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말 한번 어찌 그리 잘 지어냈는지, 코로나 시국 하에 나온 신조어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이 요즘 나의 일상을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끼니는 왜 또 그리 빨리 돌아오는지, 한창 클 무렵인 아들의 끼니 사이 간식까지 챙기다 보면 달랑 세 식구 사는데도 온 종일 손에 물이 마를 새가 없다.
아침 먹으면서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냉장고 속 식재료를 수시로 점검하며 인터넷 레시피를 뒤지고 있다.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요즘은 주 1~2회 하던 외식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한 번 꼭 가봐야지’ 했던, 아직 못 가본 동네 식당들도 있는데 언제쯤 가볼 수 있으려나.
2주 더 연장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일단 4월 19일까지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 관계로 적어도 그때까지는 외부 음식 구경은 배달이나 테이크아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나마도 일부 식당만 배달 및 테이크아웃 판매를 위해 문을 열었을 뿐 대부분의 식당들은 전면 휴업상태다.
최근 들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배달음식 수요가 증가했다지만 독일은 아직 배달음식이 익숙한 나라가 아니다. 한국처럼 프랜차이즈가 많지도 않고 동네 작은 식당 수준인 곳들이 많아서 하루 몇 건이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배달 건수를 기다리느라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느니 차라리 휴업을 택한 곳들이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지난 3월 중순 이후 비필수 업장에 대한 영업금지 정책이 시행된 후, 문 닫은 동네 식당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먹고사는지 걱정이 앞섰다. 코로나 상황 이전에도 북적댔던 건 아니지만, 주말이 되면 몇 안 되는 테이블에 손님이 꽉 들어차 시끌벅적했었는데 벌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견딜지 남 일 같지가 않다.
외식을 할 때 멀어도 ‘맛집’을 찾아가는 한국 정서와 달리 독일 사람들은 집에서 가까운 동네 식당들을 이용하는 편이고, 임대료 상승폭 제한 및 세입자 권리 보호 등 골목상권 보호가 잘 돼 있는 독일의 정책 덕분에 영세한 규모의 동네식당도 망하지 않고 오래 살아남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달 가까이 어쩌면 그 이상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은 또 다르니까.
비상상황이 선포된 후 독일은 기업 및 산업 등에 대한 지원정책 등을 수시로 발표했고, 동네 상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정부의 성격을 보면 모른 척하지 않겠지만, 얼마나 빨리 어떤 식으로 지원될 것이냐가 관건이다. 영업중단이 시행된 지 채 2주가 지나지 않은 지난 3월 말 독일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기업과 소상공인 등에 얼마나 어떤 식으로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온라인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연방 주마다 지원규모가 조금씩 다르지만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대해 상환할 필요 없는 긴급 보조금 지급과 저금리 대출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지는 식. 보조금의 경우 최저 2500유로에서 최대 3만 유로(중소기업) 선에서 지원되는데 직원 수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베를린의 경우 주정부의 지원금에 연방정부 지원금까지 더해 다른 주들보다 훨씬 많은 지원금이 책정돼 있다. 대부분의 주에서 사업자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 및 프리랜서들까지 지원금을 지급하게 돼 있는 것도 문화예술가들에 대한 예우가 잘 돼 있는 독일의 정책적 특징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내용적 측면만이 아니라 속도 면에서도 독일의 지원금 정책은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4월 초, 베를린에서 문화 관련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한국인 지인은 온라인 신청 후 며칠 만에 5000유로 상당의 지원금을 일시로 받았다. 한화로 650만 원이 넘는 이 지원금이면, 독신자 거주를 위한 작은 규모의 집 기준으로 3개월 정도의 임대료와 1인 생활비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정도 속도면 내가 걱정했던 동네 식당들도 이미 지원금을 지급받고 큰 시름은 덜었겠다 싶었다.
국가 지원에도 불구하고 모든 어려움이 해소되는 것은 아닐 게다. 나라를 막론하고 여기저기서 ‘병보다 굶어 죽게 생겼다’는 극단적인 표현들이 나올 만큼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한 상황에 그래도 국가가 최소의 안전망 역할을 해준다는 게 국민 입장에서는 얼마나 안심되는 일일지.
한국에서도 연일 긴급재난 지원금이니 소상공인 및 기업 지원 등 정책 이슈들이 들리지만 찬반 논쟁을 하느라 의견을 수렴하느라 절차를 밟느라 시기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나라마다 상황도 사정도 다름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국가가 어떤 식이든 국민들이 버틸 수 있게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요즘 같은 때는 월급 주는 회사가 고맙게 느껴진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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