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모레퍼시픽이 호주 고급 스킨케어 전문기업 ‘래셔널그룹’에 500억 원 규모 지분투자 계약을 체결했다고 14일 발표했다. 해외 유명 스킨케어 전문기업과 전략적 비즈니스 파트너십 계약을 맺은 건 미래 먹거리로 ‘맞춤형 화장품’을 내세우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래셔널그룹’은 호주에서 단일브랜드 ‘래셔널’을 통해 맞춤형 화장품 서비스를 제공하며 급성장 중인 화장품 기업으로, 국내에선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다.
아모레퍼시픽은 보도자료를 통해 “래셔널은 친환경 스킨케어와 후성유전자 연구의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 파트너십을 계기로 양사의 공동 혁신 방향인 고객 맞춤형 화장품 솔루션이 더욱 진화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로나19 이슈로 실적이 좋지 않은 와중에 진행된 인수합병 소식에 업계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모레퍼시픽의 올 1분기 매출액은 1조 2793억 원으로, 전년 대비 22% 하락했다.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67% 하락한 679억 원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이 컸다. 국내시장도 좋지 않았지만, 특히 해외시장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맞춤형 화장품은 계속해서 준비해온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국내 화장품 업계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LG생활건강의 1분기 실적은 ‘위기 속 약진’이라는 평을 받는다. 1분기 영업이익은 3337억 원으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으며, 매출도 1조 8964억 원으로 1.2% 늘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1분기에는 코로나19 이슈로 일시적 요인이 많았기 때문에 아모레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적으로 실적이 좋지 않았다. 대부분 내재적 요인보다 코로나19 영향이다. LG생활건강이 예상 밖 서프라이즈였던 셈이다. LG생활건강은 ‘후’ 브랜드 판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중국 현지에서 비교적 타격을 덜 받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중저가제품 대비 고가제품 매출기여도가 중국에서 낮다 보니 실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LG생활건강이 마스크나 손 세정제 등 코로나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매출 증가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유 있는 고전, 과거 영광 되찾을 수 있을까
아모레퍼시픽은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판매전략이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되면서 매장 수를 줄이고, 자사몰 중심이던 판매전략을 H&B(Health & Beauty) 스토어 입점으로 넓히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음료·생활용품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해온 LG생활건강과 비교해 화장품에만 집중한 전략이 위기 상황에서 독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평소에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비교할 때 화장품 파트를 두고 한다. 주요 성장동력인 화장품과 비교해 음료·생활용품은 고성장이나 해외시장을 기대하는 업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가져온 위기에서는 이들이 큰 역할을 했다. LG생활건강이 그동안 사업다각화를 통해 구축해온 생활용품·위생용품·식음료의 사용량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늘었다. 전반적으로 광고·마케팅 비용을 줄인 효과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오프라인 매장이 강세를 보이던 시기를 지나 온라인으로 무대가 옮겨지면서 직영점인 ‘아리따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랜드마크 역할을 하던 아리따움 라이브 강남점도 최근 1년 8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온·오프라인 모두 자사 몰에 집중하던 전략도 변경했다. 최근 아리따움 매장·백화점 입점·방문판매 중심으로 돌아가던 판매 전략을 라네즈·마몽드 같은 자사 브랜드 H&B 스토어 입점 등 다방면으로 확장해 탈출구를 찾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직영 매장 수를 25개에서 10개 수준으로 줄일 예정이다. 다만 가맹사업 중심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해왔기 때문에 전체 매장 수를 갑자기 줄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화장품에 집중한 전략이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도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경쟁사인 LG생활건강과 비교해 M&A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은 2000년대 들어서 쿠션·로드숍 등으로 성장하면서 화장품에 집중했다. 급격한 성장 속에서 미래 먹거리를 대비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K-뷰티가 내수시장의 한계를 느끼고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린 지 오래됐는데, 중국 시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자체 수요를 갖추면서 성장에 발목이 잡혔다”고 분석했다.
2분기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코로나19 이슈가 해외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반영될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전 산업이 영향을 받다 보니 당장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올해 미국·호주·유럽 등 해외 시장을 확대할 예정이었다. 작년에 진행한 투자로 올해 성과를 얻어야 할 시점이다 보니 영향이 컸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나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미래먹거리로 꺼내든 맞춤형 화장품, 구원투수 될까
아모레퍼시픽의 위기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호주 맞춤형 화장품 기업과의 M&A가 해결책이 될지에 이목이 집중된다. 맞춤형 화장품이 시장에서 자리 잡아 수익을 내기에는 아직 변수가 많다. 맞춤형 화장품은 제조·수입된 화장품을 덜어 소분하거나 다른 화장품 내용물 또는 원료를 추가·혼합한 화장품을 말한다. 몇 년 전부터 업계의 넥스트 스텝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올해 초에야 정부가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에 발맞춰 현장에서 피부 유전자 분석과 맞춤형 3D 마스크 제조가 가능한 ‘아이오페 랩’ 매장을 리뉴얼 오픈했다. 매장에서 개인의 피부상태를 측정하고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맞춤형 마스크와 세럼을 제공한다. 하지만 아직은 ‘체험’에 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피부고민 상담부터 마스크팩 제작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7만 5000원이라는 가격도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슈로 소비자들이 대면 접촉을 꺼려하면서 아직까지 큰 반응은 없지만 체험해본 소비자들에게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중소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새로운 산업인 만큼 업계에서 쉽사리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인데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대기업 중심으로 ‘시도’해보는 정도인 것 같다. 업계 트렌드를 바꾸거나 큰 수익이 나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고 전했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화장품 업계는 점점 더 고급화 전략과 저가 전략으로 양분화될 것이다. 맞춤형 화장품은 고급화 전략에 맞는 제품으로 정부에서도 밀어주고 있다. 영국 등 해외에서는 유전자 분석으로 노화도를 측정해 그에 맞는 제품을 만들거나 빅데이터로 개개인의 피부를 분석해 화장품을 제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LG생활건강에 비해 외부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이너(먹는) 뷰티 제품·의약외품까지 넓혀 나간 LG생활건강에 비해 늦은 감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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