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직업이 ‘창업하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매번 독특한 아이디어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추진력으로 새로운 사업을 가지고 나타난다. 그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우주 사기업 중 하나인 스페이스X를 운영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로켓을 만들고 우주로 올리는 것은 미국의 NASA나 유럽의 ESA처럼 국가 기관에서 공적 자산을 들여서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우주 개발만을 위한 사기업을 만들었고, 공적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우주 개발에 상업적 가치를 부여했다.
현재 스페이스X에서는 (돈이 아주 많은) 일반인들의 달 관광을 상품화하고, NASA보다 먼저 사람을 직접 화성으로 보내겠다는 당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케플러 우주 망원경의 뒤를 이어 태양계 주변에서 생명체가 살 법한 외계행성을 탐사하고 있는 TESS 우주 망원경을 우주로 띄워 올리는 역할도 수행했다. 스페이스X는 더 저렴하고 경제적인 ‘지구인 모두를 위한’ 우주 개발을 지향한다. 천문학 탐사를 위한 탐사선들의 발사는 스페이스X에 점점 더 의존하는 추세다.
우주 개발을 선도하고, 그 개발 기회를 국가 기관이 아닌 민간 기업들의 영역으로 옮겨오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고 있는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 천문학자들에게도 환영받을 것 같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최근 스페이스X에서 연이어 발표하는 휘황찬란한 우주 개발 청사진을 그저 기분 좋게 환영하지 않는다. 특히 최근 첫 번째 발사 이후 본격적으로 가동한 ‘스타링크(Starlink)’ 프로젝트로 인해 스페이스X와 천문학자들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스페이스X의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앞으로 천문 관측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까?
#인공위성 1만 2000대가 뜬다면?
현재 머스크는 지구 주변 상공 약 500~600km에 해당하는 지구 저궤도(LEO, Low Earth Orbit)에 아주 작은 인공위성 1만 2000여 대를 올려서 지구 전역 어디에서든 음영 지역 없이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아마존 밀림이나 개발도상국 등에서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전 지구적인 인터넷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19년 5월 60대의 작은 큐브 위성이 궤도에 올랐다. 로켓에 탑재된 작은 위성들이 줄지어 분리된 뒤 쪼르륵 지구 주변을 맴도는 모습은 어린 시절 본 만화영화 ‘은하철도’가 지나가는 듯한 환상을 떠올리게 했다. 스페이스X뿐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기관과 기업도 상대적으로 훨씬 개발 비용이 저렴한 큐브 위성을 만들어서 올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큐브 위성들이 지구 저궤도로 올라가면 아주 큰 문제를 일으킨다. 지구 저궤도에 올라간다는 것은 지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태양 빛을 반사해 빛나는 인공위성들의 모습이 지상에서도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밝다.
스타링크 위성들이 줄지어 지구를 돌고 있는 모습을 지상에서 관측한 영상.
지난 4월 22일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위성들을 또 발사했다. 당시 실시간 생중계된 발사 과정. 영상=스페이스X
실제로 날이 맑은 밤하늘에서는 지구 주변을 빠르게 지나가는 인공위성이나 국제우주정거장의 모습도 눈으로 볼 수 있다. 가끔씩 하늘 위로 빠르게 지나가는 하얀 작은 불빛 중에는 비행기가 아니라 인공위성의 불빛도 있다. (익숙해지면 비행기 불빛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지상에서도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밝은 인공 불빛이 하늘을 서서히 덮게 되면 지상에서 밤하늘을 봐야 하는 천문학자들은 아주 곤란해진다. 더 멀리 있는 별과 은하들 앞으로, 훨씬 가까운 거리에 놓인 저궤도 위성들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시야를 가리고 방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희미한 먼 거리의 천체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는 보통 오랜 시간 망원경 검출기를 열어놓고 빛을 모으는 장노출 촬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 그 망원경의 관측 시야 안으로 비행기나 인공위성이 빠르게 지나간다면, 노출 시간 동안 그들이 지나간 궤적이 고스란히 검출기에 남는다. 더군다나 이런 비행체들은 지구의 자전과 전혀 상관없는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구 자전 속도에 맞춰서 느리게 회전하면서 하나의 천체를 계속 추적하는 망원경의 시야에 비행기와 인공위성의 긴 궤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취미로 밤하늘에서 장노출 별 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특히 서울 근처에서) 하늘 위로 수시로 지나가는 비행기의 흔적이 얼마나 짜증 나는지 잘 알 것이다. 천체사진가들은 번거롭지만 비행기들이 남긴 궤적을 하나하나 지우고 보정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공위성들의 궤적이 수천 개, 수만 개에 이르게 된다면 그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상황이다. 보정한다 하더라도, 하늘을 온전히 보는 것에 비해서는 퀄리티가 훨씬 떨어질 것이다.
