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담합 사실이 적발되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 처분을 받게 된다. 제재 처분에는 시정명령, 검찰 고발, 입찰참가자격제한 요청 등이 있다. 그중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큰 제재는 과징금 납부 명령이다. 과징금 액수는 담합과 관련된 매출액에서 부과기준율(%)을 곱하는 방법으로 산정되는데, 공정위는 담합을 법 위반 정도가 가장 높은 행위로 간주한다. 담합 사안에서는 특별한 감경 사유가 없는 한 10%의 부과기준율을 적용한다.
이익액이 아니라 ‘매출액’을 기준으로 10%가 과징금 액수로 산정되므로 사건에 따라 거액의 과징금이 산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역대 최고액으로 기록되었던 2014년 호남고속철도공사 입찰담합 건의 경우 28개 건설사에 합계 4355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그해 상장 건설사들의 영업이익은 1조 534억 원 정도였다. 영업이익의 절반 정도를 단 1건의 담합 건에서 과징금으로 납부한 셈이다.
이처럼 현재의 법령과 관행에 따르면 과징금 액수가 엄청난 금액으로 산정될 수 있다. 따라서 담합 사실이 적발되면 공정위 조사나 심의 절차에서는 담합 유무보다는 과징금 액수를 줄이려는 노력에 집중하게 된다.
법원에서 과징금 액수를 감경받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법원 절차에서 담합 유무보다 과징금 감경에 주력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전략이다. 판례는 공정위에 과징금 액수 산정에 관한 재량을 인정한다. 중대한 사실오인, 비례·형평의 원칙 위배 등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과징금 액수 산정에 개입되지 않는다.
결국 공정위 절차에서 과징금을 최대한 감액 받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지난해 사건 중 지극히 예외적으로 2~3%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된 사유를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담합사건에서는 10%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되므로, 2~3%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된 점은 공정위가 사건을 경미하다고 판단했거나 사업자들의 소명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① 히타치 스토리지 구매·설치 입찰 담합 건에서는 2%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됐다. 입찰 담합으로 인한 수요자의 피해가 크지 않다고 판단됐다. 스토리지 신규도입과 달리 증설의 경우는 입찰을 통해 경쟁을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입찰 전후 ‘발주처와의 가격협상·조정 절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② 포항영일신항만 발주 컨테이너 부두 운영사업자 선정 입찰 담합 건에서는 담합이 유찰방지 목적으로 이뤄졌고 ‘발주처 피해가 현저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3%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됐다.
③ 엘지유플러스 발주 IBS 구축공사 입찰 담합 건에서도 3%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됐다. 담합 대상 건수가 1건에 불과하고 유찰방지 목적이 있었다는 이유다. ‘발주처가 입찰 전에 A 업체 컨설팅을 받아’ 애초부터 제품이나 기술이 A 업체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어 발주처의 피해가 크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④ 조달청 발주 정보시스템 기반 환경개선 사업 용역 입찰 담합 건에서는 ‘발주처와의 협상 절차’를 통해 입찰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됐고 들러리사는 담합 대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고려됐다. 또 낙찰사는 대표이사 관여 없이 실무자 독단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판단돼 3%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됐다.
⑤ 한수원 발주 웹 전환구축 용역입찰에서는 담합이 발주처의 유찰방지 요청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고 봤다. ‘입찰이 SAP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에 한정’된 제한경쟁으로 시행돼 경쟁의 여지가 크지 않았으며 부당이득이나 피해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2%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됐다.
지면의 관계상 감경 사유를 키워드 위주로 살펴봤다. 키워드만 보더라도 과징금이 대폭 감액된 사안의 경우 발주처가 협상, 조정 등 절차를 통해 가격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공통점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즉 일반적인 입찰에서는 계약금액이 낙찰자의 입찰금액으로 결정되지만, IT사업 등 특수한 분야의 입찰에서는 낙찰자와 발주처 간의 협상·조정을 통해 계약금액이 정해진다.
SI(System Integration), 솔루션 구축 등 IT 사업의 경우 사전에 용역의 내용과 계약금액을 확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발주처가 발주 단계에서 IT 전문 기업으로부터 컨설팅을 받거나 계약 체결 전 낙찰자와 협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발주처가 계약금액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반면 일반적인 입찰에서는 낙찰자의 투찰금액에 따라 계약금액이 결정되므로 발주처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IT 사업 입찰 담합은 다른 분야에서의 담합보다 그 악성이 경미하게 평가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분야가 기술적으로 특수한 영역에 속해 있다면 위와 같은 내용을 참고하여 감경 사유를 적극적으로 소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처음부터 담합의 소지를 만들지 않는 방안이 가장 중요하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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