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항공업계가 점점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신규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제대로 날개를 펴보기도 전에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다. 승객의 발길은 끊겼고, 항공기 리스비와 인건비는 꾸준히 나가는데 정부의 자금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됐기 때문. 수요 예측이 어려워 사업 초기 판로를 구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는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사들의 구조조정이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 항공사들은 대형항공사(FSC)와 LCC를 가리지 않고 유급휴직과 휴업 등 인력 감축을 실시할 정도로 위기에 내몰려 있다. 대표적으로 이스타항공은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스타항공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24일 해고자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애초 전체 직원의 45% 수준인 750명을 정리 해고할 계획이었지만 내부 반발로 감축 대상은 300명가량으로 정해졌다. 과거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 해고 우선순위다.
이 관계자는 “객실승무직 100명, 조종사 50명 등 직종별 22% 수준에서 정리 해고가 이뤄질 예정이다. 산정 기준이 모호해 논란이 거세질 듯하다”며 “이번이 1차 구조조정이고 제주항공 인수가 완료된 후 2차 구조조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4월 월급도 지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다른 항공사 사정도 비슷하다. 현재 국내 항공사 9곳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약 4만 2000명인데, 이 중 무급·유급 휴직자는 25%인 1만 800여 명에 달한다.
항공사들이 고정비를 최대한 줄이며 자구책 마련에 힘쓰고 있지만 분위기가 반전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항공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국적사의 운항편은 4만 6451편에서 3월에는 1만 4320편으로, 여객 수는 806만 8481명에서 152만 1525명으로 대폭 줄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항공업계가 5월부터 회복세를 보인다고 해도 한국 민간 항공업계는 올해 상반기에만 49억 달러(5조 9500억 원) 손실을 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항공사들의 항공운임채권 자산유동화증권(ABS) 신용등급이 강등되며 ABS 조기 상환 우려도 나온다. ABS는 항공사들이 미래에 발생할 항공권 매출을 담보로 발행한 사채로, 수익이 들쭉날쭉한 항공사들이 자금 조달 창구로 많이 이용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항공사의 신탁 원본 회수 실적이 줄어들자 10일 한국신용평가는 대한항공의 ABS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아시아나항공은 BBB+에서 BBB로 한 단계씩 낮췄다.
이러한 가운데 플라이강원·에어로케이·에어프레미아 등 신규 항공운항증명(AOC)을 받거나 신청한 항공사는 제대로 날아보기도 전에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 항공사는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서도 배제됐다. 국토교통부는 LCC에 운영자금 목적으로 최대 3000억 원을 무담보로 대출해주는 방안을 실시했지만, 신규 항공사는 제출할 과거 경영 실적이 없어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신규 항공사들의 경영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1월 정식 취항한 플라이강원은 12월 대만에 이어 올해 2월 클라크(필리핀) 국제선을 신규 취항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양양-제주 노선은 하루에 1회만 운항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플라이강원의 자본총액은 207억 원, 자본금은 409억 원으로 이미 자본잠식 상태다. 당기순손실은 149억 원을 기록했는데 올해 적자 폭은 더 커질 전망이다.
운항 수가 줄어든 상태에서 항공기 리스비와 인건비 등 고정비가 나가는 건 신규 항공사도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플라이강원은 보잉 737-800 항공기 세 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올해 리스비로만 76억 원가량 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AOC를 발급받지 않은 에어로케이도 A320 항공기를 도입한 상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의 사업 시작 시점은 늦춰지고 있다.
특히 이들 항공사는 사업 초기 실전경험을 통해 시장에 안착할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앞서의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항공기를 띄운 후 1~2년 정도 ‘로드 팩터(항공기가 적재 가능한 여객 수 대비 실제로 수송한 여객 수 비율)’가 40%에서 많게는 70%까지 올라가줘야 한다. 이를 토대로 수요를 예측해 계획을 세워 시장에 반영해야 한다”며 “그런데 지금은 10~20% 되는 수준에서 이미 자본잠식이 되는 상황이라 더욱 답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규 항공사들은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에어로케이 관계자는 “운항 증명 중이어서 기존 항공사와는 상황이 조금 다를 듯하다. 첫 취항이라고 해봤자 이르면 5월이고, 국제선 운항을 위해 항공기 두 대가 더 들어오는 건 7~8월이나 돼야 한다”며 “코로나 사태가 이른 시일 내에 잠잠해진다면 애초 계획대로 진행하겠지만 지금은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스케줄을 미루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라고 답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경쟁력이 뒤처지는 몇몇 항공사는 생사의 갈림길에 설 수 있다고 내다본다. 정수진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원은 “현재 항공시장은 공급 과잉과 수요 급감으로 이미 생존 경쟁이 시작된 상황이다. 대부분 코로나19 이전부터 지속적인 영업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며 “단기적으로 정부 지원이 시장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코로나19가 여객 수요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면 진정한 구조조정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특히 LCC는 가격 경쟁을 펼쳐야 하는데 공급 과잉으로 이미 항공권 가격은 내려갈 대로 내려간 수준이라 가격 면에서 우위를 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신규 LCC는 인기 노선의 좋은 슬롯(항공사가 특정 공항에 특정한 날짜, 시각에 출발과 도착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을 따내기도 쉽지 않다. 신규 취항지를 늘리기 위해 항공기와 인력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서비스 품질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또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어 전망은 긍정적이지 않다.
따라서 ‘고용 안정화’ 차원에서 신규 LCC를 비롯한 항공업계에 정부 지원을 늘리는 동시에 구조조정을 피하려면 ‘아이디어’의 발굴이 절실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앞서의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5년 거치 10년 상환 식으로 정부가 무담보 대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주기료나 착륙료를 면제해주고, 적자를 보는 공항공사에는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도 “코로나 사태 이후 구조조정 논의가 활발해질 듯하다. 항공사들은 불용자산을 매각하는 등 군살 빼기에 돌입하고 특화된 서비스를 통해 충성고객 확보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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