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실패에 인색한 편이다. 통계에 따르면 성인 중 절반가량이 파산·해고·이혼 등 인생의 ‘실패’ 한 번으로 낙오자로 전락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수 없이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한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실패의 경험이다. 비즈한국은 화려한 성공에 감춰진 경영인들의 실패 경험을 들어보고자 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8년 의료 관광을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환자 수는 총 37만 8967명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국가는 중국으로 2018년 한 해 동안 중국 관광객 11만 8310명이 한국을 찾았다. 정부는 2009년 1월 의료법을 개정하면서 외국인 환자 유치·알선 행위를 허용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사업자 등록을 하면 외국인 환자 유치기관으로 활동할 수 있다. 현재 3572곳이 외국인 환자 유치기관으로 활동 중이다.
문제는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이나 1억 원 이상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절차 탓에 불법으로 활동하는 브로커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환자에게 자신들과 협업 중인 병원만을 소개하고, 그 대가로 병원으로부터 높은 수수료를 챙긴다. 병원들도 수익을 남기려면 불법 브로커를 통해 외국인 환자를 알선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를 묵인했고, 의료관광 시장에 잘못된 시스템이 정착되는 결과를 낳았다.
삼성라인성형외과 원장이자 스타트업 코닥&미미를 창업한 신현덕 대표는 이러한 잘못된 의료 관광 시장을 바로잡으려고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개발에 팔을 걷어붙였다. 코닥은 중국인 환자와 한국 병원을 연결해주는 중개 플랫폼이다. 국내 800여 의료기관과 전문의 2000여 명의 정보를 담은 코닥은 2019년 중국 상하이에 법인 설립을 마쳤고, 서비스 시작을 앞두고 있다.
신 대표는 이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말한다. 서울 압구정 건물을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쓸 정도로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을 시작한 이후 동료도 재산도 잃었다. 투자를 약속했던 중국 기업들도 신 대표를 외면했다.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가 하나둘 쌓이면 언젠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않겠습니까. 저는 잘못된 한국 의료 관광 시장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라며 웃으며 말하는 신현덕 대표. 그의 실패담을 들었다.
Q. 호칭을 성형외과 원장으로 해야 할지 코닥&미미 대표로 해야 할지 고민됩니다.
A. 주변 지인들도 “원장이라고 불러야 해? 대표라고 불러야 해?”라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럴 때마다 코닥&미미 대표로 불러 달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꼭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 저는 중국인 환자를 한국 전문의들에게 소개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신현덕 코닥&미미 대표라고 합니다.
Q. 무례한 질문일수도 있는데요. 성형외과 원장이면 돈을 꽤 버셨을 텐데. 창업에 나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A. 많은 이가 ‘얼마나 더 벌려고 그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웃음). 저는 전문직으로 기반을 닦았지만, 온라인 의료 서비스를 개척하는 게 꿈이었어요. 20년 전 인턴 생활을 막 마쳤을 때 의대 선후배들과 ‘몸누리’라는 온라인 의료 비즈니스 포털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의료법상 ‘의료’라는 공익 콘텐츠를 왜곡하지 않고서는 수익 사업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구조라 포기해야 했어요. 미련이 남았지만, 그 후 성형외과 전문의로 돈도 많이 벌면서 제 꿈을 잊고 살았죠.
그러다 2015년 서울 압구정동에 성형외과를 차리면서 한국 의료관광 시장이 불법 브로커에 좌우된다는 걸 실감했어요. 대부분의 국내 성형외과가 살아남기 위해선 불법 브로커를 상대해야 해요. 외국인 환자 유치는 90% 이상이 불법 브로커에 의해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라고요. 불법 브로커가 판치는 국내 의료관광 시장을 바로잡고 싶다고 생각한 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Q. 코닥을 기획한 게 무려 5년 전 일입니다. 그런데 아직 서비스를 시작조차 못했습니다.
A. 당초엔 1년 내로 서비스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앱 개발자를 섭외하고 빠르게 준비를 했어요. 1년 후 결과물을 받아보니 ‘쇼핑몰’ 같더라고요. 순수하게 중국인 환자와 국내 전문의를 연결한다는 제 취지와 맞지 않아 갈아엎었습니다. 2017년 하반기쯤 지금의 코닥 이미지를 갖추기 시작했죠.
Q. 그러고도 3년이란 시간이 더 흘렀는데요.
A. 자금 문제가 발생했어요. 성형외과 개원의로 지냈을 때는 수입이 괜찮았어요. 서울 압구정에서 건물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제 병원으로 사용했으니까요. 그런데 앱에 신경 쓰는 시간이 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업에 소홀해지더라고요. 매출은 줄고 자금 압박에 시달려 직원들과도 안 좋게 헤어져야 했습니다. 외부 투자자나 동료 의사들의 도움 없이 이 사업을 하려고 했던 게 첫 번째 문제였던 것 같아요.
Q. 외부 투자도 충분히 유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A. 저는 의사들에게 투자받고 싶지 않았어요. 물론 어떤 의사가 절 믿고 투자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20년 전 온라인 의료 포털을 운영할 때 주주들이 의사 선배들이었는데요, 선배다 보니 훈수도 잦고 본인만 부각되길 바라는 겁니다. 의사들에게 투자를 받아서는 제 서비스를 성장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중국 스타트업들과 협업 실패
Q. 이유야 어찌 됐건 자금이 있어야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는데, 이후 어떤 행보를 이어왔는지 궁금합니다.
A. 초기기업 전문 투자자인 본엔젤스에 투자를 의뢰했어요. 본엔젤스 관계자가 “서비스를 실행해보고 유의미한 데이터가 어느 정도 나왔을 때 투자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서비스 시작을 서둘렀습니다. 코닥은 중국인이 대상인데 ‘의료’ 분야로 중국 마켓에 등록하려면 중국 법인을 설립해야 해요.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중국 의료법상, 외국인이 중국 법인을 설립하려면 중국인 1인이 법인 지분 51%를 소유해야 하고요.
