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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함정' 비상, 실물경제까지 이어지도록 미시 정책도 필요

정부 수립 후 2번째인 3차 추경 예고에도 단기부동자금 사상 최초 120조 원 넘어서

2020.05.01(Fri) 11:35:34

[비즈한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금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17년 만에 한 해 2차례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하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시중 자금 사정은 갈수록 나빠지는 추세다.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2번째인 3차 추경을 예고하는 등 자금 공급을 늘리는데 사활을 걸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차 추경안 국회 통과 이틀 전인 4월 28일 국무회의에서 “3차 추경안에는 내수 반등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담길 것”이라며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경제 위기 국면이다. 3차 추경도 실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시장 상황으로 볼 때 돈을 풀어도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로 이어지지 않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왼쪽), 노영민 비서실장(오른쪽)이 4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한은이 코로나19로 경제 하락세를 막기 위해 자금 공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자금은 기업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시중 자금은 늘어났지만 기업이 아닌 은행권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 2월 예금(6개월 미만)과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을 포함한 단기부동자금은 122조 47억 원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120조 원을 넘어섰다. 1년 전에 비하면 11조 8319억 원(10.7%) 급증했다.

 

또 주식시장에서 진입하지 않고 상황을 관망하는 투자자 예탁금도 급증하고 있다. 한은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 28일 현재 투자자 예탁금은 43조 9729억 원까지 증가했다. 투자자예탁금은 지난해 12월 말 28조 7192억 원이었으나 1월 28일 30조 2212억 원으로 30조 원대를 넘어선 데 이어 3월 24일에는 40조 9912억 원으로 사상 첫 40조 원대를 돌파했다. 

 

경제를 움직이는 윤활유인 돈이 은행권에 고여 있는 상황은 통화흐름을 보여주는 예금회전율과 통화승수 등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과 가계가 은행 예금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 정도를 보여주는 예금회전율(요구불 예금 기준)은 올 2월 17.1회까지 하락했다. 예금회전율은 지난해 11월 18.4회에서 12월 20.3회로 늘어났으나 코로나19 여파에 1월 18.7회로 떨어진 뒤 올 2월에 더욱 하락했다.

 

예금회전율 하락은 기업과 가계가 은행 예금을 꺼내 사용하는 빈도가 감소했단 뜻이다. 한은이 공급한 본원통화가 신용창출을 통해 시중에 얼마나 많은 통화를 유통시키는지를 보여주는 통화승수도 1월 15.79배에서 2월 15.13배로 하락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와 통화 완화 정책에도 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으면서 올 1분기 기업들의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은 반 토막이 났다. 올 1분기 주식시장 상장인 기업공개(IPO)로 기업들이 끌어들인 자금은 262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848억 원)에 비해 55.1% 급감했다. 올 1분기에 유가증권시장에서 기업공개를 한 기업은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주식 시장이 냉각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과 주가하락에 투자자들이 주식에서 눈길을 거둔 때문이다.

 

이처럼 코로나19로 기업 운영은 어려워지고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마련도 힘들어지자 기업들은 이자율이 높은 기업어음과 단기사채에 기대고 있다. 올 1분기 기업어음 발행 규모는 88조 450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4조 7336억 원)에 비해 18.4% 증가했다, 1분기 단기사채 발행도 1년 사이 246조 8421억 원에서 293조 1773억 원으로 18.8% 증가했다.

 

이처럼 시중 자금이 생산 부문에 제대로 유입되지 않은 현상이 심화되자 ‘유동성 함정’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한은은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2018년 이후 시중 유동성 확대가 금융 상황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실물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종전에 비해 약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정부와 한은의 유동성 확대에도 기업 등 생산적인 부문으로 자금이 흘러들지 않으면서 유동성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정부의 3차 추경은 시장에 단순히 자금을 쏟아 붓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자금이 보다 생산적인 부문에 원활하게 유입되도록 하는 미시적 정책을 갖춰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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