2020년 현재 스타링크의 인공위성은 총 358대가 저궤도 상공에 올라가 있다. 각 위성은 약 260kg의 무게와 수미터 수준의 (위성치고는) 아주 아담한 크기를 갖고 있다. 현재 스페이스X의 야심 찬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도 계속 위성을 수시로 쏘아올려 총 1만 2000개로 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그 중 대부분인 9000여 대가 저궤도에 올라간다. 이렇게 많은 위성들이 궤도에 한꺼번에 오르게 된다면, 인공위성의 모습을 비행기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걱정은 이미 현실로
스페이스X가 띄운 위성들 때문에 지상 망원경을 활용한 관측이 이미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칠레의 CTIO(Cerro Tololo Inter-American Observatory) 천문대에서는 암흑에너지의 흔적을 추적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직경 4m짜리 블랑코 망원경(Blanco Telescope)에 암흑에너지 카메라(DEC, Dark Energy Camera)를 설치해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했다. 이 카메라는 태양계 외곽에 숨어 있던 작은 해왕성 근접 천체들을 발견하는 등 뜻밖의 활약도 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 카메라와 망원경 장비로 지난 2019년 11월 촬영했던 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고민에 빠졌다. 6분에 걸친 노출로 담아낸 사진에는 19대의 스타링크 위성들이 남긴 궤적이 아주 선명하게, 카메라 시야에 가득 담겨 있었다. 스페이스X의 계속된, 어떤 면에서는 다소 무분별해 보이는 우주 개발의 여파로 지상 관측이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염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지구에서는 사실상 천문 관측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가까운 미래, 스페이스X가 원래의 계획대로 모든 스타링크 인공위성망을 다 궤도에 올리게 되면, 지상 관측 천문대에서는 얼마나 영향을 받게 될지를 계산했다. 모든 위성이 다 올라가면, 하늘에는 평균적으로 대략 30평당 반 개에서 한 개 정도(0.005~0.01/cm^2)의 밀도로 위성이 채워진다. 30평짜리 집마다 인공위성이 한 대씩 있다고 생각해보자.
하늘을 빼곡히 채우게 될 스타링크 위성들의 영향은 관측자의 위도, 관측하는 하늘의 고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또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어떤 계절에 하늘을 보는지에 따라서도 시야에 들어오는 햇빛을 반사해 밝게 반짝이는 인공위성의 수가 달라진다. 평균적으로 북반구에서는 겨울이 되면, 적도 주변의 위도가 낮은 저위도 지역에서는 매일 밤 6시간 정도는 인공위성의 방해 없이 깜깜한 하늘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위도가 점점 올라가면, 우리나라나 대부분의 유럽 국가, 미국 등이 위치한 중위도 지역부터는, 특히 여름이 되면 지평선 위로 지나가는 수백 대 이상의 인공위성들을 매일 보게 된다.
물론 그나마 고도 30도 밑 낮은 고도의 지평선 근처 하늘을 관측한다면 시야에 걸리는 인공위성의 수를 줄일 수 있지만, 사실 실제 천문 관측에서는 지평선 근처를 관측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땅 위에 있는 도시 불빛이나, 낮은 고도에서 두꺼운 지구 대기에 의한 별빛의 산란, 박명(Twilight) 등 지평선 근처의 저고도 하늘에서는 관측을 방해하는 요소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이미 실제 대부분의 관측에서는 (보고자 하는 천체가 보이는 방향이 지평선 근처밖에 없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천문대 망원경들은 지평선 근처 저고도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대부분 하늘 높이, 정수리 꼭대기 위에 있는 천정 근처로 망원경들은 고개를 치켜든다.
