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머나먼 우주의 한 항성계, 여기 별 여섯 개가 함께 모여 서로의 곁을 돌고 있는 6중성계가 있다. 이곳 행성에서는 하늘 위에 태양이 무려 여섯 개나 있다. 그래서 매 순간 하늘 위에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태양이 비추고 있다. 이들에게 밤과 어둠이란 것은 그저 상상 속의 유니콘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2000년마다 한 번씩, 이 행성의 하늘 위에 태양이 딱 하나만 떠 있을 때 그 태양마저 달 뒤로 숨는 개기일식이 벌어진다. 드물게 찾아오는 바로 이 역사적인 개기일식이 진행되는 동안 행성의 사람들은 드디어 상상만 해오던 깜깜한 밤하늘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충격적인 하늘이 펼쳐졌다.
사실 이들은 별들이 수십만 개 넘게 바글바글 모여 있는 구상성단의 한가운데 살고 있었다. 하늘 위로 태양이 모두 사라진 그 순간 그간 여섯 개의 밝은 태양 뒤로 감춰 있던 수십만 개의 또 다른 별빛이 하늘을 가득 채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간 온 우주에는 고작 여섯 개의 별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예상 밖의 낯선 밤하늘을 마주하며 적지 않은 혼란을 마주하게 된다.
별들이 높은 밀도로 한데 모여 있는 구상성단은 외계 지적 문명과 생명체가 탄생하기에 유리한 환경일까, 아니면 불리한 환경일까? 천문학자들은 어떤 관점에서 그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SF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나이트폴’의 줄거리다(국내에는 ‘전설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다). 당시 아시모프는 별이 잔뜩 모여 있는 구상성단 속에 어떤 지적 문명이 존재한다면 과연 그 세상의 사람들은 별들로 빼곡한 그들의 밤하늘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상상했다.
1974년 거대한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을 통해 외계로 인류의 장황한 자기소개서를 보내는 시도를 제안했던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 역시 아시모프처럼 구상성단 속에 살고 있는 외계 문명을 상상했다. 드레이크는 단순히 지구에서 보낸 메시지가 다른 존재에게 더 높은 확률로 포착되기 위해서는 별이 많이 모여 있는 구상성단으로 메시지를 보내야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아레시보 메시지도 거대한 고밀도의 구상성단 M13으로 날아갔다.[1]
하지만 이후 많은 천문학자들은 구상성단으로 메시지를 보낸 시도 자체가 헛수고라고 비판했다. 드레이크의 순진한 기대와 달리 정작 별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구상성단에서는 지구의 메시지를 해독할 생명체나 지적 문명이 탄생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구상성단은 별은 물론 많지만 그 별 곁에 지구처럼 잘 살고 있는 생명체가 없을 것이란 이야기다. 최근까지도 이것이 주류 천문학자들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 일부 천문학자들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구상성단을 바라보며, 오히려 구상성단이어야 지구보다 훨씬 더 고도로 발전된 외계 지적 문명이 발전하기에 유리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2]
#생명 탄생의 조건, 별의 외로움
사실 태양은 독특한 별이다. 별들은 대부분 태양과 달리 주변의 다른 별들과 함께 모여 크고 작은 성단을 이루어 살아간다. 대부분의 별들은 거대한 분자 구름이 수축하면서 여러 개의 별들과 함께 형성된다. 성단은 비슷한 시기에 함께 태어난 동갑내기 연년생 별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별들의 기숙사와 같은 셈이다.
하지만 태양은 성단의 일원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만 해도 빛의 속도로 4년 이상을 날아가야 하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태양은 상대적으로 별의 밀도가 낮은, 우리 은하 속 황량한 지역에 처박혀 있다. 그래서 일부 천문학자들은 지금껏 어떤 외계인 손님도 지구로 찾아오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외계인들이 샅샅이 우리 은하를 뒤져보지 않는 한 지구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태양이 외로운 별인 덕분에 우리가 탄생하고 진화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지구에서 생존하려면 태양으로부터 꾸준히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태양 빛은 너무 과해도 너무 부족해서도 안 된다. 지구가 생명의 보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태양으로부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인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에 있기 때문이다. 또 골디락스 존 안에 있더라도 꾸준히 비슷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태양 주변을 도는 지구의 공전 궤도는 거의 완벽한 원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주 조금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린다. 그래서 1년 동안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어질 때와 가까워질 때, 지구의 연교차가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심률(타원이 찌그러진 정도)이 지금보다 1퍼센트만 늘어나도, 지구의 연교차는 현 생명체들이 버티기 어려운 수준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 매년 지금보다 더 극단적인 여름과 겨울을 오고가도 버틸 수 있도록 생명체가 중무장을 살아남을 수 있다.
