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흔히 건물을 지을 때 4층은 숫자 대신 알파벳 F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숫자 4의 발음이 한자 죽을 사(死)와 비슷해서 불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우리 생활 속 깊이 스며 있는 귀여운 미신이다. 이는 숫자 자체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수비학(數祕學, Numerology)’의 일종이다.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아주 유서 깊은 미신이다.
수비학은 단순히 말로만 구성된 흔한 민간의 미신과 달리 숫자를 들먹이는 덕분에 다른 미신보다 왠지 통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직각삼각형의 남자, 수학자 피타고라스도 이러한 수비학에 심취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직각삼각형을 완벽하게 그리며 그의 이름을 딴 법칙에 딱 맞게 적용되는 비율을 아주 좋아했다. 특히 각 변의 길이가 3:4:5인 삼각형을 가장 좋아했다. 3부터 5까지 순서대로 이어지는 자연수로 너무나 완벽한 직각삼각형까지 그릴 수 있다니, 정말 무언가 특별한 우주의 조화가 숨어 있는 것 같은 매력을 느꼈다.
10의 배수, 100의 배수로 딱 떨어지는 숫자를 선호하는 것 역시 이런 수비학적 관습의 잔재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룹을 짓거나 관리할 때, 이왕이면 끝자리가 0으로 끝나게 구성하려는 습관이 있다. 차에 기름을 넣거나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이왕이면 구매 가격을 깔끔하게 만 원, 천 원 단위로 끊어서 맞춘다. 이런 습관은 심지어 과학자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하늘과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우주를 구분하는 카르만 라인(Karman line)은 고도 몇 km일까? 바로 고도 100km다. 고도가 서서히 올라가면서 낮아지는 대기의 밀도나 지구의 자기장 변화 등 과학적인 고려가 전혀 없는, 그저 단순히 숫자 100이 편하고 깔끔하니까 설정한 기준이다. 그래서 실제 우주선과 비행기를 운용하는 현장에서는 이 기준이 난감할 때도 있다. 일부 항공 엔지니어들은 실제 지구 대기의 밀도와 온도 분포에 맞춰서 약 80km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숫자 자체가 주는 일종의 선호나 편안함에 기대는 습관은 실제 자연의 성질과 상관없이 우리의 문화적인 유행과 기준에 따라 자연을 왜곡해서 보게 만들기도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각 문화권에서 선호하는 숫자도 달라지기 때문에, 똑같은 자연현상이나 우주를 봐도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불완전하거나 완전하다고 정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태양계 행성은 몇 개일까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천문학적 탐구가 진행된 무대는 바로 우리 태양계다. 태양이라는 거대한 별 주변을 둥글게 맴도는 행성들의 궤도는 일종의 기하학적인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중세의 많은 천문학자들은 행성들의 궤도 운동 속에서 우주를 돌아가도록 만드는 조화를 파악하고 싶어했다. 여기에는 당시까지 많은 과학자들이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던 종교적인 영향도 있었다. 절대적인 조물주가 만든 우주라면 반드시 한 치의 오차 없이, 심미적으로도 가장 완벽하고 조화로운 모습으로 우주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활용한 관측 천문학의 시대를 열었다. 오직 맨눈에 의존해서 하늘을 봤던 인류는 훨씬 멀고 어두운 천체들의 모습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갈릴레이는 처음으로 지구가 아닌 목성 곁을 돌고 있는 작은 위성들(이오, 칼리스토, 가니메데, 유로파)을 발견했다. 이 목성의 가장 큰 네 개의 위성들은 갈릴레이 위성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뒤이어 토성 주변을 맴도는 또 다른 위성 타이탄도 발견했다.
당시 자연철학자들은 숫자 10이 수비학적으로 가장 완벽한 숫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기존에 알고 있던 이 다섯 개의 행성과 갈릴레이가 발견한 네 개의 위성, 그리고 토성 곁의 타이탄까지 발견하면서 드디어 태양계를 구성하는 모든 천체를 다 찾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태양계는 어떤 절대적인 디자이너가 만든 가장 완벽한 디자인 작품일 테니, 태양계를 구성하는 천체들의 개수 역시 가장 완벽한 숫자 10에 딱 맞춰서 제작되었을 것이라 기대했다.
