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증상은 어떠세요? 드시는 약이 있다고요? 그러면 처방전을 화면에 좀 보여주시겠어요? 또 궁금한 점 있으신가요?” 지난 1일 오전, 인천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서울에 있는 기자를 문진하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서다. 기자는 평소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는 편이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기 꺼려졌다. 또 특정 부위가 아프다기보다는 여기저기 말썽인 것 같아 딱 하나의 병원을 택하기도 애매한 상황. 불현듯 ‘원격진료’가 떠올랐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월 24일부터 원격진료가 한시적 허용됐다. 정부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화로 상담과 처방을 받을 수 있게 한 새로운 방역 대책을 발표했다. 환자의 의료기관 유입과 병원 내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다. 팩스와 이메일을 활용해 처방전도 받을 수 있다. 현행 법상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에게 의료 과정에 대해 자문하는 것은 허용되나, 환자의 원격의료는 불법이다. 과연 한시적으로 허용된 원격진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더 나아가 향후 우리나라 원격의료 시장도 활짝 열릴 수 있을까.
#진료 시간 넉넉하지만, 환자가 계속 증상 설명해야
정부 대책 이후 몇 개의 스타트업에서는 원격진료 서비스 앱을 내놓았다. 기자가 직접 이용해보니 원격진료는 생각보다 편했다. 우선 ‘메디히어’ 앱을 접속하자 여러 명의 의사가 기자를 반겨줬다. 프로필을 통해 의사의 얼굴과 근무 병원은 물론 경력과 학력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심하게 아픈 부위는 없었지만 왠지 소화가 잘 안 되는 듯해 내과 전문의를 택했다. 평소 병원을 예약하는 것처럼 의사와 언제 화상통화를 할지 시간을 미리 정할 수 있다. 오전 9시경 앱을 접속한 기자는 11시 45분에 진료를 받기로 했다.
진료비로는 2만 원을 선지급했다. 급여 항목이면 급여 처리가 가능하지만, 기자가 화상진료를 신청한 의사는 응급의학과라 별도의 보험처리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지불한 진료비는 중개·이체 수수료 차감 없이 그대로 의료기관 계좌로 일괄 이체된다. 다만 현재 메디히어에서는 의사 대부분이 무료로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10시 45분부터 ‘진료 시간이 1시간 남았다’는 알림이 오기 시작했다. 그 후 진료 30분 전, 15분 전, 휴대전화가 주기적으로 울렸다. 원격진료실 입장은 진료 시작 15분 전쯤부터 가능했다. 의사와의 화상 진료는 처음이라 조금 망설이다 11시 43분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러자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가 떴고, 2분 정도 지나자 의사도 입장했다. 27km, 차로 꼬박 50분을 달려가야 하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의사와 기자가 만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의사는 “원격진료는 처음이냐”며 “나도 지금까지 7명 정도밖에 안 해봤다”고 말을 건넸다. 이내 의사는 기자가 사전에 작성한 기록을 보며 “소화가 잘 안 된다고 적혀 있는데 어떤 증상이 있냐”고 물었다. 기자는 “속이 좀 쓰리다”며 지난주 두어 번 토했다고 대답했다. “아침에 약을 먹어서 속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하다”고 하자, 의사는 “무슨 약이냐”며 약 봉투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나 약 봉투에는 약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고, 작은 휴대폰 카메라로 약을 보여주기도 쉽지 않았다. 1분가량 난항을 겪은 뒤 기자가 “약 이름은 모르겠지만 항생제”라고 말하자 그제야 진료가 진전됐다. 이후 사전 기록지를 토대로 평소 식습관은 어떤지, 열은 재봤는지, 다른 증상이 있는지 등 6분 정도 더 문답이 오간 후 진료는 마무리됐다.
대면 진료보다 환자가 본인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 점은 불편했다. 정말 아픈 사람은 진료를 받다 짜증이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반면 진료 시간이 충분해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측면도 있었다. 기자는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처방전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약이 필요한 사람은 미리 지정한 약국으로 처방전이 발송돼 그곳에서 약을 받을 수 있다. 이때 의사는 필요에 따라 주민등록번호 등을 요구한다.
다음 날 오후, 또다른 원격진료 앱을 이용해보기 위해 ‘굿닥’을 켰다. ‘병원·약국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던 굿닥은 지난 2월 27일부터 원격진료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평소 어디가 아팠나 곰곰이 생각하다 비염과 인후통 증상을 달고 살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원격진료 서비스를 하고 있는 서울 강북구의 이비인후과 문을 두드렸다. 앱과 연결된 병원의 SNS 오픈채팅방에 문의를 했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로 원격진료가 손쉽게 이뤄졌다.
원격진료가 두 번째인 데다 이번에는 전화로 진료를 했기에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이번에도 기자가 말을 더 많이 해야 하기는 했다. 다만 메디히어와는 방식이 달랐다. 굿닥은 환자가 오픈채팅방을 통해 예약을 접수하면 의료진이 건강보험을 먼저 조회하고, 진료가 진행된 후 환자가 건강보험이 적용된 초진비용을 내는 식으로 이뤄진다. 기자는 진료비로 4800원을 냈다. 5일치 약도 처방받았는데, 의사는 오픈채팅방을 통해 처방전을 보내줬다. 이 처방전을 갖고 인근 약국에 가면 약을 받을 수 있다. 한의원은 상담 후 택배로 한약을 보내준다고 한다.
#국내 업계, 원격의료 시장 형성에는 회의적
코로나 사태로 우리나라에서도 원격진료, 더 나아가서는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활성화되면서 이후 국내 원격의료 시장이 열릴지도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크게 기대감이 없는 분위기였다. 원격의료는 유독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심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공론화됐지만 20년째 큰 진전이 없다. 18~20대 국회에서 추진된 원격의료 관련 입법안은 상임위원회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
김기환 메디히어 대표는 “3월 10일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사용자(앱 가입자)는 3000명, 원격 진료 진행 건수는 1400건 정도 된다. 확진자 수와 상관없이 원격진료 이용자는 계속 늘고 있다. 특히 아기가 있는 부모의 경우 병원에 가는 걸 꺼린다. 진료하는 의사도 30명 정도로 늘릴 예정”이라며 “다만 이번 한시적 허용이 끝나고 나면 서비스를 계속할 수 없다.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용자가 100만 명 정도면 원격진료의 실효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섣불리 말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원래 미국 시장을 노린 만큼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도 해외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원격의료가 허용되는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의료 기업들 사이에서 전례 없는 ‘의사 고용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원격의료 신생기업 ‘닥터온디맨드’는 수백 명의 의사를 고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스타트업 ‘98포인트6’의 로비 케이프 대표도 “몇 주 안에 100명의 의사를 모집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비스 부하는 평소보다 4배 증가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환자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도 원격의료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지난 3월 2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의료진과 환자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원격의료 지침’을 발표하며, 원격의료 진입장벽을 더욱 낮추기로 했다. 미국 환자들은 전자 체온계와 심전도계 등을 이용해 집에서 체온과 호흡수를 측정한 후 의료진의 모니터링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지침에는 특정 원격 모니터링 장치에 대한 사전 규제를 당분간 완화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원격의료가 대기업 배불리기로 이어지고, 대면 진료보다 의료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예상도 설득력이 충분하다. 그러나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국내 의료 환경에 적합한 원격의료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반대의견도 적잖다. 한국소비자원은 2018년 발간한 정책연구 보고서에서 “이해당사자들 입장에서만 원격의료 논의가 진전되다 보니 정작 정책 수요자이자 의료 수혜자인 소비자 측면에서의 원격 의료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는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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