유럽 남방천문대의 3.6미터 크기 망원경의 HARPS 관측 데이터로 확인한 글리제 667c 행성의 궤도 모습. 각 색깔은 별 주변에 너무 가깝거나 멀어서 너무 덥거나 추운 영역을 나타낸다. 별 주변에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녹색의 골디락스 존에는 세 개의 행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영상=ESO, R
1년 동안 일정한 수준으로 덥거나 춥다면 하나의 환경에만 잘 적응하면 생명체가 살 수 있다. 하지만 추위와 더위가 반복되는 환경이라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서 생태계는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여름 또는 겨울만 있는 지역에서는 1년 내내 여름옷이나 겨울옷만 있으면 되지만, 우리나라처럼 계절 변화가 뚜렷한 곳에서는 계절마다 옷을 사 입느라 지갑이 더 가벼워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만약 태양이 높은 밀도로 별이 바글바글한 구상성단 한복판에 있거나, 바로 곁에 두 개 이상의 동반성을 둔 다중성계의 일원이었다면,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지금처럼 유지되기 어려웠다. 여러 개의 별들이 가까이서 힘겨루기를 반복하기에 태양 주변의 행성들 역시 안정적인 궤도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역학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의 행성에서만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다면, 이웃 별을 두지 않은 외로운 별 곁에서만 생명이 탄생하는 역설적인 운명인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을 거느린 죄
별들 여러 개가 오밀조밀 모여 중력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이 주변의 행성들이 쫓겨나 우주 공간을 떠도는 떠돌이 행성(Rogue planet)이 되기도 한다. 떠돌이 행성이야말로 그 어떤 제약에서도 자유로운 진정한 우주의 유목민, 코스믹 노마드(cosmic nomad)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처럼 별 주변을 맴돌지 않는 떠돌이 행성에서는 행성에 따뜻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별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생명이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영화 ‘스타워즈’ 속 주인공의 행성 ‘타투인(Tatooine)’처럼 두 개의 태양이 함께 노을을 그리는 쌍성계, 또는 다중성계에서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후보 행성들도 드물게나마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이런 복잡한 역학적 환경에 놓인 별들 주변에서는 행성이 오랫동안 안정적인 기후와 환경을 유지하기 어렵다. 행성에서 복잡한 생명체가 탄생하고 진화하는 데 필요한 충분히 긴(수십억 년 이상의) 시간적 여유를 얻기 어렵다. 실제로 지금까지 알려진 4000개가 넘는 외계행성들 중에서도 구상성단에서 발견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테스(TESS) 우주 망원경은 지구에서 약 1300광년 거리에 떨어진 별 TOI 1338 쌍성계에서 두 별 곁을 맴돌고 있는 행성을 하나 발견했다. 이 쌍성계는 태양보다 3배 더 가벼운 별과 10배 더 가벼운 두 개의 별이 서로의 곁을 15일 주기로 맴돌았는데, 천문학자들은 더 밝은 별의 별빛이 약 93~95일 사이 주기로 밝기가 어두워지는 트랜짓 현상을 목격했다. 이는 이 쌍성계 곁에 천왕성과 토성 중간쯤 되는 크기의 큰 행성이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별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구상성단에는 별들 주변에 외계행성이 오랫동안 붙잡혀 있기가 어려워 정말 외계행성 수가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계행성이 많아도 별의 밀도가 높은 구상성단에서는 개개 별들의 미세한 밝기 변화를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외계행성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 외계 생명체를 연구하는 우주생물학자들에게 구상성단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생명체가 탄생하기에는 꽤 버거운 환경으로 여겼기 때문이다.[3][4][5]
#구상성단의 반전 매력, 우주여행에 더 유리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 일부 천문학자들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구상성단이 외계 지적 문명이 탄생하고 발전하는 데 더 적합한 환경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오히려 별들이 높은 밀도로 바글바글 모여 있는 덕분에 적은 노력으로도 인접한 이웃 항성계로 오고 가면서 더 발전한 기술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지구의 경우 주변에 가까운 별들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이웃 별로 여행하는 것은 여전히 꿈도 꿀 수 없다. 만약 별들의 밀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서, 빛의 속도로 수 개월(수 광월)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이웃 별들이 있다면, 인류도 진즉 다른 항성계로 터전을 확장해 더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주변 별들이 얼마나 가까이,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지에 따라서 얼마나 높은 수준의 우주 문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가 영향을 받는다. 특히 별들이 서로 얼마나 가깝고, 멀게 모여 있는지 그 분포 밀도는 구상성단의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나가면서 확연하게 달라진다.
