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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난리 난 유럽, '홈 피크닉' 하며 맞는 봄

한국보다 엄격한 '접촉 금지령' 발동…발코니 꾸미고 여행사진 전시하며 기분 내

2020.04.03(Fri) 16:55:35

[비즈한국] 3월 22일 일요일 저녁, 독일 전역에 ‘접촉 금지령’이 선포됐다. 발표 하루 전, 베를린 내 유력 지역신문에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봉쇄정책 법안이 베를린 상원에 제출됐으며 22일 결정될 것이라는 속보가 떴다. 독일 내에서도 확진자가 많은 바이에른 주가 취한 조치처럼 전국에 이동 통제 혹은 봉쇄령이 내려질 줄 알았는데 실제로 취해진 조치는 보다 완화된 접촉금지.

 

출근 등 필수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인 간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가족 및 동거인을 제외하고 외부인은 한 명까지만 만날 수 있다. 파티나 모임, 예배 등 모든 집회도 실내외를 막론하고 금지됐다. 접촉 금지령이 내려지기 전부터 마트, 약국 등 생필품점을 제외하고 모든 일반 영업장에 대한 영업이 금지(식당 등의 경우 배달 및 테이크아웃 가능)돼 있었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번 더 강하게 거론됐다. 

 

어린이 놀이시설이 폐쇄된 텅 빈 공원. 여느 봄 같으면 나들이 인파로 넘쳐야 할 이곳이 한겨울보다 썰렁하다. 사진=박진영 제공


마트 등 영업을 하는 업장에서는 소독을 엄수하고 의무적으로 소독제를 제공해야 한다. 산책이나 운동 등 외부 활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이때도 1.5~2미터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접촉 금지령은 2주간 권고하지만 주마다 기간이 달리 적용되며 실제로는 이보다 더 길게 이어질 거라 보는 시각이 많다. 

 

어길 시 벌금 또는 형사적 조치가 취해지는데 공공장소에서 최소 거리 두기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50~500유로, 신분증이 없을 경우 25~75유로, 이유 없이 외출할 경우 최대 500유로, 영업정지인 사업체를 운영할 경우 최대 1만 유로, 회사 내 위생 규정을 어길 시 최대 2500유로 등이 큰 틀이다. 

 

이전부터 자발적 격리 혹은 접촉 금지 상태였던 우리 가족에겐 생활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내용이 아니었지만, 막상 접촉 금지령이 내려지니 이런저런 변화들은 있다. 거리에 사람이 더 없어졌고 소독은커녕 위생에 관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던 마트에서도 카트를 소독하고, 마트 내 인원 제한, 거리 두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 

 

독일의 한 라디오채널 페이스북에 게시된 재치 넘치는 포스팅. 우리는 가끔 햇살 받으러 ‘코스타델 발코니아’로 여행을 떠난다. 사진=박진영 제공


마스크를 쓰거나 위생 장갑을 낀 사람들도 전보다 늘었다. 진작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였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들다가도, 활기로 넘쳐야 할 도시 곳곳에 표정 없는 사람들 몇몇이 애써 일상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노라면 안타깝기만 하다. 긴 겨울이 끝나 봄이 시작되고 있는데.  

 

이번 봄은 나에게 특별했다. 베를린에서 3년 살이를 마치고 올 8월 귀임을 앞둔 터라, 베를린에서 보내는 마지막 봄이니까. 정착하기 쉽지 않았던 긴 과정처럼 떠나기 위한 준비도 길 수밖에 없어 늦어도 석 달 전부터는 돌아갈 준비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해서 이 봄이, 정상적이라면 온갖 꽃과 식물로 넘쳐나는 찬란할 4월의 봄이 나에게는 베를린 생활을 누리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었다. 

 

유럽이 이 난리가 나기 전 2월까지만 해도 4월 부활절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행복한 고민 중이었는데, 3월 들어 모든 일상이 멈춰버렸다. 어떤 날은 금방 좋아질 거야, 의도적으로 희망을 갖다가 어떤 날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에 절망감도 든다. 나의 베를린 생활은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아이는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한 채 돌아가게 되는 것인가, 우울감이 몰려왔다. 

 

접촉 금지령이 발표된 이후 경찰차들의 순찰이 잦아졌다. 사진=박진영 제공


안 되겠다 싶었다. 재택근무 중인 남편까지 세 식구가 하루 종일 얼굴 맞대고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에서,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이 삶을 살아내려면 주어진 조건 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첫째는 무조건 긍정적 사고하기. 가족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일찌감치 부활절 방학을 위해 여행을 예약한 이들이 취소하느라 혹은 취소되지 않아 발을 구르는 것을 보면서 ‘그래, 그나마 여행비 안 날린 게 어디야’라며 긍정적 마인드를 발휘하는 중이다.

 

둘째, 집 안을 바꿀 여지를 찾아내고 시도했다. 다른 건물에 둘러싸여 중정을 낀 아파트에 사느라 조용한 대신 갇힌 느낌이 없지 않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넓은 공원이 보이는 안방 공간을 바꾸었다. 창문을 통해 초록의 전망을 보며 차 한잔 마실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 용도의 스툴을 가져다 놓았다. 가끔 그곳에 앉아 넓은 잔디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힐링이 되는지. 

 

베를린의 한 마트. 입장하려고 줄을 설 때나 계산대 앞에서 1.5미터 거리를 유지하라는 안내가 여기저기 배치돼 있다. 사진=박진영 제공


셋째, 행복한 기억을 여기저기 배치했다. 유럽에 산다는 이유로, 감사하게도 남들보다 쉽게 다른 유럽 국가들을 여행할 수 있었다. 돌아갈 때가 되니 못 가본 곳을 생각하느라 아쉬움이 컸는데, 생각해보면 그 또한 너무나 큰 축복의 시간이었던 것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액자도 없는 상태지만 잘 보이는 벽에 붙여두었다. 집 안을 오가며 사진을 볼 때마다 행복하게 웃는 가족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된다. 

 

넷째,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이벤트도 고민했다. 유럽 가정마다 있는 발코니를 최대한 활용해, 외식하듯 카페에 온 듯 밥을 먹고 차를 마시자 답답했던 마음은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 때로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가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해주고 직접 만든 자작곡도 불러주는데 그럴 때면 ‘그래, 여기가 콘서트장이지, 뭐’라고 생각하게 된다.

 

고립 생활이 길어질수록 또 어떤 ‘행복을 위한 발상’이 생겨날지 모르겠다. 며칠 전 학부모 단체 페이스북에 공유된 ‘온 집 안을 여행지로 삼는’ 포스팅을 보면서 ‘모두가 똑같구나’ 싶었다. 상황을 바꿀 수 없지만, 우리는 이 안에서 행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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