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실패에 인색한 편이다. 통계에 따르면 성인 중 절반가량이 파산·해고·이혼 등 인생의 ‘실패’ 한 번으로 낙오자로 전락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수 없이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한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실패의 경험이다. 비즈한국은 화려한 성공에 감춰진 경영인들의 실패 경험을 들어보고자 한다.
공유경제가 우리 경제 뿌리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공유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는 학원버스까지 공유하는 시대가 왔다. 학원버스 공유서비스 ‘옐로우버스’ 운영사 리버스랩은 학원의 고민과 부모의 걱정을 동시에 해결하는 스타트업이다.
리버스랩은 비슷한 지역에 모여 있는 학원들이 자신들의 버스를 공유해 아이들을 태우는 방법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았다. 학원은 리버스랩에 차량 운영을 위탁해 고정 비용을 줄이고, 부모들은 자녀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차량에 탑승하고 하차했는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아이들은 앱으로 버스 도착 시각을 파악할 수 있어 무작정 기다리지 않아 모두에게 편리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현재 차량 30대로 운영 중인 리버스랩은 올해 차량 500여 대 확보에 성공했다. 덕분에 올해 1분기 만에 전년도 매출을 달성했다. 분당, 수지, 위례, 서울 광진구, 김포에서 서비스 중인 리버스랩의 올해 목표는 수도권 전 지역의 학원 차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승승장구하는 듯하지만 한효승 리버스랩 대표는 “옐로우버스가 지금 단계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말한다. 인텔코리아 IT 전문가의 평범한 삶을 포기한 후부터 한 대표의 삶은 줄곧 내리막길이었다고. 주변 지인과 함께 창업했지만 시장조사 실패로 퇴직금은 물론 기술보증기금에서 벤처 인증으로 받은 돈마저 모두 잃었다. 누군가는 주저앉을 수도 있는 상황. 한 대표는 어떻게 절망에서 빠져나왔을까.
#인텔코리아 전문가에서 스타트업 창업으로
Q. 만천하에 자신의 실패담을 얘기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고맙습니다.
A. 아닙니다(웃음). 실패가 창피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잖아요. 여러 단체에서 실패 박람회까지 열 정도로 세상에는 많은 실패가 합니다. 다만 제가 겪은 실패의 크기가 독자들이 보기에 작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는 됩니다.
Q. 실패에 크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실패를 딛고 어떻게 일어났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원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A. 맞습니다. ‘올라웍스’에서 일했어요. 얼굴인식 기술을 비롯해 인공지능(AI)과 증강현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였습니다. 2012년 인텔에 인수되면서 저도 인텔코리아에서 일하게 됐어요. 남들은 부러워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뭔가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부서와 상관없이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스타일인데, 인텔은 정해진 역할만 하는 대기업 특유의 문화가 있더라고요.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지 못했어요. 자연스럽게 이직과 창업을 두고 고민하게 됐죠.
Q. 오랜 기간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위험성이 큰 창업보다는 안정적인 이직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업을 경우의 수로 둔 이유가 궁금한데요.
A. 사실 이직 준비 중에 꽤 좋은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혹했죠. 연봉도 높고, 업무 유연성이 높은 회사들이었거든요. 창업을 고민한 건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고요. 어릴 때부터 언젠가 꼭 창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번쯤은 내가 만들어가는 비즈니스로 세상의 한 부분을 바꾸고 싶다는 꿈이 있었던 거 같아요.
Q. 한편으로는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꿈만으로 창업했다가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꽤 있고요. 제대로 된 아이디어는 있었습니까.
A.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하면 독자들께서 기분 나빠할까요(웃음). 그 시기에 제가 창업을 할 수 있게끔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딱 맞물려 떨어졌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학원가에 살고 있었는데요. 멀리서 봤을 땐 몰랐는데 학원버스가 생각보다 꽤 불편하더라고요. 동승자 탑승 유무라든지 운전기사 운전 성향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빈 좌석이 너무 많아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게 안타까웠어요.
또 제가 퇴사 직전 담당한 프로젝트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이나 자율주행차량 센서에 대한 조사였거든요. 공과 사에서 교집합이 보이더라고요. 때마침 공유경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시기였고요. 여러 잡념을 모아 종합해보니 버스의 빈 좌석을 학원끼리 공유하고 우리가 차량을 관리해 안전 문제까지 해결하는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 거죠.
주변에 전세버스회사 대표와 영어유치원 원장인 친구가 있었는데요. 그들도 제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더라고요. 그렇게 공동 창업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한쪽은 버스를 대여해주고, 다른 한쪽은 버스를 이용하는 시장을 마련하겠다고 했죠. 그리고 저는 그 둘을 잇는 시스템 개발을 맡았어요.
