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현대산업개발이 인수와 관련된 뚜렷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아 인수 절차가 지연되고 있어서다. 항공 및 경제 전문가들은 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철회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면서도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아시아나 채권단이 파격적인 자금 지원을 추가로 제시한다면 인수 움직임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내다본다.
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 인수 포기설은 4월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 인수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현대산업개발은 당초 4월 30일까지 아시아나의 주식취득을 완료할 예정이었는데, 29일 공시를 통해 주식취득예정일자를 삭제한 것. 기업결합심사를 받아야 하는 6개국 중 러시아의 심사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게 대외적인 이유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아시아나가 2분기 완전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이 제기되자 인수 협상 결렬설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모빌리티 그룹’, 재계 10위는 욕심나는데…
전문가들은 기존 협상조건 그대로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내다본다. 아시아나의 재무 상태 탓이다.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아시아나는 292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부채 총계는 2019년 말보다 약 6000억 원 증가한 13조 2040억 원, 자본 총계는 6980억 원가량 쪼그라든 2102억 원이었다. 자본잠식률은 지난해 말 18%를 훌쩍 뛰어넘은 81.2%을 기록했다. 자본잠식 등 재무상태 변화는 ‘중대한 부정적 변화’로 매매 계약 파기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건설 업종의 현대산업개발은 유형자산을 강조하는 쪽이라 무형자산이 많은 항공 산업을 이해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 항공업계가 2022년이 되어야 지금의 95% 수준으로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인 데다 아시아나의 자산 가치에 의문이 쌓이면 인수 포기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미래에셋그룹이 최근 중국 안방보험과 맺었던 7조 원 규모의 미국 호텔 매매계약을 취소한 것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산업개발로서는 그대로 인수하는 것보다 계약금 2500억 원을 날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지난해 4월 1조 6000억 원을 지원한 데 이어 지난 24일 1조 7000억 원의 추가 자금 지원을 결의했지만 현대산업개발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는 데서 백지화 가능성을 높게 본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회복이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현대산업개발의 고민이 가중됐으리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항공과 물류를 중심으로 한 ‘모빌리티 그룹’의 청사진을 그리는 현대산업개발이기에 인수 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이 항만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나를 인수하면) 향후 육상·해상·항공 영업을 함께 영위하는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를 인수하게 되면 재계 30위권에서 재계 10위권으로 껑충 뛰어오를 수 있다.
앞서의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이 재계 31위이지만 도약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다른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으니 당연히 욕심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현대산업개발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 방안을 마련하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2015년에는 호텔신라와 협력해 같은 해 12월 용산 아이파크몰에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을 열었다. 지난해 7월에는 인천신항 항만배후단지 개발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채권단에서 파격적인 협상 조건 제시할 가능성도
따라서 탐은 나지만 덥석 물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부닥친 현대산업개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현대산업개발이 지금처럼 ‘시간 끌기 작전’에 돌입하는 게 그나마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산업개발의 인수 부담을 확 낮춰줄 방안이 필요한데, 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포기할 경우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지 않으니 아시아나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현대산업개발의 마음을 굳힐 획기적인 대책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허희영 교수는 “아시아나는 상반기 완전자본잠식에 빠질 것이라 예상된다. 만약 현대산업개발이 인수하지 않으면 다시 공개매각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인수자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가기간산업인 항공 산업에 해당하는 아시아나를 청산할 수는 없으니 결국 산업은행이 떠안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것도 산업은행으로선 상당히 부담스럽다”며 추가 지원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허 교수는 “다만 대한항공과의 형평성 문제, 세금이 투입된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현대산업개발이 원하는 만큼 조달해주지는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파격적인 협상 조건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최소 이자는 10년 상환해주거나 지분 취득일을 유예해주는 방식이다. 인력 구조조정 관련해서도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 현재 아시아나의 적자를 줄이려면 인력을 줄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인원을 30~40% 감축했을 때 고용 안정성을 해친다고 지적하지 말 것을 요구할 수 있다”며 “만약 아시아나가 무너지면 대형항공사(FSC·Full Service Carrier)는 대한항공 독점 체제로 가야 한다. 그러면 노선 편중이나 가격 상승 같은 부작용 발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는 다가오고 있다. 결정을 미뤄온 명분인 러시아 기업결합심사 승인이 이번 주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공문 발송 등 공식 절차에 들어갈 예정으로 알려졌다. 금호산업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시아나 쪽에서) 따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기존 계약서에 나온 대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인수 절차는 그대로 진행 중”이라고 짧게 답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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