특히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마지막 아홉 번째 행성을 찾으려는 태양계 외곽 카이퍼 벨트 천체 탐사나, 지구 주변을 지나가는 아주 작은 지구 근접 소행성(NEO, Near-Earth Objects) 탐사 관측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염려한다. 크기가 수킬로미터 수준으로 아주 작은 소천체들이 희미하게 태양빛을 반사하는 모습이, 수만 대 인공위성 ‘대군’의 밝은 섬광에 섞여버려 포착하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민간의 자율성 vs 정부의 규제
부동산, 비트코인 등 다양한 경제 정책 이슈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적절한 규제라는 입장이 항상 팽팽하게 맞선다. 우주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민간 기업이 점점 늘어나면서 우주 개발에서도 이런 문제가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만 대가 넘는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려 하는 스페이스X뿐 아니라 버진 갤럭틱, 블루 오리진 등 많은 민간 우주 개발 기업들이 우주로 뛰어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우주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오랫동안 국가 기관이 독점했던 우주 개발이라는 영역이 민간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가 진정한 우주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는 우주 개발에 참여하고자 하는 민간 기업에 별다른 규제나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 항상 그렇듯 신생 사업 분야에 대한 제도적 장치는 뒤늦게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우주 재난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궤도로 올라가 지금까지 지구 주변을 떠돌고 있는 우주 쓰레기들. 영상 속에서는 우주 쓰레기들의 크기를 더 잘 보이도록 크게 표현했다. 영상=NASA Orbital Debris Program Office at JSC
그동안은 모든 우주 발사체와 위성이 국가 기관의 관리하에 운용되었지만, 이제 누구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자신만의 소형 위성을 쏠 수 있게 된다면 모든 발사체에 대한 추적이 어려워질 수 있다.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다른 위성과 충돌하며 더 많은 우주 쓰레기를 양산하는 케슬러 신드롬(Kessler Syndrome)의 기폭제가 될 위험도 있다. 가끔씩 차 위에 새똥이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빈도로, 집 앞마당에 인공위성 파편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별다른 선발 조건 없이 평범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우주 관광 사업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NASA 등 국가 기관에서는 우주인을 선발할 때, 신체적인 조건이나 전문성에 따른 업무의 적합성뿐 아니라, 여러 번에 걸친 심도 있는 심리 검사를 통해서 오랜 기간 우주 환경에서 고립되어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모범적’인 사람들을 선별한다. 그래서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우주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우주 범죄’ 기록은 없다. 하지만 민간 우주 관광 산업이 활성화되어 이런 심리 검사 없이 일반인들이 우주로 자주 올라가게 되면 우주 범죄가 굉장히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가끔 여객기에서도 난동을 부려서 문제가 되는 승객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가장 가깝고 쉽게 체감되는 문제는 우리가 더 이상 온전한 어두운 밤하늘을 즐기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밤하늘 ‘조망권’ 침해는 밝은 도시 불빛 때문에 이미 벌어지고 있는 문제다. 