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이가 다시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약 75일 만이다. 3월 중순,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학부모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반강제적 ‘격리’를 통보 받으며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들떠 있었다. 5월 초, 프라이머리(초등학교) 최고 학년인 5학년부터 시작된 순차적 등교는 어찌 된 일인지 3학년이 가장 늦은 순번이 돼 아이는 6월을 코앞에 두고 첫 등교를 할 수 있었다.
아이보다 먼저 등교를 시작한 학년의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아이가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실망만 하고 돌아왔다’고들 했다. 사회적 거리 유지가 가능한 수준으로 인원수를 맞추려다 보니 각 반을 두 개 그룹으로 나눠 주 1~2회 격일 등교를 하고, 그나마도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쉬는 시간조차 친구들과 접촉이 금지된 채 정해진 자리에서 ‘혼자 놀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학교에 흥미를 잃는다는 것.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듣고 보니 학교에 간다고 부풀어 있는 아이 역시 막상 가보면 크게 실망하고 우울해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섰다. 온갖 위생수칙과 거리 두기 등 규칙들을 반드시 준수한다는, 학교에서 서명을 요청한 서약서를 보여주며 학교생활이 예전 같진 않을 거라고 등교 전부터 ‘밑밥’을 깔아두는 것으로 일단 예방적 조치를 취했다.
첫날, 어쩌면 아이보다 설렌 건 나였는지도 모른다. 매일 가던 등굣길을 오랜만에 다시 가니 이 상황에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는 긴장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저 감개무량했다. 그것도 잠시, 교문 앞에 도착한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마스크를 쓴 아이들과 학부모들, 교문 앞에서 ‘서약서 제출 여부’를 체크 중인 학교 관계자들, 한 명 한 명 거리를 유지시키며 정해진 각 반 라인업 장소로 아이를 데려가는 담임과 교장선생님, 1.5미터 간격을 지키며 친구들과 제대로 말도 섞지 못하고 대기 중인 아이들 등 모두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풍경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고작 한 달 남짓 남은 베를린에서의 학교생활을 단 한 번도 같은 반 친구들을 다 만나보지 못한 채 이런 식으로 마무리해야 할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다행히 등교 첫날에 대한 아이의 반응은 ‘그래도 좋았다’였다. 단축수업 하느라 3시간 남짓 교실 안에만 있다 왔지만, 같은 날 등교하는 그룹에 속한 친한 친구 두세 명과는 제대로 인사도 못했지만, 매번 ‘허가’를 받고 선생님 동행하에 한 명씩만 가야 하는 화장실은 번거로움 때문에 한 번도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인원이 적어 수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며, 이렇게라도 학교를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저 좋다는 아이의 말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럽게 들렸다.
등교라고 해봐야 7월 초 방학까지 고작 열흘이 전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기존 방식처럼 온라인 홈스쿨로 대신한다는 방침이지만, 말이 온라인 스쿨이지 강제성 없는 과제를 내주는 것 외에는 딱히 진행되는 게 없다. 오히려 디지털 디바이스를 이용하다 보니 과제를 하고 제출하는 과정만 복잡해져 시간만 더 걸리는 느낌이랄까.
두 달 넘게 온라인 홈스쿨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학부모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학습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이것저것 부모가 챙겨야 할 것들도 적지 않아 하루 종일 부모 역할에 보조 선생님 역할까지 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쌓였다. 심지어 무료로 교육받는 공립학교도 아니고 매달 적지 않은 학비를 꼬박꼬박 내면서도 온라인 홈스쿨 커리큘럼은 공립에서 이뤄지는 것과 별 차이가 없으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일부 학부모들은 학비를 일부 조정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학교에 요청했지만, 그럴 때마다 학교는 무응답으로 대응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정규 수업이 올 스톱돼 예상보다 3개월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 지인의 경우에는 ‘학교를 떠나더라도 계약서대로 7월 말까지 학비를 납부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다. 여긴 ‘계약서’가 존재하다 보니 천재지변에 가까운 상황이 생겨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학비는 ‘계약대로’ 납부해야 한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계약만료가 예정된 우리 가족의 경우는 그나마 7월로 끝나지만, 다음 학기에 다니는 것으로 계약된 아이들은 다음 학기까지 정상 수업이 안 되더라도 매달 학비를 내야 한다. 한국에서 비싼 학비에도 제대로 수업이 안 되는 상황 때문에 사립초등학교 이탈자가 많아진다는 뉴스를 봤는데, 이곳에선 내 맘대로 이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동안 하는 것 없이 비싼 학비만 내는 상황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학교에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이렇게라도 학교에 다니며 베를린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걸 감사해야 하나 싶어졌다.
그런 와중에 한국 학교들이 아이들의 등교를 위해 취한 조치를 보니 여기와 얼마나 비교되는지. 책상마다 투명 칸막이를 설치하고, 위생을 위해 소독제 등을 제공하고, 완벽하게 ‘각자’의 식사공간을 만들어낸 급식실 풍경 등을 보며 드는 생각은 ‘한국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은 걱정될 수밖에 없겠지만, 하다 못해 발열체크도 ‘각자 알아서 하고 오라’는 여기 상황을 겪어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독일 사람들은 방역한다면서 간격 맞춰서 테이프 붙이는 것만 해.”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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