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990년 우주왕복선을 타고 지구 저궤도로 올라간 허블 우주망원경은 인류 최초로 지상이 아닌 우주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망원경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올해 드디어 허블 망원경은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있다. 이를 기념해, 다른 곳에서는 잘 알려주지 않지만 언뜻 들으면 궁금해지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비밀 세 가지를 소개한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왜 가까운 달은 보지 못할까? 빠르게 움직이면서 어떻게 방향을 조준할까? 다 쓰고 나면 어떻게 버릴까? 올해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허블 우주망원경의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궁금증, 허블 망원경은 왜 가까운 달이나 명왕성은 찍지 않을까
2003년 9월 24일 허블 망원경은 남쪽 하늘의 작은 별자리, 화로자리 방향의 하늘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보름달 하나보다 훨씬 더 작은 겨우 2.3각분(arcmin) 크기의 영역을 바라봤다. 이는 전체 하늘의 겨우 1300만 분의 1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조각 하늘이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작은 하늘 조각처럼 보이는 그런 좁은 영역이다.
당시 허블 망원경은 2004년 1월 16일까지 이 작은 하늘을 쭉 담았다. 세 달 가까운 관측 기간 동안 허블 망원경은 지구 주변을 약 400번 돌았고, 그 기간 동안 망원경의 광학 장비로 우주의 빛을 담아낸 전체 노출 시간은 약 22일에 달했다. 그리고 천문학자들은 이 긴 관측을 통해, 눈으로 볼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아주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보름달보다 훨씬 더 작은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조각 하늘 같은 그 좁은 영역 안에는 먼 우주에 숨어 있던 약 만 개가 넘는 은하들의 흐릿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구 대기권의 방해를 받지 않는 우주 궤도로 올라, 아주 좋은 성능으로 우주 끝자락에 있는 먼 천체들의 빛을 담아낸다. 그렇다면 그보다 훨씬 더 가까운 달이나 명왕성, 목성 등 태양계 천체들의 모습도 아주 선명하게 잘 담아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굳이 10년이나 기다려서 탐사선을 보내지 않아도 편하게 허블 망원경으로 명왕성을 관측하거나, 달 표면에 꽂혀 있는 성조기 인증샷을 허블 망원경으로 찍어서 아폴로 달 착륙이 사기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허블 우주망원경은 가까운 태양계 내 천체들은 잘 담지 않는다. 또 담아낸 퀄리티도 좋지 않다. 왜 그런 것일까?
허블 망원경은 지구 주변을 빠르게 맴돌면서 우주를 관측하는 지구 저궤도의 인공위성이다. 그래서 고속으로 움직이는 허블 망원경의 시야에서는 상대적으로 훨씬 가까운 태양계 내 천체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오랫동안 한 방향을 정조준하고 바라보기 까다롭다. 게다가 태양 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태양계 내 천체들은, 허블 망원경의 민감한 눈에는 너무 밝다. 애초에 아주 먼 우주 끝자락의 어둡고 흐릿한 은하들의 빛을 담기 위해 제작된 허블의 광학 장비와 디텍터, 센서로 밝은 달빛을 담는다면 허블 망원경의 장비들은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아쉽게도 허블 망원경의 눈으로는 달에 꽂힌 성조기를 담지 못한다.
물론 허블 망원경으로도 태양계 내 목성이나 명왕성 등 여러 천체들을 촬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먼 은하들을 찍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처참한 퀄리티다. 먼 은하들은 선명하게 잘 담아내지만, 훨씬 가까운 태양계 천체들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것은 각 천체의 거리와 크기로 결정되는 시야각 때문이다.[1][2]
예를 들어 지구에서 약 7200만 광년 거리에 떨어진 채 약 5만 광년 크기로 펼쳐진 거대한 나선 은하 NGC 5584를 허블 망원경으로 담아낸다고 생각해보자. 이 은하의 지름과 은하까지의 거리의 비율은 1400 대 1 정도 된다. 반면 명왕성의 지름은 2400km이고 지구에서 명왕성까지 거리는 약 47억 km쯤 된다. 명왕성의 경우 그 크기와 거리의 비율은 앞선 은하에 비해 훨씬 더 작은 200만 분의 1 정도다.