#케플러의 ‘수비학적 조화’
독일 천문학자 케플러는 스승이 평생 모아놓은 방대한 관측 데이터를 물려받아 집요하게 분석한 끝에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들의 움직임 사이에 숨어 있는 오묘한 법칙을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태양계 행성들의 움직임에 관한 법칙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태양계 행성들의 궤도 반경과 궤도를 도는 주기의 ‘조화의 법칙’이다. 행성들의 궤도 반경을 세제곱한 값이 궤도 주기를 제곱한 값과 완벽하게 비례한다. 이는 뉴턴의 중력 법칙에 따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리적으로 증명되는 간단한 관계이지만, 뉴턴의 중력 법칙을 모르던 당시에는 어떤 수비학적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듯하게 보였을 것이다.
수비학적 조화를 중요시하던 케플러에게 태양계 행성들의 궤도에서 굉장히 거슬리는 불편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점이었다. 태양계 안쪽 수성부터 화성까지의 궤도는 크기와 간격이 다 비슷하다. 그런데 화성 다음 목성 궤도부터는 궤도가 확 커진다. 케플러는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의 넓은 간극이 보기 좋지 않았다. 그 넓은 틈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행성이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케플러는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에 그 크기가 너무 작아서 아직 발견하지 않았을 뿐인 또 다른 미지의 행성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성이나 목성의 궤도가 미세하게 요동친다거나 하는 물리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는 주장이었다. 단순히 겉보기에 불편해서,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 틈이 너무 넓어보여서 그냥 다른 행성이 그 간극을 채워주면 더 예쁠 것 같아서 남긴 아주 황당한 주장이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그 빈틈에서 정말 작은 소행성이 발견되었다. 1801년 1월 1일 새해가 시작되는 날 밤, 이탈리아 천문학자 주세페 피아치(Giuseppe Piazzi)는 별을 찾던 중 우연히 다른 별들과 달리 천천히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어둡고 작은 점을 발견했다. 당시 그는 이것을 혜성이라고 생각했지만, 뒤이은 관측을 통해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에서 태양 주변을 맴돌고 있는 작은 천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천체를 세레스(Ceres)라고 부른다.
처음 세레스가 발견됐을 때에는 행성과 소행성을 나누는 뚜렷한 구분이 없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케플러가 근거 없이 내놓았던 예측이 드디어 적중했다고 생각했다. 역시 조물주가 디자인한 우주는 심미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추구하는 듯 보였다.
#행성 사냥꾼들을 현혹한 마법의 숫자 놀이
독일 수학자 티티우스(Johann Daniel Titius)는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들의 궤도에 어떤 수비학적 신비가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각 행성이 태양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비교하면, 어떤 간단한 배수나 사칙연산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규칙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규칙만 알아낸다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다른 행성들이 놓여 있는 자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고 기대했다.
놀랍게도 티티우스는 당시까지 알려진 태양계 행성들의 궤도 크기들을 비교해서 아주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학적 규칙을 만들어냈다. 가장 안쪽에 있는 수성부터 가장 바깥 목성과 토성 궤도에 이르기까지, 각 행성이 태양에서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수학적 규칙성을 찾아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찾아낸 수학적 규칙을 적용해서 아직 세레스가 발견되기도 전에 화성과 목성 사이 태양에서 2.8AU 정도 떨어진 거리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천체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내놓았다. 이는 이후 실제 발견된 세레스의 궤도 반경과 아주 유사한 값이다.
하지만 티티우스의 추측에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그가 주장한 태양계 행성들의 자리를 결정한다는 수학적 규칙에는 물리적인 근거가 없다. 그저 현재 행성들이 놓인 거리만 갖고 찾아낸 일종의 ‘숫자 놀이’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숫자 여섯 개 가지고 찾아낸 수비학적 신비일 뿐이었다. 그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거대한 물리적 법칙에서 나타나는 현상인지는 알 수 없다. 이는 그저 고작 여섯 번의 로또 당첨 번호만 가지고 찾아낸 어떤 우연한 숫자들의 규칙을 근거로 다음 로또 당첨 번호를 맞출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칭 로또 분석가(라고 쓰고 사기꾼이라고 읽는 사람)들의 희망 회로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런 로또 분석가의 예상이 정말 적중한다면? 게다가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연이어서 적중한다면? 의심병이 심한 나 같은 사람도 그 주장을 흘려듣기가 조금씩 어려워질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당황스러운 일이 티티우스의 숫자 장난질에서도 벌어졌다! 티티우스의 법칙이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세레스의 자리를 예견한 데 뒤이어 또 다른 새로운 행성의 존재를 예측한 것이 적중했다. 토성 너머 새롭게 발견된 새로운 태양계 최외곽 행성, 해왕성이 발견된 것이다.
