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마약베개’가 공공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상표라면 ‘살인미소’, ‘팩트폭행’ 같은 용어에 대해서도 위험하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약베개’를 두고 2년 6개월간 이어진 상표분쟁을 대리한 변리사는 이렇게 말했다. 마약베개를 두고 소비자가 ‘실제 마약성분이 포함된 베개’라 인식할 가능성은 낮다는 뜻이다. 2017년 10월 출원된 블랭크코퍼레이션의 ‘마약베개’ 상표는 최근 특허법원에서 상고기각 판결을 받고 다시 특허청으로 돌아와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과정은 지난했다. 특허청이 2017년 5월 출원된 ‘마약베개’ 상표에 대해 ‘일반수요자에 주는 의미와 내용 등이 선량한 풍속에 어긋나거나 공공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음’ 등의 이유를 들어 거절하자 블랭크코퍼레이션은 불복했고 특허심판원, 특허법원까지 가게 됐다.
특허심판원은 2019년 5월 ‘마약은 남용의 위험성이 높은 물질을 지칭하는 용어로, 상표등록을 인정하면 국가의 공인을 받은 것과 같은 인식을 일반수요자에게 심어주고 공중보건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원고의 심판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특허법원은 ‘특허심판원의 심결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며 특허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다. ‘마약베개’ 상표 거절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키는 다시 특허청이 쥐었다. 마약베개 상표를 대리한 김영두 특허법인 인벤싱크 변리사는 “특허심판원 결과가 나온 뒤 다시 특허청에 내려가 심사가 재개될 예정이며 4월 말쯤 결과가 나올 것이다. 특허청이 다른 이유로 거절할 가능성은 있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허청이 ‘마약’에 예민한 이유
특허청이 ‘마약’이 들어간 상표에 예민한 건 지난해 사회적으로 공분을 산 ‘버닝썬 사건’ 때문이다. 당시 사건 관련자들 사이에서 마약이 거래됐다는 내용이 발표되자 특허청 내부에서 ‘마약’ 관련 상표는 등록하지 말라는 내부 지침이 내려왔다는 게 관계자 전언이다.
하지만 ‘마약’ 관련 상표는 버닝썬 사건 이전부터 꾸준히 출원됐으며, 등록된 상표도 다수다. 특허정보검색사이트 키프리스에 공개된 상표를 살펴보니, 매콤한 국물떡볶이 먹을수록 끌리는 마약퐁당 떡볶이 마퐁(2016년 4월), 마약의자(2017년 2월), 마약스키니(2017년 5월), 마약침대(2018년 2월), 마약퍼퓸(2018년 2월) 등이 등록되어 있었다.
‘마약베개’는 버닝썬 사건 이후 공서양속(법률 행위 판단의 기준이 되는 사회적 타당성)에 반한다는 이유로 특허청이 거절한 첫 사례다. 마약베개 상표 심사가 특허심판원, 특허법원까지 올라가며 시간을 끌자 그 이후 출원된 ‘마약’ 문구가 들어간 상표들은 대부분 출원심사보류 상태다. 특허법원이 ‘마약베개’ 상표를 어떻게 판결할지 보고 나머지 상표의 등록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의도다.
특허법원이 ‘마약베개’ 상표가 공서양속을 해치지 않는다고 판결했음에도 이후 식음료 종류에서 ‘마약’이 들어간 상표가 등록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2호에서는 ‘상품의 품질을 오인하게 하거나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는 상표’를 등록받을 수 없는 상표로 규정한다. ‘마약’ 문구를 사용해 식음료 종류로 상표를 등록받게 될 경우 특허청은 이 조항을 들어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
김영두 변리사는 “마약베개 사례 이후 특허청이 내부적으로 ‘마약’과 관련된 심사지침을 마련하지 않을까. 기존에도 식음료 종류에 ‘마약’을 사용한 경우 상표등록 되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그 외 종류의 사용에 대해서는 공서양속에 반한다는 이유로 거절할 순 없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특허청 관계자는 “마약베개 개별 건에 대해서는 출원 공고가 나갈 확률이 높다. 특허법원도 ‘마약’ 문구가 들어간 상표 전체에 대해 판단한 게 아니라 마약베개 건에 대해 판결을 내린 것이기 때문에 나머지 건은 개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상표에 ‘마약’이 사용되는 것에 대해 언론이 문제를 제기했고 국회에서 요구사항이 내려와서 그에 따른 지침을 마련했다. 현재 특허청이 후속 지침을 세부적으로 마련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슈 되는 상표에 따라붙는 ‘상표브로커’
한편 ‘마약베개’ 상표가 특허법원까지 올라가며 이슈가 되자 ‘마약’ 자가 붙은 상표들이 우수수 출원됐다. 눈에 띄는 건 A 씨 한 명이 여러 개의 ‘마약○○’ 상표를 출원한 사실이다. 출원인 A 씨는 3월 4일부터 최근까지 마약샴푸, 마약토너, 마약비누, 마약스프레이 등 ‘마약’자가 들어간 상표 19개를 출원했다. ‘마약 상표’ 관련 기사가 등장한 3월 3일 바로 다음날부터다. A 씨는 지난해 하반기 상표권 이슈로 다수의 언론보도가 나온 ‘명륜’ 상표를 이용해 명륜김치, 명륜불닭, 명륜냉면 등의 상표도 출원했다.
전문가는 실제 등록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 변리사는 “A 씨는 브로커로 추정된다. 올해 들어 최근 이슈가 된 것을 변형해 다수의 상표를 출원했다. 심사는 다 재개될 것이다. 하지만 출원했다고 전부 등록되는 건 아니다. ‘마약’의 식별력이 인정됐고 공서양속에 반하지 않는다는 특허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유사한 상품군에서 마약을 쓸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먼저 선점한 상표가 있을 경우 유사군에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특허청 관계자는 “악의적으로 출원해 선점하고 경고장을 날리기 위한 목적을 가진 상표는 내부적으로 등록 과정에서 확인한다. 같은 사람이 전에도 유사한 행위를 했는지, 악의적인 목적이 있는지 의심이 가는 경우에는 실제 사용 의사 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절차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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