지난 2018년 중국은 ‘인공 달’을 궤도에 올려 전력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햇빛을 반사하는 거대한 반사판을 지구 저궤도로 올려 밤에도 반사판에 비친 햇빛으로 거대한 인공 조명을 만들어 어두운 밤길을 밝히겠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인공 달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매년 약 1억 7000만 달러의 전력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인공 달이 정말 하늘에 올라가 중국의 특정 도시 한 곳을 계속 비춘다면, 인접한 우리나라에서는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서울의 밤하늘도 너무 밝은데 중국에서 쏘아올린 인공 조명까지 더해진다면, 우리는 보름달이 두 개 떠 있는 듯한 하늘을 이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인공 달은 계속 한 도시만 비춰야 하기에 위성의 공전 주기가 지구의 자전 주기와 같아야 한다. 그래서 계속 한 지역 상공에만 위성이 떠 있을 수 있는 지구 정지 궤도(Geostationary orbit, 고도 약 3만 6000km)에 올라간다. 하지만 지구 저궤도도 아니고 이렇게 먼 정지 궤도까지 올라간 위성이 지구의 밤하늘을 밝힐 정도로 햇빛을 많이 반사하려면 수킬로미터 이상의 아주 거대한 반사판을 우주로 올려야 한다. 그래서 다행히 현재로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사실 1993년 러시아에서 반사판 역할을 하는 20m의 즈나먀(Znamya, 러시아어로 깃발이란 뜻) 위성을 올려, 햇빛을 반사해 지구를 비추는 인공 달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즈나먀 위성은 약 5Km 범위의 지역에 보름달이 떴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빛을 비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즈나먀 위성은 정지 궤도가 아니라 저궤도를 돌았기 때문에 시속 8km의 속도로 지구 전역을 돌았다. 한 도시의 사람들은 아주 잠깐만 인공 조명의 혜택을 누렸다. 이후 러시아는 조금 더 큰 25m 크기의 반사판을 띄워올리는 실험을 진행했지만, 다행히 두 번째 위성은 로켓에서 분리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버렸다.
하지만 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제 전 세계 대기업들도 우주를 탐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세계 어디서든 매일 밤 볼 수 있는 광활한 밤하늘은 민간 기업들에게는 너무나 탐스러운 광고 무대다. 일본 음료 기업 ‘오츠카’는 달 표면에 ‘포카리 스웨트’ 음료수 광고를 설치하는 계획을 고려하고 있다. 최초로 달 표면에 상업 광고를 설치하겠는 굉장히 당돌한 목표다. 이들은 스페이스X의 팰컨 9 로켓에 음료수 캔 모양의 티타늄 조형물을 실어서 달 표면에 착륙시킬 예정이다. 최초로 달 표면에 안착한 음료수 캔의 모습을 탐사선으로 촬영해, 달 표면 자체를 최초로 광고 촬영장으로 쓰겠다는 계획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들의 광고는 지구에서까지 보일 정도로 거대하지는 않다.
러시아의 스타트업 ‘스타트로켓(StartRocekt)’은 아예 민간 기업의 로고나 문구가 담긴 거대한 전광판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서 90분마다 한 번씩 지구 주변을 계속 맴도는 우주 광고판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이들은 2018년 유리로 만든 작은 위성 ‘우주 디스코볼’을 궤도로 올린 프로젝트에 영감을 받아, 더 상업적인 광고판을 우주로 띄우려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대표적인 음료 기업 ‘펩시’에서 이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계획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획대로라면 2021년 첫 우주 광고판이 지구 저궤도로 올라갈 예정이다.
스타트로켓이 인공위성을 활용한 지구 저궤도 광고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영상.