아쉽게도 티티우스의 숫자 놀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천왕성 너머 또 다른 새로운 태양계 최외곽 행성 해왕성이 발견되었는데, 티티우스의 법칙이 예측한 위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해왕성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줄 만한 차이였지만, 그다음 발견된 (한때 행성으로 인정받았던) 명왕성은 그 차이가 너무 컸다. 결국 계속해서 새로운 태양계 최외곽 행성의 기록이 세워지면서 티티우스의 법칙 아닌 법칙은 그저 태양계 안쪽 행성에서만 운 좋게 들어맞는 것일 뿐, 더 멀리 떨어진 외곽 행성들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신비로움 그 자체였던 티티우스의 짓궂은 수비학적 추론은 한때의 흑역사가 되어 잊혔다.
#명왕성을 대체할 새로운 행성
하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명왕성 너머 진짜 마지막 행성이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추측이 떠돈다. 한동안 명왕성이 아홉 번째 행성이라는 불안한 옥좌에 앉아 있었지만, 결국 2006년 행성의 자격을 잃고 폐위되었다. 사실 태양계에는 제대로 된 행성이 애초부터 명왕성을 뺀 여덟 개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왕성이 있던 자리가 갑자기 공석이 되면서, 우리는 왠지 그 빈자리에 무언가를 다시 채워 넣고 싶은 듯하다. 그리고 최근 정말 아홉 번째 행성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징후가 확인되었다.[1]
천문학자들은 해왕성 궤도 너머 태양계 최외곽 지역을 맴돌고 있는 해왕성 주변 천체(TNO, Trans-Neptunian Object)들을 연이어 발견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는 해왕성 주변 천체들의 궤도가 한쪽 방향으로만 쏠린 듯한 분포를 보인다. 이는 통계적으로 봤을 때도 여러 개의 동전을 던졌을 때 전부 앞면만 나오는 것처럼 아주 어색한, 부자연스러운 분포로 보인다.[2][3]
그래서 4년 전부터 천문학자들은 해왕성 주변 천체들의 궤도가 쏠려 있지 않은 바로 그 빈 공간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진정한 아홉 번째 행성이 숨어 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홉 번째 행성의 중력 때문에 그 주변으로 다른 외곽 천체들의 궤도가 지나가지 않게 되어 해왕성 주변 천체들의 궤도 분포가 비대칭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뚜렷한 비대칭한 분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해왕성 이상의 아주 큰 행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천체가 발견된다면 명왕성과 달리 논란의 여지 없이 아주 자신 있게 제대로 된 행성으로 불릴 자격이 있을 것이다.
최근 팬스타스(PanSTARRS), 암흑 에너지 서베이(DES, Dark Energy Survey) 등 미지의 아홉 번째 행성을 찾으려는 대대적인 하늘 관측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해왕성 주변 천체들이 거의 없는 텅 빈 공간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하늘의 방향이 왜곡된 것이라면?
하지만 지금까지 아홉 번째 행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실제로 예상되는 자리에 아홉 번째 행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거리가 아주 멀 것이기 때문에, 햇빛을 겨우 반사해서 어렴풋하게 빛나는 그 행성을 찾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최근 또 다른 천문학자들은 해왕성 주변 천체들의 비대칭한 분포가 애초에 착각일지 모른다는 염려를 보인다.
