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터넷은 국경을 허물고 전 세계를 거대한 단일 시장으로 만든 지 오래다. 하지만 나라마다 법이 다르고 저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많은 갈등이 일어난다. 특히 이런 갈등은 IT 인프라가 가장 빨리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먼저 불거지는 경우가 적잖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망중립성’ 논쟁이다. 비즈한국은 최근 다시 뜨거워진 ‘망중립성’ 논쟁을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대안과 해법이 가능할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넷플릭스는 갈등 해결 방법으로 ‘국내 캐시 서버 설치’를 제안했습니다. SK브로드밴드의 네트워크 안에 콘텐츠를 미리 저장해 두고, 국내에서 트래픽이 요청되면 일본에 연결하지 않고 곧바로 전송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SK브로드밴드의 골칫거리인 해외망 접속료와 네트워크 설비 투자에 숨통이 트일 수 있습니다. 서비스 품질도 좋아질테고요.
하지만 SK브로드밴드는 이를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보지 않는 듯합니다. 캐시 서버를 SK브로드밴드 내부에 두는 대신 넷플릭스가 별도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게 하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게 안 되면 지금처럼 서비스할 테니 그에 대한 투자 분담을 망 이용료로 넷플릭스에게 물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타협보다는 이참에 아예 망 이용료를 공식화하겠다고 맘먹은 것일까요?
# 넷플릭스의 ‘캐시 서버 제안’, 그리고 통신 3사의 셈법
그런데 여기에서 또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KT와 LG유플러스의 다소 미지근한 분위기입니다. 이 통신사들도 해외망에 대한 고민과 망 이용료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SK브로드밴드 편을 들지는 않습니다. 경쟁사라서요? 그건 아닐 겁니다. 입장이 전혀 달라서입니다.
LG유플러스는 일찍 이 부분에서 넷플릭스와 타협을 했습니다. 망 이용료를 요구하는 대신 캐시 서버를 망 내에 설비하기로 했고, 이를 통해 넷플릭스의 서비스 품질을 극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얼마 전에도 넷플릭스가 ‘킹덤’을 공개하자 트래픽이 몰리면서 누군가는 480p 수준의 흐릿한 화면을 보는 반면, LG유플러스는 재생버튼을 누르자마자 4k 해상도를 뽑아냈습니다. 적지 않은 넷플릭스 이용자들은 ‘통신사를 옮기겠다’고 벼르고, 실제로도 LG유플러스는 유선인터넷에서 가입자와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넷플릭스 효과’를 톡톡히 본 셈입니다. 이 논란은 오히려 이용자들에게 ‘인터넷 서비스가 똑같지 않고, 회사마다 정책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고, ‘그렇다면 사은품이 아니라 콘텐츠 때문에 서비스 사업자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도록 이끌었지요. 실제로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라는 공식이 이미 인터넷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풀면 망 속도가 어떤 콘텐츠 서비스를 가능하게 혹은 불가능하게 하냐는 ‘서비스 커버리지’가 실제로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요.
KT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캐시 서버를 두지는 않았지만 해외망을 꾸준히 늘려 트래픽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사실 버거울 겁니다. 하지만 무상 캐시서버와 망 이용료 부과의 논쟁에 얽히지 않으면서 인터넷 사업자의 책임을 다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상 KT는 우리나라 인터넷의 뼈대 역할을 하고, 해외 인터넷 연결의 출발점을 맡고 있다는 인식도 중요한 자산입니다. 마찬가지로 ‘해외망은 KT’라는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리지요.
#국경 없는 인터넷의 딜레마, 해결은 원칙 기반한 합의 뿐
앞으로 이 문제는 계속 불거질 겁니다. 5G의 광범위한 보급과 음악, 영상뿐 아니라 게임과 VR 등 점차 더 많은 인터넷 데이터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게 될 겁니다. 여전히 ‘서버가 어느 나라에 있느냐’를 둔 각종 갈등은 이어지겠지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를 풀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이번 ‘망 이용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의 역차별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은 쉽게 납득되지 않을 겁니다. 이 역차별은 애초 망 이용료라는 애매한 개념이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됐고, 해결책은 국내 기업들이 국내 통신사들에 내는 네트워크 비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될 테니까요. 적어도 망 부담을 줄이고 국내 기업들과 이용자 편의를 높이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면 단순 해외망 투자보다는 기업들과 그 트래픽을 국내로 맞이할 대안이 먼저 논의되어야 할 테고요.
다만 콘텐츠 기업들도 단순히 인터넷에 연결하기만 하면 책임이 끝난다는 생각으로 한 발짝 물러서서 팔짱만 끼고 있을 일은 아닙니다. 콘텐츠와 망 사업자는 아주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원활한 서비스가 이뤄지려면 좋은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그 부담을 줄이면서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 서비스 규모가 적절한 수준에 오르면 법인과 데이터센터 등을 두고 적극적인 사업을 한다는 인식을 줄 필요도 있습니다.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의 차별, 도덕적 해이, 세금 문제 등 명확하게 책임을 가를 수 없는 논란들을 이어가면서 서비스의 이미지를 해치고 힘을 빼는 대신, 더 적극적이고 자신있게 콘텐츠에 집중해서 사업하는 환경을 만들 필요도 있습니다. 그게 결국 서비스 이용자들을 위한 경험을 높이는 큰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여전히 국경 없는 인터넷은 각 국가에서 세금과 트래픽, 그리고 윤리를 둘러싼 갈등을 낳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조정은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인터넷은 범죄처럼 사람들에게 해로운 게 아니라면 누구나 세상 어디에 있는 정보라도 불러올 수 있어야 합니다. 넷플릭스 주소를, 유튜브 주소를 입력하면 불법이 아닌 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네트워크의 기본 책임입니다.
언뜻 보면 ‘해외 사업자가 국내에서 우리 돈으로 깔아놓은 인프라를 공짜로 써서 돈을 벌고 있다’는 이미 널리 퍼진 논리가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입자들은 그 서비스를 우리가 이용하기 위해서 통신사에 요금을 냅니다. 세상을 국경 없이, 지연 없이 네트워크로 연결하겠다는 것이 통신사들의 출발점이고, 지금도 5세대 이동통신으로 이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목표니까요. 무엇보다 수많은 이용자들은 인터넷 속 다양한 서비스를 더 원활하게 쓰게 해달라고 매달 적지 않은 요금을 휴대폰과 유선인터넷에 내고 있습니다. 힘겨루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공감대를 찾는 것이 필요할 겁니다. 갈등이 길어지는 사이에 이용자들은 어떤 서비스가 자기에게 맞는지 답을 내게 될 테니까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인터넷 망 이용 대가에 대한 논란이 소송을 넘어 국회 문턱까지 왔습니다. 통신사들은 망 이용 대가를 왜 원하고, 서비스 기업들은 왜 이에 반발하는지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국내에 서비스를 하는 기업들이 ‘국내 통신망을 쓰면서도 요금을 내지 않는다’는 문제에서 시작된 망 이용 대가는 사실 그렇게 간단하게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해외 사업자들뿐 아니라 국내 기업, 그리고 이용자들까지 얽혀 있고, 인터넷의 역할까지 따져야 하는 아주 복잡한 문제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이 갈등이 왜 불거졌는지, 그리고 여러 가지 해석들을 이야기해봅니다.
※3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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