구상성단의 중심부로 갈수록 별들의 분포 밀도는 더 높아진다. 그래서 더 적은 연료로 쉽게 이웃 별을 방문할 수 있다. 하지만 별들의 밀도가 너무 높으면 별 주변 행성들이 안정적인 궤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반대로 구상성단 외곽으로 나가면 인접한 별들끼리 중력 힘겨루기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별 주변에 행성들이 안정적으로 오래 맴돌 수는 있지만, 가까운 이웃 별들이 거의 없어서 다른 항성계로 여행을 다니는 수준 높은 문명이 발전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 될 수 있다.
즉 주변 별들의 밀도에 따라 별 곁에 안정적인 기후를 갖춘 행성이 존재할 확률과 주변 다른 별들로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기술 문명이 발전할 가능성이 서로 달라지면서 외계 문명의 존재 가능성을 조율한다. 이처럼 주변 별들의 밀도에 따라서 지구와 비슷한 수준 이상의 지적 문명이 얼마나 존재할지 그 후보 별들을 추정해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주변 인접한 별들의 중력 방해로 행성이 궤도를 벗어나 떠돌이가 되기까지 적어도 현재 지구의 나이(약 45억 년)보다는 더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어야 그 행성에 지구 이상의 문명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그래서 별들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 지구의 나이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행성이 궤도를 이탈하는 구상성단 중심부의 별들은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동시에 주변 이웃 별들이 너무 멀지 않은, 빛의 속도로 1개월 정도면 갈 수 있는 약 1만 AU(1AU는 약 1억 5000만 km) 이내에 인접해야 항성 간 우주 여행을 자유롭게 하는 ‘스타트랙’ 같은 기술 문명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그래서 별들 사이의 평균적인 거리가 이 이상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구상성단 최외곽 지역 별들도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구상성단의 너무 중심부도 아니고 너무 외곽도 아닌, 별들이 적당한 밀도로 모여 있어서 오랜 시간 별 주변 궤도도 안정적으로 맴돌면서 동시에 주변 별들로 여행을 즐기는 데 어렵지 않은 적당한 범위를 정의했다. 구상성단 내에서 외계 문명이 발전하기에 유리한, 일종의 구상성단 버전의 골디락스 존인 ‘스위트 스폿(sweet spot)’을 정의했다. 구상성단마다 스위트 스폿 안에 얼마나 많은 별이 들어오는지를 보면 기대할 수 있는 외계 문명의 수를 추정해볼 수 있다.[6]
이 스위트 스폿은 평균적으로 각 구상성단의 유효 반경(effective radius)의 절반에서 두 배 정도 범위다. 천문학자들은 특히 이 스위스 스폿 안에 들어오는 별들 중에서 아주 짧은 수 밀리초의 주기로 강한 전파 신호를 방출하고 있는 밀리초 펄사(msp, millisecond pulsar)에 주목했다. 물론 현재 밀리초 펄사들은 아주 짧은 주기로 자전하며 자전축에 살짝 비스듬한 방향으로 강한 전파 제트를 방출하는 중성자별로 알려져 있지만, 이처럼 짧은 주기로 강한 전파를 내보내는 펄사 중에는 어쩌면 중성자별인 척하는 외계 문명의 방송국이 숨어 있을 것이란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있다.
이러한 가정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헤일로를 떠도는 약 서른 개의 구상성단에서 최소 하나 이상의 외계 지적 문명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특히 구상성단 Terzan 5에서는 가장 많은 약 35개의 밀리초 펄사가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과거 드레이크가 아레시보 메시지를 보냈던 구상성단 M13에서도 약 5개 정도의 외계 문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추정치가 나왔다.
앞으로 약 2만 2000년이 더 흘러야 지구에서 날려 보낸 아레시보 메시지가 구상성단 M13에 도착할 것이다. 이 구상성단에 존재할지 모르는 약 다섯 개의 문명 중 한 곳의 안테나에서 우리 지구가 오래전 보낸 편지를 받아볼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그로부터 2만 2000년이 흐른 머나먼 미래, 인류는 지구로 날아온 그들의 답신을 확인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앞으로 4만 년 넘게 인류가 생존해야만 가능한 이야기다. 결국 우주의 또 다른 존재와 신호를 주고받고 조우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말 그대로 ‘시간 문제’일지도 모른다.
[1] https://en.wikipedia.org/wiki/Nightfall_(Asimov_novelette_and_novel)
[2]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ad802
[3] https://exoplanets.nasa.gov/resources/218/first-transiting-planets-in-a-star-cluster-discovered/
[4] https://www.eso.org/public/news/eso1402/
[5]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3881/aa647c
[6]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0004-637X/827/1/54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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