Q. 평범한 직장도 아니고 세계적인 기업을 포기하고 결심한 창업입니다. 주변의 반대는 없었습니까.
A. 창업을 끝까지 고민한 게 가정 때문이에요. 아이가 둘이거든요. 창업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마쳤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해야 하잖아요. 나이 먹고 실패하는 것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실패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아내에게 석고대죄했어요(웃음). 다행히 아내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버텨볼 테니 마흔 살까지 해도 안 되면 접어라”라며 창업을 허락했어요.
#워크숍에서 틀어진 사업 방향…사업 실패로 돈과 친구 모두 잃어
Q. 창업 준비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는데, 창업 후 진행도 순조로웠습니까.
A. 2015년 12월 인텔에서 만 3년을 꽉 채우고 퇴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법인을 설립했죠. 창업하자마자 기술보증기금에서 벤처 인증을 받았어요. 돈을 받고 나니 그게 지원금이 아니라 대출이더라고요(웃음). 아이디어만 있었을 뿐 창업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거든요. 두 친구가 모두 한 회사의 대표로 있었기에 자문을 많이 할 생각이었죠. 여기에다 제 퇴직금 전부와 친구들의 자금을 조금 더 보탰죠.
Q. 2017년 9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2016년 2월 법인 설립 후 공백 기간이 꽤 길었던 것 아닙니까.
A. 아이디어 회의차 워크숍을 갔어요. 서로 자신의 분야를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전세버스 업체 대표가 자기 분야 문제점을 얘기하더라고요. 버스 업체 대부분이 페이퍼 워크 방식을 고수하는 탓에 운전기사들이 ‘주유깡(가짜 영수증으로 유류비를 과다 정산받는 방식)’을 한다든지 회사 허가 없이 투잡을 뛰는 등 문제가 많았더군요. 그 대표는 “이를 통제할 시스템을 개발하면 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 옐로우버스 서비스 시작 후 이 사업도 모색해보자”고 말했죠.
그런데 그 대표의 얘길 듣고는 직원들이 이 사업을 옐로우버스보다 먼저 시작해도 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운영 방식을 온라인화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통제 측면에서 옐로우버스와 맞물리는 면이 있으니 버스 분야의 생산·판매·인사·회계 등의 데이터를 통합하는 ERP(Enterprise Resources Planning) 시스템을 먼저 개발하기로 했죠.
Q. 갑자기 사업 방향이 확 틀어진 것 같은데요.
A. 학원 쪽은 이해관계가 워낙 많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거든요. 버스, 동승자, 운전기사는 물론 학원 관계자, 버스 업체, 아이들과 학부모까지 신경 써야 하니까요. 굉장히 복잡한 시장이라 캐시카우를 확보해 놓지 않으면 초기에 버티기 힘들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어요. 전세버스 업체 대표가 영업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것도 컸고요. 당시 그 분야에서만 14년째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믿어보기로 했죠. 그런데 변수가 생겼어요. 워크숍에서 얘기했던 것과는 다르게 기획단계에서 요구사항이 계속 늘어나는 겁니다. 인력은 인텔에서 데려온 개발자 2명뿐이라 서비스 출시 일정은 연기됐고, 자금은 떨어져갔죠.
Q. 다른 두 대표는 사업 측면에서 노하우가 꽤 있었을 텐데요.
A.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들의 능력과 경험을 의심하지 않았거든요. 전세버스 대표에게 시장조사를 부탁했는데,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져온 게 아니라 친한 지인 몇 명과 얘기한 데이터를 가져오더라고요. 저는 모르는 분야였기에 전적으로 믿고 사업을 진행한 게 독이 돼 자금난에 빠지게 됐어요.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으려 대출을 알아봤는데, 가계약서라도 받아오라더군요. 그런데 전세버스 업체 대표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 시스템을 쓰겠다는 회사가 없는 겁니다. 그때 깨달았죠. 아무리 한 분야에서 수십 년을 종사한 전문가라도 객관적 데이터로 성공을 입증할 수 없다면 믿어선 안 된다는 걸요. 결국 대출이 막히니까 두 친구는 회사를 정리하자고 하더라고요.
Q. 원래 사업안인 옐로우버스는 시작도 못 했습니다.
A. 두 대표는 돌아갈 곳이 있었지만 저는 이 회사에 모든 걸 건 상황이라 쉽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 하는데 폼만 잡다 끝난 느낌이 들었거든요. 옐로우버스란 제 아이디어의 가치를 세상에 선보이지도 못한 게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결국 두 대표의 지분을 인수하고, 고등학교 친구에게 부탁해 둘이서 다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계속되는 자금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 ‘초심’
Q. 2명이 학원버스 시장을 장악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쉬워 보이진 않습니다.
A. 퇴직금은 물론 기술보증기금에서 받은 돈도 거의 다 소진했기에 제로베이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했어요. 게다가 제 서비스의 선(先) 기술인 버스 도착 알림 서비스는 이미 대중화됐죠.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할 능력이 없던 터라 타 기업의 기술을 빌려 쓰기로 했고, 전세버스 업체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판 끝에 25인승 버스 한 대를 구할 수 있었어요.
