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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재벌] 성북동​ 능선 위 이웅열 코오롱 회장 자택 '바람' 잦을밖에

70년대 정치인, 80년대 재벌 모여 부촌 이룬 성북동…서쪽은 명예운, 동쪽은 재운

2020.04.03(Fri) 12:15:50

[비즈한국] 성북동은 조선시대 양잠의 신(蠶神) 서릉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사적 제83호 선잠단이 있던 곳이다. 양잠은 삶의 필수조건인 의식주의 일부로 농업과 함께 매우 중요한 산업이었다. 이에 조선 500년간 사람에게 양잠을 처음 가르친 서릉씨를 ‘선잠’으로 받들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며 한 해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했다. 

 

이와 관련하여 풍수지리에서는 완사명월형(浣沙明月形: 달빛 아래 펼쳐져 환하게 빛나는 비단의 형상)의 명당이라고 한다. 비단옷은 고관대작이나 부자가 아니면 입을 수 없던 귀한 물건으로 완사명월형의 명당에서는 귀한 인물이 난다고 판단하는데, 성북동이 본래부터 부촌은 아니었다. 조선 후기에는 의친왕의 별장 등이 있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새소리가 들리는 한가한 산촌이었다. 일제시대 후기에는 성벽에 기대어 한용운, 김용준, 이태준 등의 예술가들이 살기는 했으나 6·25를 거치면서 지금의 성북초등학교 중심으로 판잣집에 가까운 집들이 들어선 한촌이었다. 

 

성북동 전경. 앞으로 낙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조선시대 양잠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선잠단이 있던 성북동은 풍수지리에서 ‘완사명월형’ 명당이나, 본래부터 부촌은 아니었다.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최고 부촌으로 변모했다. 사진=신석우 제공

 

그러한 성북동이 대한민국 최고 부촌으로 변모하게 된 계기는 1970년대 차지철 경호실장, 양택식 서울시장, 이후락·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등 정권 실세들이 청와대와 가까운 이곳에 많이 모여 살면서부터다. 이후 1980년대에 삼청터널이 생기고 대사관저가 들어서면서 치안이 확보되자 구자경 LG그룹 회장과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성북동으로 모여들면서 기업 총수들과 정계의 권력자들이 모여 사는 부촌으로 변모되었다.

 

성북동은 서울의 조산(祖山)인 삼각산의 지맥이 보현봉을 지나 정릉고개에서 결인 후 주산인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구준봉을 주산 삼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양택 명당마을이다. 평창동이 서울의 서쪽에 있는 부촌이라면, 성북동은 동쪽에 위치한 부촌이다.

 

성북동은 주산인 구준봉을 중심으로, 오른편 성벽의 숙정문, 말바위, 응봉능선으로 이어진 백호가 혜화문을 지나 안산(案山)인 낙산을 만든 백호작국(白虎作局)의 터를 이루고, 구진봉에서 왼편으로 북악스카이웨이 길을 따라 정릉으로 나간 청룡은 성북공원을 지나 한성대입구 교차로에서 백호와 교쇄(交鎖)하면서 명당을 보호한다.

 

성북동은 여러 골짜기의 물이 성북초등학교 앞에서 하나로 모여 흘러나가는 전착후관(前窄後寬: 앞은 좁고 뒤는 넓어야 한다)의 지형지세로 성북천이 삼선동과 안암동을 굽어 흘러 용두동에서 청계천과 합류하는 거수국(去水局)을 이루고 있으나 지현굴곡(之玄屈曲)하여 나가므로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는 터이다. 이러한 기본 조건이 잘 갖추어진 성북동은 풍수적인 복지(福地)지만, 거수국인 관계로 재운(財運)보다는 관운(官運)과 명예운의 발복이 더 좋은 곳이다.

 

성북동은 정법사에서 성북초등학교로 이어진 능선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크게 기운이 나누어진다. 

 

서쪽인 성북동 330번지 대사관로 일대는 남향(南向)으로 멀리 남한산과 용문산까지 품에 들어오는 대국을 이루어 권력자나 교수, 학자 등 명예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자리가 된다. 이곳은 존경받는 사업가가 살아가는 터로 돈을 지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글 같은 현장에서 사업을 이루어 나가는 사업가가 살기에 적합한 터는 아니다. 

 

동쪽 편인 성락원이 있는 선잠로 일대는 서향(西向)으로 터를 이루어 남산과 관악산이 조안산(朝案山, 전면 조망)이 되고 서출동류(西出東流)하는 계곡물이 환포하는 지세를 이루고 있어 대사관로 일대의 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재운이 유리한 곳으로 재벌 회장들이 살기에 적당하다. 이곳에 사는 재벌 가운데 코오롱 이웅열 회장 자택의 풍수를 알아본다.

 

이웅열 회장 자택은 성북동의 동쪽 편인 선잠로에 위치하는데, 집은 주산인 구준봉의 청룡방(靑龍方, 왼쪽 능선)에서 생왕한 지맥이 갈라져 나와 기세 있게 기복하며 강한 기운을 가진 화강암의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 능선상에 남향으로 지어져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산 능선 위에 양택을 짓고 사는 것은 일반적으로 꺼린다. 사방이 드러난 관계로 전망이 좋을지는 몰라도 바람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성북동 단독주택은 청룡에 비해 백호가 너무 커 균형을 잃었다. 백호가 너무 크면 외압으로 인하여 뜻을 마음껏 펼치기 어렵고 바람에 흔들리기 쉽다. 사진=박정훈 기자

 

이 주택은 국세를 넓게 본다면 장풍득수(藏風得水: 바람은 감추고 물을 얻는다)가 갖추어진 듯하지만, 청룡에 비해 백호가 너무 커 균형을 잃었다. 백호가 너무 크면 외압으로 인하여 뜻을 마음껏 펼치기 어렵고 바람에 흔들리기 쉽다. 수십 년간 대한민국 재벌로 성장하면서 어려움을 겪지 않은 기업이 없겠지만 이 집을 보면 코오롱그룹이 그간 겪었을 노고가 짐작된다. 이 회장의 자택이 능선상에 있으면서도 바람을 견디며 버틸 수 있었던 풍수적 요인은 왕산왕향(旺山旺向)한 시운(時運)의 힘과 생왕한 내룡의 기운, 그리고 담장을 두른 성북동 지형지세 덕분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시운이 변하고 성북동 한옥마을단지가 개발되면서 이 회장 자택으로 이어지는 몸체에 큰 상처를 입어 지기(地氣)가 힘을 잃었다. 지금도 뒤로 이어지는 내룡(來龍)에는 공사가 계속 이어지며 상처가 깊어지고 용맥의 기운이 약해지고 있어 갈수록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곳은 진출입로를 변경하고 환천심(換天心: 집을 수리하거나 리모델링하여 분위기를 바꾸는 것)하여 영빈관 등 공적인 장소로 사용하고, 주거용 주택은 좀 더 편안한 곳으로 옮기는 게 풍수적으로 더 좋겠다.​

신석우 풍수지리학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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