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래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거친 음악, 검정 위주의 남성적인 색감, 뭔가 마초적인 느낌이 떠오르지요. 최근 많은 래퍼들이 이런 틀을 깨고 있습니다. 사랑 이야기를 하는 등 장르의 구분을 깨기 시작한거지요.
그 중에서도 토비 로우(Tobi Lou)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남다른 래퍼입니다. 알앤비처럼 달콤한 힙합을 합니다. 분홍, 보라 등 ‘힙합스럽지 않은’ 색감을 과감하게 사용합니다. 성인 래퍼가 아동용 만화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우울한 정서를 드러내기도 하지요. 대체 그는 어떤 음악가일까요?
토비 로우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시카고로 이주했습니다. 마이클 잭슨, 프린스, 노토리어스 비아지 등 정통 흑인 음악을 들으며 자랐지요. 다만 처음부터 음악을 하려 한 건 아니었습니다. 음악은 ‘쿨한 사람’을 위한 거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대신 농구 선수가 되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토비 로우의 ‘핫 텁 드림 머신(tobi lou - hot tub DREAM Machine)’. 독특한 색감과 정서가 잘 드러난 신곡이다.
그가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한 계기는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였습니다. 우울함을 과감하게 드러낸 그의 음악에 큰 감명을 얻은 거지요. ‘나 같은 사람도 음악을 할 수 있는 거구나’라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카니예 웨스트와 토비 로우는 모두 시카고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농구 커리어가 실패로 끝나자 학교로 돌아가기 싫던 토비 로우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음악을 시작합니다. 음반사들은 처음부터 토비 로우의 재능을 알아봅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제2의 플로 라이다(Flo Rida)가 되게 해주겠다”며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스러운 파티 음악을 만들어내라 지시했습니다.
이런 음악은 그와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토비 로우는 레코드사와 계약을 취소합니다. 어차피 자신과 맞지 않은 음악을 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실패한다면 나답게 실패하겠다’는 과감한 시도였던 겁니다.
이후 토비 로우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같은 중서부 출신 래퍼 스미노(Smino)와 함께 싱글 앨범을 내는가 하면, 전설적인 레코드 프로듀서 노 아이디(No ID)의 프로듀싱을 받기도 했지요. 지금도 다방면에서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토비 로우의 ‘게임 오바(Game Ova)’.
그가 대형 레코드사와 계약을 마다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나다움’은 무엇일까요? 우선 음악을 들 수 있겠습니다. 토비 로우의 음악은 매우 감성적이고 우울합니다. 멜로디가 많아 달콤하기도 합니다. 얼핏 들으면 알앤비나 시티 팝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실제로 본인의 음악을 알앤비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토비 로우 또한 말할 정도입니다.
힙합은 이미 장르 구분이 어려워졌습니다. 랩도 노래와 마찬가지로 래퍼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해진 시대인 거지요. 토비 로우는 형식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장르를 활용합니다.
음악 못지않게 그의 비주얼 또한 특별합니다. 패션부터 범상치 않죠. 보라색, 핑크색 등 힙합이 ‘계집애 같다’며 기피했던 색감을 과감하게 사용합니다. 래퍼가 이런 색감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인상적인 뮤직비디오가 됐지요.
만화라는 형식 또한 토비 로우에게 매운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그의 뮤직비디오 중 상당수가 만화 형식입니다. 현실과 애니메이션를 교차하는 방법까지 활용하곤 하지요. 그의 앨범 커버 다수 또한 일본식 애니메이션 ‘아니메’ 느낌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워낙 만화 팬이고 만화가 자신의 일부라 느껴 이런 느낌을 적극 활용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토비 로우의 ‘버프 베이비(Buff Baby)’. 토비 로우 특유의 아니메 스타일 비주얼이 잘 드러난 곡이다.
이런 뮤직비디오는 아시아 문화, 특히 케이팝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력을 느끼게 합니다. 그가 구사하는 만화는 정통 미국 만화라기보다는 일본 아니메에 가깝습니다. 화려한 색감의 패션과 뮤직비디오는 팝보다는 케이팝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그는 SNS를 통해 케이팝 식 응원봉을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트와이스가 좋다’는 가사를 자기의 곡에 넣기도 했지요.
인터넷을 통해 온 세계가 하나가 되었다는 말조차 식상해진 세상입니다. 이제는 문화가 화학적으로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카고에서 태어난 래퍼가 자신의 동향의 래퍼에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문화를 적극 받아들여 독특한 색감과 정서를 담은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만큼이나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세상이 왔는지도 모릅니다. 시카고와 아시아의 색감과 정서를 뒤섞은 감성 래퍼, 토비 로우였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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