로 케네디 대통령이 공언한 약속이 실현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이날 인류는 처음으로 달 표면에 직접 발자국을 남기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 매번 한 발짝씩 늦으면서 자존심이 살짝 상했던 미국은 비로소 아폴로 11호 미션을 통해 사람을 달로 보내는 데 성공하면서 단번에 체제 경쟁에서 우위에 올랐다. 

 

현재 달 주변을 맴돌고 있는 달 정찰 궤도선으로 촬영한 달 표면. 표면에 아폴로 11호 미션 당시 달에 남기고 온 착륙선 하단부와 다양한 실험 장비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제 아폴로 미션이 조작이었다는 음모론은 직접 달에서 찍은 인증샷으로 충분히 논박할 수 있다. 사진=NASA

 

아폴로 미션이 연이어 진행되던 1970년대는 때마침 태양계 행성들이 절묘한 배치로 궤도를 돌던 시기였다. 특히 태양계에서 가장 덩치가 큰 목성과 토성이 딱 적당한 지점을 지나던 시기였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연료를 적게 쓰면서 덩치 큰 두 행성의 중력에 힘입어 태양계 최외곽 천왕성과 해왕성 너머까지 인류의 탐사선을 보낼 수 있었다. 200년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마침 인류가 탐사선을 우주로 날려볼 수 있는 기술 문명으로 성장한 시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행성들이 탐사하기 좋은 배치를 하고 있었다. 

 

파이어니어(Pioneer)와 보이저(Voyager) 등 지금도 태양계 바깥 성간 우주를 항해하고 있는 탐사선들은 그때 날려보낸 것이다. 1970~80년대 태양계 탐사의 대황금기에 인류는 많은 탐사 로봇들의 눈을 통해, 그동안 자세히 본 적 없던 화성, 목성, 토성과 그 위성들의 모습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태양계 탐사의 르네상스였다. 우리가 오늘날까지 즐기고 있는 ‘스타워즈’, ‘스타트렉’ 같은 많은 SF 고전들도 대부분 인류의 우주 진출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상상하던 이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다. 새롭게 확인한 또 다른 세상들은 모두 조만간 달 다음으로 또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가야 할 다음 목적지로 여겨졌다. 

 

현재 보이저 1호는 공식적으로 태양계의 경계에 해당하는 태양권 계면을 벗어나 진짜 성간 우주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지구와 교신이 끊어진 채 전력도 모두 떨어진 상태로 우주를 부유하는 고철 덩어리가 되었지만 태양계 바깥으로 진출하고 싶었던 우주 탐사 황금기 시절의 인류의 열망을 담은 채 우주를 떠돌게 될 것이다. 사진=NASA

 

로봇 탐사선들이 느리게 멀어져가며 인류의 스페이스를 확장하는 동안 미국은 총 여섯 번에 걸친 아폴로 미션으로 사람이 직접 달에 방문하는 기록을 세웠다. 우주인들은 달에서 암석을 채취하거나 다양한 탐사 장비를 설치하는 과학적 임무만 한 건 아니다. 달 표면에서 성경을 읽거나 골프를 치거나 랩으로 밀봉한 자신의 가족 사진을 달 표면에 걸어두고 오거나 심지어 NASA 몰래 가지고 간 친한 예술가 친구의 작은 미니어처 작품을 두고 오는 등 달에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이런 우주인 특유의 유머 감각은 그 모습을 보는 시민들에게도 우주가 그리 멀지 않은, 그저 연구만을 위해 방문하는 고리타분한 공간이 아니라 조만간 우리들도 가서 일상생활을 즐길 수 있는 미래의 잠재적인 터전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우주인 찰리 듀크가 아폴로 16호 미션을 마치고 달 표면에 두고 온 가족 사진.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족 사진일 것이다. 사진은 당시 두고 온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겠지만, 태양의 강한 방사능으로 인해 사진의 색깔은 많이 바랬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NASA


벨기에 예술가 폴 반 호이동크의 부탁으로 아폴로 15호 우주인들이 갖고 간 작은 알루미늄 조각 작품. 그간 희생된 우주인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과 함께 ‘잊힌 우주인(Fallen Astronaut)’라는 이름의 조각품을 달 표면에 두고 왔다. 사진=NASA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달에서는 여전히 그 많은 흔적이 고스란히 표면에 남아 있을 것이다. 2013년 미국 오바마 정부는 이런 다양한 우주 개발의 역사가 남아 있는 아폴로 미션의 착륙지들을 자국의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가까운 미래 민간에서도 우주여행이 빈번해지면, 일반 방문객들이 달에 방문해서 아폴로 착륙지의 유적을 훼손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주 개발의 유적들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존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이처럼 인류는 1969년 이후, 아폴로 미션과 태양계 탐사 황금기의 향수를 간직한 채 머잖아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달이나 화성에 정착하게 될 것이란 낭만주의를 그려나갔다. 

