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말 몰랐다, 2000년대를 씹어 먹던 비가 ‘밈’의 대상이 될 줄은. 스트리밍·동영상 플랫폼을 기반으로 인터넷에서 빠르게 유통되는 콘텐츠를 뜻하는 밈(Meme)은 이미 ‘사딸라’를 외치던 ‘야인시대’ 김영철, ‘마포대교는 무너졌냐’던 ‘타짜’의 김응수 등 여러 흘러간 콘텐츠의 주인공들을 강제 소환하며 인기를 안긴 바 있다. 하지만 비가 2017년 발표한 ‘깡’은 앞선 사례와는 조금 달랐다. 2017년이라는 시대에 맞지 않은 과함으로 오히려 촌스럽게 다가온 ‘깡’은 2019년 비가 주연으로 나섰으나 참패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과 더불어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월드스타 비’가 이렇게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몰락하나 싶었다.
그런데, 알음알음 유튜브에서 ‘깡’ 뮤직비디오를 보며 댓글로 비를 놀리던 분위기는 ‘호박전시현’이라는 여고생 유튜버의 ‘1일 1깡 여고생의 깡 커버’라는 패러디 동영상이 핫한 인기를 끌어 모으면서 각종 패러디와 촌철살인 댓글의 향연이 어우러지는 유쾌한 놀이의 장으로 변화된다.
절정은 지난 5월 16일 방영한 예능 ‘놀면 뭐하니?’에 직접 등판해 대인배의 풍모로 ‘깡’에 대한 온갖 놀림을 포용하며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은 비 자신이다. 그래, 한 시대를 씹어 먹던 스타의 기량이 어디 가겠어? 다시금 전성기를 맞고 있는 비의 ‘귀염뽀짝’하던 모습을 볼 수 있는 드라마 ‘풀하우스’가 생각난 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꼬꼬마들아, 우리 비 오빠(멋있으면 다 오빠)가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는 드라마.
‘풀하우스’는 ‘상두야, 학교가자’에 이어 비가 정지훈이란 본명으로 출연한 드라마로, ‘가수가 연기도 되네?’를 넘어 비를 아시아권에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는 한류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만화가 원수연의 동명 순정만화를 원작(그러나 분위기는 상당히 꽤 다르다)으로 삼고 스타 PD 표민수가 연출한 ‘풀하우스’는 ‘가을동화’ ‘올인’으로 스타덤에 오른 송혜교가 비의 상대역으로 출연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남녀 주인공이 크고 작은 오해를 겪으며 결국 사랑에 골인한다는 전형적인 로코물이기에 스토리의 빈약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왜냐, 비와 송혜교가 너무너무 사랑스러웠거든!
인터넷 소설을 쓰며 소설가를 꿈꾸는 한지은(송혜교)은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가 만든 집 풀하우스에 혼자 살고 있다. 중국여행 경품행사에 당첨되었다는 오래된 친구 커플인 신동욱(강도한)과 양희진(이영은)의 거짓말로 중국으로 떠나던 지은은 비행기 안에서 한류스타인 이영재(정지훈)를 만난다. 중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친구들에게 사기를 당했음을 알게 된 지은은 우여곡절 끝에 영재에게 돈을 빌려 한국에 돌아오지만, 자신의 집 풀하우스마저 친구들이 팔아 넘겼다는 경악스러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게다가 새로 집주인이 된 사람은 계속 얽히고설키는 왕싸가지 이영재다!
어찌어찌 지은의 불쌍한 사정을 알게 된 영재는 가정부 일을 시키는 조건으로 풀하우스에 지은을 들이는데, 이윽고 사건이 터진다. 어릴 적부터 첫사랑이었던 친구 강혜원(한다감, 당시 한은정)이, 역시 오랫동안 좋아했던 유민혁(김성수)에게 고백했다가 너를 좋아하는 영재한테 가라는 말로 차이자 영재에게 화풀이하며 나를 좋아하냐고 묻자 영재가 홧김에 그 자리에 있던 지은을 좋아한다며 키스를 해버린 것. 하필 파티장에서 그런 사달이 일어나며 사진까지 찍히자 영재는 지은과 계약결혼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몇 개월만 살고 이혼한 뒤 풀하우스를 위자료로 넘기는 조건으로.
남녀가 계속 가까이 있으면 정분이 난다고 했던가. 지은과 영재는 풀하우스에 살면서 차츰 정이 쌓이고 서로에게 신경이 쓰인다. 사실 이성적인 시선으로 보면 결벽증이 지나쳐 맨날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청소를 시키고, 어린애 같은 화법으로 깐죽깐죽 상대의 약점을 놀리며, 시시때때로 “밥 줘!”를 외치는 이영재가 끌릴 까닭이 없지만. 뭐, 세상은 이성만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니까요.
여기에 이영재와 한지은을 둘러싼 연적이 등장하며 두 사람의 관계에 기름을 붓는다. 영재가 지은과 홧김에 계약결혼하게 만드는 강혜원은 유민혁에게 거부당하자 영재에게 여지를 남기며 마음을 들쑤시고, 잘나가는 독신남이던 유민혁은 절친한 동생 영재의 아내가 된 한지은의 통통 튀는 매력에 마음을 빼앗긴다. 캐릭터 자체가 어느 정도 발암 캐릭터여서 16년 만에 다시 보면서도 박막례 할머니에 빙의한 듯 욕을 한 사발 퍼붓게 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들 덕분에 영재와 지은이 오해와 오해를 거듭하다 한층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으니 용서하는 걸로(?).
앞서 말했든 ‘풀하우스’는 스토리의 빈약함을 송혜교와 비의 사랑스러움으로 이겨낸다. 결혼 후 인사 드리러 간 시가에서 선물이랍시고 동요 ‘곰 세 마리’를 앙증맞은 춤과 함께 선보인 한지은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닭대가리냐?” “너 조류지?” “밥 줘!” 등 미운 말만 골라 하는 이영재지만 순간순간 낑낑거리는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여주인공은 물론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드는 비의 귀여움은 중독적인 ‘깡’만큼이나 속수무책으로 중독된다고. 오죽하면 같이 ‘풀하우스’를 보던 90년대생 막내동생이 초반에는 “어우, ‘밥줘충’이야 뭐야” 하면서 질색팔색 하더니 뒤로 갈수록 “어머, 근데 너무 귀엽다~”를 외쳤다니까(아, 김태희도 이런 매력에 반한 건가).
‘1일 1깡’ 중인 ‘깡팸’이라면 ‘풀하우스’를 다시 보길 권한다. ‘깡’의 ‘꾸러기 표정’에 진저리치던 사람들도 ‘풀하우스’ 이영재의 강아지 같은 표정엔 반할 것임을 장담한다. 아,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이미 접했을 수도 있겠구나.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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