즉 은하들은 훨씬 더 멀리 있지만 그 크기가 훨씬 큰 덕분에 허블 망원경의 시야에서는 더 크게 보인다. 반면 명왕성은 거리는 훨씬 가깝지만 크기가 너무 작아서 허블 망원경의 시야에서는 더 작게 보인다. 허블 우주망원경의 시야에서 한 픽셀은 약 0.04각초(arcsec) 정도의 영역을 담을 수 있다. 앞서 예로 들었던 은하 NGC 5584의 경우 허블 망원경의 시야에서 약 3600픽셀 정도로 담긴다. 반면 명왕성은 겨우 두세 픽셀로 담길 뿐이다. 그래서 애써 허블 망원경으로 태양계 천체들을 찍더라도 아주 뿌옇게 저화질로 담긴다.
아주 먼 수십억 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도 허블 망원경의 시야에 더 선명하게 담길 수 있다는 것은, 은하들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이야기해주는 셈이다. 이 때문에 허블 망원경의 눈은 우리 은하 바깥 아주 먼 우주의 은하들을 향하고 있다.
#두 번째 궁금증, 허블 망원경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어떻게 한 방향을 정조준할까
앞서 설명했듯이 허블 우주망원경은 빠르게 움직이는 인공위성이다. 따라서 허블 우주망원경의 시야의 방향은 계속 빠르게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먼 우주를 온전하게 보기 위해서는 긴 시간 동안 정확하게 한 방향을 계속 조준하면서 빛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저격수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서도 멀리 떨어진 표적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 같다. 대체 어떻게 허블 망원경은 이런 조준 실력을 가질 수 있을까?
허블 망원경의 조준을 맡은 포인팅 컨트롤 시스템(Pointing Control System)은 다양한 센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센서는 태양의 방향을 기준으로 허블 망원경의 방향을 측정하고, 망원경의 시야가 계속 태양을 등져서 밝은 태양빛에 장비가 상하지 않도록 보호한다. 허블 망원경은 최소한 태양 방향에서 50도 이상 벗어난 방향을 봐야만 장비를 보호할 수 있다. 더 안쪽으로 태양 쪽을 보는 순간 민감한 광학 장비들은 모두 타버린다.
또 센서로 측정한 지구의 자기장과 자이로 장비의 움직임을 통해 허블 망원경이 매순간 어떤 방향의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측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확하게 허블 망원경의 시야 방향을 측정했다고 하더라도, 육중한 망원경의 몸체를 빠르게 틀어서 방향을 돌리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허블 망원경이 빠릿빠릿하게 몸을 돌려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건 그 안에 들어있는 네 개의 리액션 휠(Reaction wheel) 덕분이다.[3]
당신이 커다란 자전거 바퀴를 들고 우주 공간에 두둥실 떠다니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당신이 들고 있던 자전거 바퀴를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놀랍게도 당신의 몸은 그 반대인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이는 자전거 바퀴를 쥐고 있는 당신의 몸 전체의 회전 각운동량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전거 바퀴가 도는 그 반대 방향으로 당신의 몸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즉 우주 공간에서는 굳이 당신의 몸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자전거 바퀴만 굴려주면 당신의 몸을 원하는 방향으로 틀 수 있다.
자전거 바퀴를 활용해 각운동량이 보존되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 시연 영상. 자전거 바퀴를 회전시키면서 쥐고 있으면, 회전 방향에 따라서 몸이 돌아가는 방향이 바뀐다. 영상=George Zaidan
바로 이러한 원리를 활용해 허블 망원경은 자세를 잡는다. 망원경에 탑재된 고성능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망원경의 현재 각도와 보고자 하는 천체 방향의 차이를 계산하고, 원하는 방향을 계속 정조준할 수 있도록 리액션 휠을 빠르게 회전시킨다. 허블 망원경 안에는 각각 자동차 바퀴보다 살짝 작은 네 개의 리액션 휠이 들어 있다. 이 휠들이 가장 빨리 회전하면 육중한 허블 망원경도 15분 안에 90도까지 방향을 틀 수 있다.
허블 망원경 안에는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 그 자기장을 활용해 망원경의 자세를 틀 수 있게 해주는 자기장 자이로도 함께 들어 있다. 철 와이어가 칭칭 감겨 있는 이 장비로 지구의 자기장을 활용해 회전하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속도를 늦추거나 가속할 수도 있다.