 

#우주의 암담한 현실을 마주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날 우리는 선조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50년 전 달에 처음 발자국을 남긴 인류는 아직까지 화성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다. 지금까지 화성에 방문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뿐이다. 만약 화성에 누군가 살고 있다면 화성인들은 지구인이 영화 ‘트랜스포머’의 변신 로봇처럼 바퀴 달린 로봇 종족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지구에서 온 건 다 로봇뿐이니 말이다. 

 

20세기 말 사람들이 다가올 21세기를 상상하며 그린 그림들을 보면 왠지 민망해진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영화 ‘백투더 퓨처’에서 그린 미래상이 벌써 지나가버린 2015년의 모습이고, 만화영화 ‘원더키디’에서 은하계를 여행하는 미래상은 올해 202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 기대와 현실의 공학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에는 큰 괴리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지금 우리도 영화, 소설에서 막연하게 100년 후, 200년 후에 시공간을 접어 초광속 우주여행을 할 거라고 기대하지만, 실제 그때가 되면 우리의 과도한 상상력에 부합하지 못한 미래의 후손들이 머쓱하게 생각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스페이스X에서는 앞으로 20년 안에 사람을 화성으로 보내는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는 대단한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우주 개발의 현실성을 아는 적지 않은 공학자, 과학자는 그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성공할 것이란 데에 회의적인 시각을 많이 갖고 있다. 사진=SpaceX

 

특히 로봇 탐사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내는 유인 우주 탐사의 발전은 더욱 더디다. 살아 있는 사람이 지구 밖 다른 행성으로 가는 것이 지금껏 실현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목적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화성까지 가는 데만도 최소 4~5개월은 걸린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물자가 제한된 비좁은 우주선 안에서 탑승자가 굶지 않게 식량을 제공해야 하고, 긴 우주여행으로 외롭지 않게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게다가 우주선은 가능한 중량을 줄여야 연료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짐도 많이 가져갈 수 없다. 우주여행에는 가장 극단적인 효율성이 필요하다. 

 

사실 우주여행에서 효율성을 가장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은 바로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이다. 화성으로 로봇을 보내는 것이라면 ​지금도 ​잘하고 있다. 사람에 비해서 신경 써야 할 요소가 훨씬 적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위해 어쨌든 사람이 우주를 여행해야 하는 많은 SF 작품에서는 긴 여행 시간 우주인들을 동면시키거나 초광속 여행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며 현실적인 문제를 회피하곤 한다. 

 

과연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 항성계로 진출할 수 있을까? 만약 먼 미래 인류가 다른 행성에 방문해 레저를 즐기고 정착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그린 짧은 영화를 소개한다. 더빙된 목소리는 칼 세이건의 목소리를 입힌 것이다.

 

한편으로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생각하면 유인 우주 탐사 개발의 의욕이 떨어지는 듯한 슬픈 기분이 든다. 이제 갓 지구를 벗어나 달과 다른 행성에 방문하기 시작하던 초창기, 아직 풋풋했던 낭만주의적 시각이 남아 있던 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조만간 곧 또 다른 혁신적인 항법으로 더 넓은 우주로 진출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조금씩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갈수록 우리는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광막한 우주의 암담한 현실을 만났다. 우주가 지나치게 넓다는 당연한 사실을 매번 재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기술로 태양계를 벗어나는 데 ​여전히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이마저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로봇을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마치 광막한 우주가 우리를 비웃으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과연 인간은 고향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또 다른 행성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노력한다고 그게 될 것 같은가?” 

 

요 며칠 스페이스X의 첫 민간 유인 우주선 발사 소식으로 많은 언론과 시민이 가까운 미래에 직접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달이나 화성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듯하다. 여전히 우주라는 미개척지에 대한 막연한 낭만주의적 시각이 담겨 있다. 

 

하지만 냉철한 현실주의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운송 수단의 혁신이 될 것이라 각광받으며 개발된 초고속 콩코드 여객기는 아쉽게도 비싼 비용과 비합리적인 상업성 문제, 치명적인 사고로 인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시장에서 사라졌다. 과연 스페이스X를 비롯한 민간 우주여행 사업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우리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넓은 우주가 던지는 무심한 질문, “인류는 과연 지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긍정적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우주의 무심한 스케일이 반대로 위로가 되는지도 모른다. 결국 다른 행성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부족해서 아니라 우주가 너무 넓어서, 우주가 너무 불친절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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