Q. 결국 ‘의료서비스’로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중국인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네요.
A. 그래서 잘나가는 중국 성형 앱에 제 아이템을 의뢰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운 좋게도 당시 중국 성형 앱 1위이던 겅메이(更美) 대표와 만났죠. 2018년 6월로 기억합니다. 겅메이는 중국인을 중국 성형외과와 연결해주는 서비스인데요. 한국 시장 진출도 고려하던 터라 좋은 얘기가 오갔어요. 3시간 동안 대화한 끝에 10억 원을 투자해달라고 요청했죠. 겅메이도 초기에 그 정도 투자를 받은 이력이 있었고, 나도 내 서비스를 성공시키려면 그 정도 금액은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Q. 법인도 설립하지 않은 상황에서 10억 원은 적지 않은 금액 같은데, 겅메이 대표의 반응은 어땠나요.
“투자를 받으면 의사 그만둘 거냐”고 하더라고요. 의사와 앱,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하는 제 모습에 설령 도망칠까 걱정이 됐나 봐요(웃음). 저는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얘기했어요. 내가 의사로 이 앱을 운영해야 다른 의사들도 신뢰하리라 생각하거든요. 그러자 겅메이 대표는 중국 프로그램 개발자와 겅메이가 보유한 중국 이용자들을 코닥에 연결하는 조건으로 투자금을 낮추자고 제안했고, 저는 받아들였죠. 8월까지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7월쯤 겅메이가 타 업체로부터 500억 원을 투자를 받아서 실제로 저도 투자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어요. 그런데 답이 없더군요. ‘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 이런 연락조차 없었어요.
Q. 겅메이 말고 다른 곳에 투자를 문의한 적은 없었습니까.
A. 시가총액 200조 원에 달하는 생명보험회사인 핑안보험의 자회사인 핑안굿닥터(平安好醫生)란 기업이 있어요. 제가 20년 전 꿈꿨던 온라인 의료 비즈니스를 실현한 기업입니다. 원격의료를 넘어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무인 진료소로 앞서나가는 중이죠. 해외 사업부에 연락해 핑안굿닥터 부회장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코닥은 아직 서비스 시작도 못 했고, 법인도 없다. 대신 향후 협업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핑안굿닥터도 한국 의료 서비스와 협업할 방법을 찾는 중이긴 했어요. 다만 경쟁업체인 알리헬스가 먼저 한국 병원에 광고비로 1000만 원을 요구했다가 퇴짜를 맞으면서 핑안굿닥터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긴 했죠. 실무진도 제 서비스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투자로 연결되진 않았어요. 그들도 법인을 언급하더군요. 결국 법인을 세우지 않으면 중국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실패는 친구. 더 많은 친구를 만나더라도 좋은 친구로 만들 것”
Q. 2018년 여러 차례 홍역을 치렀습니다. 사업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A. 자금 문제로 직원들 급여 연체가 잦아진 탓에 병원 규모도 줄여야 했어요. 인터뷰로는 다 말씀드리지 못할 만큼 제 인생은 바닥이었어요. 그러다 2019년 6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살가웠던 부자지간은 아니었지만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께서 평생 제 걱정을 하면서 살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심만 안겨드린 채 아버지를 떠나 보낸 것 같아 죄송스러웠습니다. 꼭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을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Q. 부친의 작고가 신 대표를 다시 일어서게 했군요.
A. 그런 셈이죠. 먼저 중국 법인 설립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어요. 호프코리아와 메디씨드 관계자들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들은 중국에 한국 의료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입니다. 신영종 메디씨드 대표와 문우성 EA브릿지 대표의 도움으로 2019년 9월 상하이에 법인을 설립했고, 중국 마켓에 코닥을 등록할 수 있었어요. 한편 국내에는 ‘미미’라는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의료법상 국내 환자 유치가 불가능한데도 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국내 성형 앱 시장을 바로잡고 싶었거든요.
Q. 법인을 설립했으니 중국서 서비스를 시작하는 건 시간문제겠네요.
A. 올 상반기 안으로는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아직 중국 앱마켓에 코닥을 등록해야 하는 절차가 남았지만, 코닥은 하이브리드 앱인지라 웹에서도 볼 수 있어서 서비스를 시작할 수는 있습니다. 미미도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는 건 아닙니다. 의료 플랫폼은 첨단 영역도 아닌데 제약도 많고 경쟁자도 많아 참 힘든 분야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코닥과 미미는 현재 불합리한 국내 의료 관광 시장 개선에 초점을 둔 유일한 O2O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전문의들을 네트워크화해서 세계에 한국 의료를 알리는 게 제 목표입니다.
Q. 그동안 수많은 실패를 겪었습니다. 앞으로도 실패가 신 대표를 괴롭힐지도 모릅니다. 신 대표에게 실패는 무엇인가요.
A. 추상적이지만 실패는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 가까운 곳에 늘 붙어 있잖아요. 방심하면 저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고, 반대로 저를 더 멋지게 만들어줄 수도 있는 듯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친구를 만날지도 모르겠네요. 그 친구들이 저를 더 빛낼 수 있도록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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