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는 3일 국무회의에서 35조 3000억 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3차 추경의 핵심은 문재인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건 ‘한국판 뉴딜’에 있다.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한 방책으로 한국판 뉴딜 추진을 강조해왔다.
이렇게 추진되는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2개의 축으로 하고 고용안전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한국판 뉴딜을 살펴보면 문 대통령이 초기에 내세웠던 특유의 뉴딜은 사라지고 과거 정부나 기존 정책의 재탕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딜’이 아니라 ‘헌딜’이 된 셈이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한국형 뉴딜’을 공약에 내걸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했던 점에서 착안했지만 내용은 달랐다. 문 대통령이 당시 내세운 ‘한국형 뉴딜’의 핵심은 ‘규제의 제도화’와 ‘복지의 제도화’였다. 규제 제도화는 재벌 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 복지 제도화는 연금 제도 확립을 통한 복지국가를 목표로 두었다. 당시 ‘한국형 뉴딜’은 실제 정책이라기보다는 진보 경제 진영의 개념을 담아낸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의 뉴딜은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모호한 개념을 버리고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때 나온 것인 ‘21세기 한국 일자리 뉴딜’이다. 문 대통령은 21세기 한국형 일자리 뉴딜로 공공부문 81만 개, 민간부문 50만 개를 합한 131만 개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다. 공공부문 일자리에 필요한 예산(매년 21조 원)은 기존 일자리 예산 개혁 등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도시재생 뉴딜’이라는 공약도 내세웠다. 매년 달동네 등 100곳을 10조 원씩 들여 개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임기 5년간 총 50조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했던 토목공사와 일자리 창출에 더 가까워진 내용이다.
문 대통령의 ‘21세기 한국형 일자리 뉴딜’은 최저임금 인상 등 장애물을 만나기는 했지만 일자리 예산 증액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휘청거리는 상태다. ‘도시재생 뉴딜’은 현재 눈에 띄는 성과를 찾아보기 힘들다. 부동산 억제책과 충돌하면서 민간 투자가 부진한 탓에 주민들의 체감도가 낮다. 문 대통령이 2월 27일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올해는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이처럼 가시적 성과가 없기 때문인지 문 대통령의 뉴딜 방향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바뀌었다. 문 대통령은 4월 22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방역 관련 자가진단 앱 등을 언급하며 “디지털 뉴딜이 필요하다”면서 “관계 부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로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할 기획단을 신속히 준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한국판 뉴딜’에 ‘디지털 뉴딜’이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정부는 5월 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한국판 뉴딜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의 일상화, 디지털 경제 전환 가속화가 이뤄졌다”며 “디지털 기반 경제혁신 가속화 및 일자리 창출”을 추진 방향으로 제시했다.
한국판 뉴딜이 디지털 뉴딜로 굳어지는 듯했으나 문 대통령이 5월 12일 “요즘 그린 뉴딜이 화두라 한국판 뉴딜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환경부, 산업자원부 등이 그린 뉴딜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지 협의해 서면으로 보고하라”고 지시하면서 ‘그린 뉴딜’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문제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 한국판 뉴딜의 두 축이 되면서 문 대통령이 가장 중요시하는 일자리 뉴딜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3차 추경안에 한국판 뉴딜 예산 5조 1000억 원 배정을 밝히면서 디지털 뉴딜 2조 7000억 원, 그린 뉴딜 1조 4000억 원과 함께 고용안전망 강화 1조 원을 포함시켰다.
경제 상황 변화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 문 대통령 뉴딜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이 이명박, 박근혜 전 정부 정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 특유 뉴딜은 실종된 셈이 됐다. 디지털 뉴딜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그린 뉴딜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유사한 개념이다.
심지어 디지털 뉴딜 중 5세대(G) 국가망 확산이나 인공지능(AI) 인재 양성, 그린 뉴딜 중 공공시설 제로 에너지화나 스마트 상수도 구축 등은 기존에 해오던 정책이다. 문 대통령 지시에 각 부처가 뉴딜이라는 간판만 바꿔서 보고한 것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이번에 내놓은 한국판 뉴딜의 큰 문제점은 정책 기간을 문재인 정부 임기 이후인 2025년까지로 잡고 있다는 점”이라며 “5년간 총 투입되는 총예산 72조 원 중 절반이 넘는 45조 원이 문재인 정부 이후 예산인데, 그간 경험으로 볼 때 새로 들어온 정부가 과거 정부의 사업을 이어받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기업 직영몰, 이커머스와 무한경쟁서 살아남으려면?
·
'임블리' 부건에프엔씨, 성수동 부동산 매매가 177억 '다운' 된 이유
·
특허청 '리얼돌' 상표 허가했다가 취소한 속사정
·
'숭인동 청년주택 6월 입주도 불확실' SH 말바꾸기에 혼란 가중
·
OK저축은행, 모바일 뱅킹 앱은 '오케이'하지 않은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