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행정소송 승소율 100%를 달성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처분의 정당성이 강화됐다고 보는 긍정적인 의견이 있는가 하면, 공정위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처분해 사건 자체가 줄어든 결과이므로 반길 일이 아니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이렇듯 공정위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 건수와 공정위 승소율 등은 경제정책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로서 많은 사람의 관심거리가 된다.
공정위 승소율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공정거래법의 내용이다. 공정거래법이 공정위 처분의 요건이나 절차를 완화하면 공정위 승소율은 상승하고, 반대로 엄격하게 규정하면 공정위 승소율은 하락하게 된다.
지난 4월 29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사·심의 과정에서 적법절차의 원칙을 강화하는 내용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두고 기업의 방패가 커지고 공정위 칼날이 무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다른 행정기관과 비교할 때 공정위의 조사·심의 절차는 정교하게 설계돼 사법절차와 유사한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내용은 아니나 업계에서는 공정위에 인·허가권이 없어서 공정위 처분을 다투는 행정소송이 빈번하게 제기된다고 한다. 실제로 공정위 처분을 다투는 행정소송은 다른 행정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가령 금융감독원이 2016년 12월 편찬한 금융감독 행정쟁송 판례집은 306면 정도이지만, 공정위가 지난해 편찬한 판례요지집은 목차를 제외하고도 1400면에 달한다.
제도적인 관점으로 볼 때 공정위의 조사·심의 과정에서 적법절차 원칙이 준수되어야 할 필요성은 상당하다. 공정거래법은 공정위 처분에 1심 판결을 대체하는 효과를 부여하고 있어서 사실상 공정위 처분에 대해서는 3심제가 아니라 2심제(서울고등법원, 대법원)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위 처분을 다투는 경우 법원의 사실심리는 서울고법에서 단 1차례만 이루어진다.
이번 개정안에서 신고·조사 절차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현장 조사 시 조사공문 교부 의무화’ 조항이 눈에 띈다. 현행법은 현장 조사 시 권한을 표시하는 증표 제시 의무만을 규정했으나, 개정안은 조사 목적·기간·방법 등이 기재된 조사공문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개정했다.
공정위 현장 조사는 피조사자의 동의를 전제로 한 임의수사로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와 구별된다. 그러나 사업자가 공정위 조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어렵고 사실상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하므로 조사의 범위와 목적을 알지도 못한 채 조사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업자는 적어도 어떤 위반행위로 조사를 받는지 또 언제까지 조사를 받게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개정안에는 ‘임의 제출 물품에 대한 보관조서 작성 및 반환 규정’이 신설됐다. 조사관은 현장 조사 시 영치한 자료를 확인하는 조서를 교부해야 하며, 조사에 필요하지 않은 자료를 반환할 수 있다. ‘당사자 등의 자료 열람·복사 요구권’도 명문화됐다. 제재 처분을 받은 당사자가 조사 공무원의 판단에 따라 제재 처분에 관한 자료를 받지 못했던 일부 관행이 시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심의·처분 절차에 관한 개정안을 살펴보면 ‘조사 결과 통지 의무 명확화’가 규정됐다. 현행법은 조사 결과의 서면 통지 의무만을 규정했으나, 개정안에 따르면 처분하는 경우는 물론 하지 않는 경우에도 근거·내용 및 사유 등을 기재한 서면을 당사자에게 교부해야 한다. 이제껏 조사가 개시된 지 수년이 지났으나 처분이 내려지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조사관이 사건의 종료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조사를 받는 듯하면서도 조사가 끝난 것 같기도 한 어정쩡한 상황이 발생해왔다.
개정안은 조사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 사유 등을 당사자에게 교부하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관행을 시정토록 했다. 이 조항은 변호사에게도 중요하다. 조사에 잘 대응해 사건화가 되지 않은 경우에도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성공보수를 청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개정안에 따라 처분시효 조항도 개정된다. 현행법은 처분시효를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 조사를 개시하지 않은 경우 행위 종료일로부터 7년으로 정해왔다. 이에 따르면 처분시효가 이원화돼 처분시효는 최장 12년(5년+7년)이 될 수 있다.
위 조항은 실무에서 많은 혼란을 야기하고는 했다. 우선 조사개시일의 범위가 불분명했다. 이해관계인의 민원제기일, 신고일, 담합 가담자의 리니언시일이 조사개시일에 포함된다면 수많은 사건이 처분시효 완료로써 종결돼야 한다. 다만 공정위는 이러한 경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법 위반 사실의 입증이 없다고 하여 조사개시일의 범위에서 제외했다. 이러한 공정위 판단은 다수의 행정소송에서 쟁점이 됐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서인지 개정안은 처분시효를 행위종료일로부터 7년으로 단일화했다. 다만 사건인지·처리에 장기간이 소요될 수 있는 부당한 공동행위(담합) 사건의 경우에는 종전 조항을 유지했다.
결국 이번 개정안의 주된 목적은 적법 절차의 강화이다. 사견이지만 적법절차 원칙이 강화되는 추세에 대해서는 문제점을 지적하기 어렵다. 다만 조사의 효율성 강화는 조사기법 개선이나 정교화를 통해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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