인터넷을 하는 동안 계속 화면 여기저기서 눈길을 방해하는 난잡한 광고 배너처럼, 밤하늘에도 민간 기업의 광고 배너가 어지러이 걸리게 되는 셈이다. 상상해보라.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하늘 위로 스타벅스 로고와 나이키의 ‘Just Do It’ 문구가 지나간다면 어떨까? 그 광고가 보기 싫어서 고개를 반대쪽 하늘로 돌렸더니, 그쪽에는 이번엔 더 보기 민망한 스팸 광고가 걸려 있다면? 이 때문에 최근 천문학계에서는 무분별한 ‘우주 난개발’을 막는 정부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천문학의 태생적인 모순
일론 머스크는 지상 관측이 어려워진다는 천문학계의 문제 제기에 굉장히 쿨한 반응을 보였다. 인공위성이 하늘을 다 덮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이사이 빈틈으로 관측하면 괜찮을 것이란 다소 황당한 답이었다. 하지만 논란이 더 거세지면서, 현재 스페이스X는 햇빛을 잘 반사하지 않아 지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 소재로 인공위성을 제작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햇빛을 반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상 관측에 방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관측하고자 하는 먼 배경 천체 앞으로 수시로 인공위성이 가리고 지나가는 ‘엄폐’ 현상이 벌어지면, 온전한 지상 관측은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전 세계 공짜 와이파이’라는 스페이스X의 ‘대의’를 위해 지상 천문 관측이라는 ‘작은 일’을 포기할 테니, 대신 스타링크 위성의 방해를 받지 않는 달 표면이나 달 궤도 너머에 더 많은 우주 망원경을 건설해달라고 스페이스X에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한다. 일종의 우주적인 손해 배상을 요구하고 싶을 정도로 깜깜한 밤하늘이 아쉽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논란을 보면서 천문학은 어쩌면 애초에 그 존재 자체가 굉장히 모순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십억 광년 머나먼 우주 끝자락에 자리한 초기 우주의 희미한 잔상을 보기 위해서, 우주의 탄생과 운명에 대한 거대한 비밀을 파헤치고 이웃 행성으로 로봇을 보내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그 희미한 빛을 주워담고 먼 우주로 탐사 로봇을 보내는 공학 기술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의 팽창 속도를 측정하고, 주변 다른 별들 곁을 도는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일 모두 우주 공학 기술로 만든 우주 망원경과 탐사 기술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감마선 등 고에너지 빛을 검출하기 위해 아프리카 사막 한복판에서 운용되는 HESS 망원경. 이처럼 천문학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 가장 최첨단의 기술을 동원한 장비를 세워 우주를 봐야 하는 역설적인 면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본연의 우주를 온전하게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술이 가장 덜 침범한, 가장 원시적인 환경으로 도망가야 한다. 그래서 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부분의 대형 망원경과 검출기들은 가장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화산 꼭대기나 높은 고원의 메마른 사막, 극한의 추위에 시달리는 남극 등에 자리하고 있다. 도시 불빛의 광공해와 도시에서 새어나오는 각종 생활 전파 잡음에 의한 방해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기술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가장 깨끗한 원시적인 곳에서 우리는 가장 온전하고 어두운 우주를 마주할 수 있다.
별을 보기 위해서는 캘리포니아의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캘리포니아의 밤하늘에서는 별을 즐길 수 없다. 우주를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몽골의 초원을 가야 한다. 하지만 몽골의 초원에는 천문대를 지을 기술이 없다. 더 먼, 더 태초의 우주를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우리는 그동안 다양한 우주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발전한 인간의 기술은 이 지구상에서 우주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하나씩 잠식하고 있다. 우주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이 요구되지만, 정작 그 우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렇게 발전시킨 기술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가야 하는, 천문학은 그 존재 자체가 굉장히 모순적이지 않은가.
페르시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밤은 세상을 감추지만 우주를 꺼낸다(The night hides the world, but reveals a universe).” 하늘을 덮은 깜깜한 어둠은 우리의 활동성을 저하시키고 포식자의 위협을 높이지만, 낮 동안 밝은 태양 빛에 파묻혀 있던 지구 바깥 우주의 장엄한 역사를 들춰낸다. 하지만 유일하게 밤에만 즐길 수 있었던 별빛 역시 밝게 새어나오는 도시 불빛, 지구 저궤도를 가득 채우게 될 인공위성들의 빛으로 뒤덮여 더욱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는 하늘에 떠 있던 별빛을 따다 모두 지상으로 가지고 내려와 도시를 비추고 있는지 모른다. 그동안 하늘에 떠 있던 별은 꺼져가고 있다.
별에 다다르기 위해 올라간 로켓의 섬광은 정작 밤하늘의 별빛을 잠식한다.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우주를 더 제대로 보기 위해 발전시킨 기술로 인해 정작 별빛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오늘 밤 하늘에 별이 몇 개 떠 있다면 꼭 당신의 눈동자에 그 별빛을 담아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서서히 멸종되어가는 별빛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는 마지막 세대일지 모르니 말이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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