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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기업 '현금화' 돌입, 일본 보복 가능성 따져보니

일본 "모든 선택지 넣고 대응" 강력 반발…실제론 아베 지지율 최저, 운신 폭 좁아

2020.06.12(Fri) 14:46:23

[비즈한국] 잠잠하던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 한국 내 일본제철 자산 압류 및 매각이 현실화되고 있어서다. 일본은 ‘두 자릿수’ 제재를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는 앞으로 더욱 꼬일 전망이다.

 

그러나 여러 경제 제재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아베 신조 총리의 지지율도 크게 떨어져 일본 정부가 실제 행동에 나설 수 있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지난 1일 일본제철에 대한 공시송달을 결정했다. 강제징용 기업의 한국 내 자산압류 절차가 진행된 것. 이에 일본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앞으로의 ‘보복 조치’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8월 15일에 열린 아베 규탄 촛불문화제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지난 1일 일본제철에 대한 공시송달을 결정했다. 지난해 5월 강제징용 피해자 측이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 압류 및 매각명령을 신청했는데, 일본 측이 결정문 수령을 거부하자 공시송달 조치를 취한 것이다. 

 

공시송달이란 법원이 보낸 서류가 소송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을 경우 법원이 일정 기간 보관하다가, 이 기간이 지나면 서류가 당사자에게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면 자산압류명령의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8월 4일부터 일본제철의 주식 등을 처분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지난해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하기로 했다. 

 

한국은 지난해 9월 일본의 수출 규제를 WTO에 제소했으나, 한일 협의로 정상적 대화를 진행한다는 전제 아래 지난해 11월 22일 제소절차를 정지했다. 이후 수차례 대화를 요청했으나 일본이 무응답으로 일관하자 진정성 있는 대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WTO 분쟁 해결 절차를 다시 시작키로 결정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발끈하고 나섰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상황을 두고 “압류 자산 현금화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며 “일본 기업의 경제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보복 조치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재 일본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수출규제 품목 확대, 관세 인상, 무역 재검토, 송금 금지, 금융 제재, 일본 내 한국 자산 압류, 입국 비자 발급 제한, 주한대사·총영사 일시귀국,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이 거론된다.

 

다만 현재로선 대부분 뾰족한 보복 수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만약 웨이퍼 수출을 금지하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미국은 물론 일본 기업들도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웨이퍼 조달처를 독일 등 유럽으로 넓히면, 일본 기업들 피해만 커지고 자칫 글로벌 공급 사슬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지난해 일본이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린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경우 한국이 대체 공급처를 찾으면서 일본 기업들이 입은 타격이 컸다.

 

한국 기업들로선 한 차례 조달에 차질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이 수출규제를 푼다고 해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긴 어렵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재·부품 조달 문제는 회사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수급처를 다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관세를 올리거나 송금을 규제하는 조치도 WTO 조항 위반이기 때문에 즉각 제소 당할 수 있다. 일본 내 한국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도, 어떤 기업을 대상으로 어떤 명분으로 할 것이냐를 결정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런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한국 법원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2010~12년 중국과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때도 힘의 우위가 중국으로 기울자 별다른 경제 제재를 취하지 못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를 WTO에 제소해 승소를 거둔 게 전부다.

 

지난해 12월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국 쓰촨성 청두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최근 지지율이 급락해 한국과의 갈등 심화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감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청와대 제공

 

특히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급락한 점도 일본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힌다. 정치지도자의 지지율은 정책을 자신감 있게 펼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지지율이 높아야 정책의 부작용을 감내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벚꽃스캔들 등 잇단 비리·비위 의혹과 코로나19 대응 미숙으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미끄럼을 탔다. 일본에서는 매년 4월 총리가 각계 인사를 초청해 벚꽃을 구경하는데, 지난해 아베 총리가 이 행사에 자신의 지역구 주민들을 대거 초청하고 전날 최고급 호텔 숙박비에 특혜를 제공한 일 등으로 문제가 된 사건이 벚꽃스캔들이다. 아베 내각 지지율은 최근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 27%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취임 후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아베 총리로서는 한국과의 갈등 심화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한국과의 갈등을 지렛대 삼아 정치적 반전을 꾀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지지율이 낮고 일본의 피해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라 여의치 않아 보인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고립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미국도 당분간 중재자로 나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때문에 일본이 한국에 직접 타격을 줄 조치보다는 양국 간 감정을 악화시키는 언사나 외교 행위로 시간을 끌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외교가 관계자는 “미중 분쟁과 세계 경제 침체 등으로 한일 관계 악화는 당분간 더 심화될 것”이라며 “정치 리더십의 변화 등 급진적 상황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양국 관계를 개선할 명분도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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