아쉽게도 허블 우주망원경은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맞이하던 2018년 10월 망원경의 자세를 제어하던 리액션 휠 중 하나가 망가지면서 잠시 안전 모드(safe mode)에 들어간 적이 있다. 다행히 아직 살아 있는 나머지 리액션 휠들을 활용해 작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벌써 서른 살을 맞이하며 오랜 시간 혹사한 허블 옹의 몸 구석구석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음을 잘 보여주는 걱정스러운 사건이었다. 허블 우주망원경 역시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
#세 번째 궁금증, 허블 우주망원경의 수명이 다하면 어떻게 될까
1990년 미션이 시작되던 때만 하더라도 허블 망원경의 최대 기대 수명은 15년 정도였다. 그러나 뒤이어 발사하기로 한 차세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James Webb Space Telescope)의 발사가 지금껏 지연되고, 그간 우주인들의 수리를 통해 허블 망원경이 계속 보강되면서 버텨준 덕분에 벌써 서른 번째 해를 넘기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곧 명예 퇴직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고도 약 560km 상공을 돌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도 서서히 지구 대기권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결국 연료가 다 떨어지고 더 이상 궤도를 조정할 수 없게 되면 다른 우주 발사체와 마찬가지로 허블 망원경도 서서히 속도가 느려지고 궤도가 낮아지면서 지구 대기권 속으로 추락하게 된다.[4]
한때 일부 감성적인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역사적 의미가 너무나 큰 만큼 은퇴한 허블 우주망원경을 무사히 지상으로 복귀시켜 박물관 안에 모셔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허블 우주망원경처럼 큰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는 우주왕복선이 없어 너무 막대한 비용이 드는 계획이라 실현 가능성은 낮다. 결국 현재로선 허블 우주망원경도 앞으로 10년 안에 지구 대기권 상공에서 추락하는 별똥별이 되어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ATV 쥘 베른(Jules Verne) 위성이 태평양으로 추락하면서 대기 중에서 파괴되는 모습. 인공위성이 폐기되는 슬픈 모습이지만 동시에 장엄하게 느껴진다. 영상=ESA/NASA
그렇다면 허블 우주망원경은 결국 어디에 버려지게 될까? 지구에는 지금껏 가장 많은 인공위성들이 수장된 ‘인공위성들의 공동묘지(Spacecraft Cemetery)’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포인트 니모(point nemo)는 모든 대륙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다 한가운데다. 이곳은 해류가 맴도는 중심에 있기 때문에, 바다 속 영양분이 잘 도달하지 않아서 생명체도 거의 살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그동안 많은 우주 폐기물들이 포인트 니모에 추락, 처리되었다. 소련의 우주정거장 미르를 포함해 지금까지 약 300개에 가까운 인공위성들이 수장되었다. 허블 우주망원경 역시 장엄한 은퇴를 거행하게 된다면, 아마 이 포인트 니모를 향해 추락하며 최후를 맞이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까운 미래 잠수함을 타고 심해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녹슬어 버린 허블 망원경을 비롯해 인류 우주 탐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유물들이 수장되어 있는 꽤 섬뜩하고 오묘한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생일날, 허블 망원경은 어떤 우주를 찍었을까
풋풋했던 20대가 끝나고 계란 한 판,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있는 허블 망원경을 기념하며 NASA에서는 아주 재밌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 내 생일날 허블 망원경이 어떤 우주를 담았는지, 내가 원하는 날짜에 허블 망원경으로 찍었던 사진을 바로 확인해볼 수 있다. (관련 링크 https://www.nasa.gov/content/goddard/what-did-hubble-see-on-your-birthday)
내게 의미 있는 날에 허블 망원경이 어떤 우주를 담았었는지를 돌아보며, 그날을 더욱 특별한 우주적인 날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허탄일 30주년을 함께 기념하며 현대 천문학사의 1세대 우주망원경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해보자.
[3] https://www.nasa.gov/content/goddard/hubble-space-telescope-pointing-control-system/
[4] https://www.nasa.gov/multimedia/imagegallery/image_feature_1188.html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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