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주 52시간 근무제 근로시간 위반과 관련해 2019년 노동청에 접수돼 검찰에 송치된 사례가 전년 대비 증가했다. 그러나 주 52시간제 위반이 인정된 사업장은 오히려 줄어들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주 52시간제에 대한 노사의 관심이 증가했다”고 보지만, 일각에서는 현 상황을 “법과 현실의 괴리에서 나타난 과도기”라며 “당분간 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위반하더라도 처벌을 유예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즈한국은 고용노동부에 2018, 2019년 두 해 동안 주 52시간제와 관련된 근로기준법 제50·53·54·55·59조 위반 건수, 위반 업체 수와 처벌 건수에 대해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 주 52시간제는 하루와 한 주의 법정 근로시간을 규정한 제50조와 연장근로시간을 12시간으로 정한 제53조가 더해진 제도다. 부수적으로 제54조에는 휴게시간과 관련된 조항이고, 제55조는 근로자에게 1주 평균 1회의 유급 휴일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마지막으로 제59조에 해당하는 사업자와 근로자는 협의를 통해 연장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해당 자료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신 전국 노동청에 위 조항들로 접수된 ‘신고 건수’와 그 중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검찰로 넘긴 ‘송치 건수’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다.
고용노동부 회신 결과에 따르면 5개 조항의 접수 건수는 2018년 총 698건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46%인 323건이 검찰에 송치됐다. 2019년에는 신고 사례가 대폭 증가해 접수 건수는 전년 대비 447건 늘어난 1145건으로 집계됐다. 송치 건수는 498건으로 2018년보다 175건 상승했다.
조항별로 보면 근로기준법 제50조, 제54조, 제59조 위반이 2018년과 비교했을 때 접수·송치 건수가 큰 폭으로 뛰었다. 2019년 제50조 위반 접수·송치 건수는 각 101건, 43건으로 2018년보다 1.5배 이상 올랐다. 제54조 위반 역시 전년 대비 2배 이상 오른 684건이 접수됐고, 그 중 39%인 269건이 검찰에 송치됐다. 2018년 1건 접수에 그친 제59조 위반은 2019년 22건이나 노동청에 접수됐고 고용노동부는 이 가운에 7건을 검찰에 넘겼다. 그 밖에 제53조, 제55조는 전년과 비슷한 수치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모든 사업장이 주 52시간제 위반 혐의가 인정되는 건 아니다. 일례로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는 2019년 4월 “근로자의 휴게시간에 자율성을 주는 대신 시간 내 처리하기 어려운 물량을 줘 휴게시간 미사용 책임을 근로자에게 전가하려 했다”며 쿠팡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동부지청에 고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3월 노동청으로부터 증거 불충분 판정을 받아 무혐의 처분됐다. 지부 관계자는 “쿠팡맨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까닭에 추후 보복을 염려해 익명으로 처리해 자료를 제출했다. 그것 말고는 소상히 증거 자료를 준비해 제출했는데 1년 만에 돌아온 답변은 증거 불충분이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접수 건수와 송치 건수가 늘었다고 해서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위반이 증가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근로자들이 자신의 권익 보호에 관심이 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판단할 수 있겠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가 2019년 12월 31일 발표한 ‘2019년도 장시간 근로감독’ 결과에서도 근로자의 신고 건수에 비해 사업자의 위반 혐의가 인정된 사례는 드문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감독대상 303개 사업장(300인 이상 사업장·공공기관) 중 20개소(6.6%)가 연장근로시간 한도(주 12시간) 위반으로 적발돼 2018년 18.9%보다 12.3%p 하락했다. 주 52시간제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업장은 전년 대비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당시 근로감독정책단장이었던 권기섭 고용정책실장은 “이번 근로감독 결과 300인 이상의 사업장 같은 경우에는 주 52시간제가 안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주 52시간제를 위반한 사업장도 일부 노동자가 특정 기간에 초과하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고려했을 때 기업들의 노동시간 관리 강화, 신규 채용, 근무체계 개편 등 노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섣부른 주 52시간제 도입이 불러온 역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2018년 7월 주 52시간제 제정 후 300인 이상 사업장에 6개월의 계도기간을 둬 처벌을 유예했다. 12월 말 계도기간 종료 후에도 정부는 그 기간을 3개월 연장했다. 이후에도 탄력근로제(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늘리고 줄여 주 52시간을 준수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고용노동부에 보고한 사업장에는 추가 계도기간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기간은 근로기준법 개정이 완료될 때까지로 사실상 2022년까지 기업은 주 52시간제를 위반해도 처벌이 유예된다.
김갑주 노무법인 리즌 대표는 “근로자 보호를 위해 2018년 하반기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됐지만, 기업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자 정부는 처벌을 유예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기업이 주 52시간제를 도입하지 않는다며 불만이다. 기업은 주 52시간제를 위반하더라도 당분간은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이라 법과 현실의 괴리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대표는 “주 52시간제는 분명 근로자에게 필요한 제도지만 노동 집약적인 우리나라 산업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 구조가 지식 산업이나 고부가 가치 산업 구조로 변모해야 노사 모두 주 52시간제에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재원 법무법인 메이데이 대표 변호사 역시 “주 52시간제를 위반한 사업장을 강력히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 제도를 제대로 시행할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처벌 수위를 높인다면 한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최저임금법이 자리 잡는 데만 15년 정도 걸렸다. 주 52시간제도 연착륙하려면 오랫동안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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