Q. 학원버스를 위탁해 운영하는 지금의 사업 모델과는 달랐군요.
A. 처음에는 저희가 하나의 차량 운송 업체가 돼서 서비스하려고 했어요. 위탁 운영을 위해 학원을 설득하려면 객관적 지표가 필요한데 전무했으니까요. 2017년 3~4월에는 전단을 돌렸어요. 학원버스를 공유하는 서비스라는 콘셉트만 적었을 뿐 실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사이 친구에게 급여를 줘야 하는데 통장에 잔고가 얼마 없어 은행에서 몇천만 원을 대출받았어요. 사무실은 엄두도 못 냈고, 여러 카페를 전전해야 했습니다. 카페에서 자료 만들고 시장조사 하면서 수개월 동안 전단을 돌렸습니다.
Q. 수개월 동안 발품을 팔았습니다. 학원 관계자들이 관심을 보인 건 언제부텁니까.
A. 옐로우버스가 일반 시장에 익숙한 서비스는 아니잖아요. 옐로우버스를 이해시키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차량을 왜 공유하냐”라는 학원 관계자도 있었죠. 게다가 객관적 자료도 없다 보니 “너희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거 아니냐”라는 학원 관계자도 있었어요. 개의치 않고 꾸준히 학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3개월 정도 지난 7월쯤, 학원 관계자들이 “이거 뭐 하는 서비스냐”고 묻더라고요. 대형 학원만 버스 운영팀이 따로 있지 중소형 학원은 주먹구구식으로 버스를 운영하거든요. 낯선 서비스에 의심 가득한 학원 관계자들에게 저희는 “처음에 돈 안 내도 괜찮으니 일단 이용해달라. 사용 후 괜찮으면 계약하자”고 부탁했죠.
Q. 학원들로선 일단 무료로 써볼 수 있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겠습니다.
A. 학원 몇 곳과 계약을 맺고 버스 한 대로 학원가를 도는 일정을 짜고 날마다 수정했어요. 지금은 1시간 만에 1개월치 일정을 계획할 수 있지만, 그때는 노하우가 없어서 일정 만드는 데만 몇 시간을 써야 했습니다. 운전기사 급여도 우리가 드렸고, 동승자를 구할 돈이 없어 저와 친구가 직접 그 역할을 했습니다. 동승자 역할을 하다가 학원에 내리면 영업하러 들어가고, 다시 동승자로 버스에 탑승하고. 그걸 몇 개월을 반복했어요. 그게 옐로우버스의 시작입니다.
Q. 그때부터 옐로우버스가 탄탄대로를 달렸던 겁니까.
A. 아니요. 자금난이 꾸준히 절 괴롭혔어요. 신용대출 받은 자금도 바닥을 보였습니다. 그때마다 도움이 된 건 벤처캐피털과 정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였어요. 적자였지만 매출이 생겼고, 객관적 데이터가 마련되니 많은 분이 관심을 보이고 투자하더라고요. 청년산업재단, 엔젤클럽, 성남산업재단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습니다. 정부나 기업 지원 방법을 알고 난 후부터는 자금 확보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1년 사이에 버스를 10대까지 늘렸어요. 학원가 반응이 꽤 좋았거든요. 분당에서만 40개 학원과 계약을 맺었죠. 문제는 늘어난 버스 수만큼 좌석 점유율이 높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점유율이 높아야 이익이 날 텐데 이대로는 흑자 개선이 어렵겠더라고요. 방향 전환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학원버스 위탁 운영’이었고 지금의 옐로우버스가 탄생하게 된 겁니다.
Q. 창업자로서 데스밸리에 빠졌지만 몇 달씩 발품 팔면서 옐로우버스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한 대표에게 실패란 어떤 의미일까요.
A. 사업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금 설계를 제대로 해야겠더라고요. 사업은 확장해야겠고, 지출은 줄여야 하고 이게 아주 딜레마더라고요. 여기에다 사회는 객관적 데이터가 없으면 돈을 주지 않죠. 냉정합니다. 다만 저는 실현하고자 했던 사회적 가치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보니 힘든 상황에서도 결단을 내릴 수 있겠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크고 작은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모든 사람이 인정한 성공한 자산가라는 말은 아니고요. 옐로우버스는 여전히 종점을 향해 운행 중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실패가 저를 괴롭힐 테지만 그때마다 저는 실패를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삼으려 합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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