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해외 건설 시장에 진출한 우리나라 건설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패닉에 빠졌다. 현지 정부가 공사를 중단시켜 계약상 공사기간을 맞추는 데 차질이 생기거나, 현장 직원이 코로나19에 확진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공포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방역 및 치료 체계가 전적으로 해당 국가에 있기 때문에 우리 당국도 해외 건설근로자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8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가 시공 중인 해외 건설 공사 현장 1800개 중 70여 곳이 코로나19로 공사를 중단했다. 해외건설종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490개 건설사가 111개국 1800개 공사를 맡아 시공 중이다. 대륙별로 아시아 1088건, 중동 321건, 아프리카 161건, 중남미 110건, 유럽 83건, 태평양‧북미 37건이다. 국가별로는 베트남 288건, 인도 98건, 싱가포르 80건, 중국 78건, 사우디아라비아 74건 순으로 많다.
#코로나19로 해외공사 ‘심각한 영향’, 공사 지연으로 비용 부담 우려
코로나19 확산이 해외공사 수행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현재 건설업계 판단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4월 해외 건설 사업을 수행 중인 종합건설기업과 설계·건설사업관리업체(CM)·엔지니어링 기업 25개사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 응답 기업 88%는 코로나19가 수행 중인 해외사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인터뷰에 응한 기업은 입국 제한·금지 등으로 인한 인력과 자재 조달 체계에 혼란, 발주 국가의 공사 중단 명령 등으로 진행 중인 사업에 차질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면한 문제는 공사 지연에 따른 비용이다. 통상 건설사가 발주처와 맺는 도급계약에는 공사 기간을 명시하는데, 건설사가 불가항력을 제외한 사유로 이 기간을 지키지 못하면 지연 보상금을 문다. 앞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조사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계약 조건상 ‘불가항력 조항’으로 포함돼 있다고 응답한 사례는 24%에 불과했다. 포함돼 있지 않다고 답한 사례는 8%, 조항에 포함돼 있더라도 발주처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60%였다. 공사가 지연될 경우 계약상 공사 기간 연장이나 공사비 증액 등에서 발주처와의 분쟁 소지가 있는 셈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국가적으로 공사 현장을 ‘셧다운(Shut Down, 일시적 업무정지)’ 한 상태다. 싱가포르는 6월 1일까지, 말레이시아는 다음 주까지 공사를 잠정 중단시켰는데, 셧다운 기간이 연장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공사가 중단되지 않은 현장도 만일을 대비해 현장 방역과 개인위생 관리 강화, 대피 시설 마련 등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말레이시아와 러시아,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가 현장 공사를 중단시켰다. 인력 이동에서도 일부는 항공편이 중단되거나, 항공편이 있어도 전염 우려로 이동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공사가 중단된 현장의 경우 공정이 더 늦어지게 되면 계약상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발주처와 공사 기간 연장과 비용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동 현장서 확진자 속출, 노조 “안전 고려해 공사 중단해야”
이런 가운데 중동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 건설 현장에서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속출하면서 위험 지역의 공사를 잠정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엔지니어링에 따르면 4월 말부터 현재까지 삼성엔지니어링 아랍에미리트(UAE) 석유 플랜트 공사 현장 세 곳에서 7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중 한국인은 15명, 나머지 58명은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 외국 국적 협력사 직원이다.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확진자가 발생한 공사 현장을 폐쇄했다. 현장 직원에 전수검사를 하고, 음성 판정을 받은 인력에 한해 일부 필수 작업을 진행 중이다”고 설명했다. 앞서 4일에는 UAE 두바이에서 근무하던 국내 건설사의 한국인 주재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3주간 입원 치료를 받다 끝내 숨졌다.
쿠웨이트의 경우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한 ‘쿠웨이트 알주루 LNG가스 터미널 건설 프로젝트’ 현장과 삼성엔지니어링, 대우건설, 현대중공업, GS건설, SK건설 등이 공동으로 참여한 ‘쿠웨이트 클린퓨얼 프로젝트’ 현장에서 각각 외국인 20여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3~6일 쿠웨이트발 입국자 6명이 코로나19 확진자로 확인됐는데, 이들 중 다수는 쿠웨이트 건설 현장 근로자로 나타났다.
전국건설기업노조는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면서 사망자까지 발생한 상황이다. 두바이의 경우 의료시설이 뒤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사를 중단하는 등 초동 조치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들었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개념으로 회사 차원에서는 자체적으로 공사를 중단하고 외교부도 위험 지역에서 근무하는 건설 노동자가 귀국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사가 중단된 해외 현장에서 고립된 근로자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방역·치료 권한 해당 국가에…정부, 근로자 지원책 마련에 골머리
정부도 해외 건설 노동자 지원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외국민의 방역·치료 권한이 일차적으로 해당 국가에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와 외교부는 각국 사정에 맞는 방역 매뉴얼을 배포하는 한편, 현재 월 8개 수준인 마스크 반출 한도를 완화하거나 전세기를 추가 파견하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재외국민 확진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코로나19 예방수칙과 행동수칙을 각국 재외공관에 전파했고, 공관이 각국 사정에 따라 적절하게 수정해 재외국민에게 전달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코로나19에 확진될 경우 현지에서 치료받는 게 원칙이다. 다만 현재 각국 공관이 확진자가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현지 정부와 교섭하고 있다. 환자 가족과는 환자의 건강상태, 퇴원 및 격리여부 등 상태를 점검해 소통하고 애로사항을 파악해 필요한 영사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해외건설과 관계자는 “해외근로자의 코로나19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어 고민스러운 상황”이라며 “코로나19가 확산된 특정 국가의 경우 전세기를 띄워 당분간 (해당 국가) 해외근로자를 국내로 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실무진에서 오가고 있다. 정상적인 항공편이 거의 끊어진 상황이라 상대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등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해외 반출 마스크 한도를 근로자에 한해 완화하자는 논의도 있었는데 이는 국내 마스크 수급 사정과 근로자가 아닌 재외국민 간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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