과연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해왕성 주변 천체들을 다 찾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아니다. 또 어떤 관측적인 한계나 편견(Bias)으로 인해 특정한 방향에서만 해왕성 주변 천체들을 탐색했기 때문에 궤도들이 다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천문학자들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다양한 궤도 성분을 갖고 있는 약 4000만 개의 해왕성 주변 천체를 설정해 가상의 태양계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이 시뮬레이션에서 천체들이 각자 궤도를 도는 동안, DES 관측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천체들을 골라냈다. 충분히 오랜 시간 지구에 더 가까이 접근해서 관측 한계보다 밝은 밝기로 나타나고, 또 며칠 동안 꾸준히 지구에서의 시야에 들어오며 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만 살아남았다. 그렇게 선별된 ‘관측으로 확인 가능한’ 해왕성 주변 천체들의 궤도 성분들과 지금까지 실제로 확인된 7개의 해왕성 주변 천체들의 궤도 성분을 통계적으로 비교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지금까지 실제로 확인된 7개의 해왕성 주변 천체들의 한쪽으로 쏠려있는 듯한 궤도 분포가 가상의 아홉 번째 행성을 굳이 가정하지 않아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저 지금까지 진행된 대부분의 전천 탐사가 특정한 궤도 성분을 가진 천체들 위주로 발견할 수밖에 없는 관측적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궤도가 한쪽으로 쏠려 있는 비대칭한 모습으로 보인 것이다.[4][5]
물론 지금까지 DES 관측으로 확인된 해왕성 주변 천체의 개수 자체가 겨우 일곱 개뿐이라 통계적으로 아주 유의미한 분석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아홉 번째 행성이 존재할 것이라 기대하게 만든 유일한 근거가 관측의 한계로 나타난 착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아홉 번째 행성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해준다.[6]
최근 일부 천문학자들은 아홉 번째 행성이 사실 평범한 가스 행성이 아니라, 태양계 최외곽에 숨어 있는 원시 블랙홀일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물론 이 역시 한쪽으로 쏠려 있는 비대칭한 해왕성 주변 천체들의 궤도를 근거로 내놓은 주장이다. 이들은 태양계 외곽에 목성의 두세 배가량 무거운 야구공 크기의 블랙홀이 맴돌고 있다고 추측한다. 흥미롭지만 다소 황당해 보이는 주장들까지 튀어나오는 걸 보면, 아홉 번째 행성에 대한 추적이 조금씩 산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특정한 선호나 편견이 들어갈 수 있는 자료만 보고, 통계적으로 아주 부자연스럽다며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외부의 요인을 설정하는 것은 굉장히 섣부른 억측이 될 위험이 있다.
#선거 조작 논란도 수비학과 연관
지난 몇 년간 큰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선거에 패배한 진영에서 제기하는 선거 조작 논란 역시 이런 수비학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시대적 오류라고 볼 수 있다. 매번 패배한 쪽에서는 (서로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여러 선거구의 투표 결과가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선거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연령별, 혹은 투표 날짜나 시간대에 따라 몰리는 유권자층의 성향 차이, 단순한 우연에 의한 결과라는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수학의 탈을 쓰고 있어서 굉장히 과학적인 논증처럼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숫자와 수식이 난무하니 굉장히 있어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고도로 발전된 과학 문명 속에서도 오랫동안 몸에 배어 있는 수비학적 관습을 지우지 못한 채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물론 끈질긴 탐색 끝에 정말 전설처럼 여겨지던 제대로 된 진짜 아홉 번째 행성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천문학자들이 행성을 찾기 위한 탐사를 멈출까? 오히려 “그렇다면 열 번째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라며 새로운 탐사를 시작할 것이다. 게다가 아홉 개도 아니고 열 개라니, 숫자도 더 깔끔하고 편안하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는 숫자의 신비함에 또 다시 빠져 수비학의 함정에서 허덕이는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갈 것이다. 더 넓은 또 다른 우주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실수였음을 늦게나마 깨달을 것이다.
[1] https://www.nature.com/news/solar-system-survey-casts-doubt-on-mysterious-planet-nine-1.22177
[2] https://www.nature.com/news/evidence-grows-for-giant-planet-on-fringes-of-solar-system-1.19182
[3] https://www.caltech.edu/about/news/more-support-planet-nine
[4]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3881/aaf0fc
[5]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3881/aad042
[6]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planet-nine-could-be-a-mirage/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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