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난데없이 감자 열풍이 불고 있다. 강원도농수특산물진품센터가 온라인에서 하루 8000~1만 박스를 파는데 연일 완판 행진이다. 흔하디흔하고, 새로울 게 없는 식재료 감자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감자 판매가 늘어나면 매년 풍년에 골머리를 앓는 농가에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농가로서는 감자 흥행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농산물 시장의 문제점을 제기할 때 레퍼토리처럼 따라오는 유통 구조의 불합리성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판매할 때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은 기존 유통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일 기준 전국 평균 감자 가격은 100g당 483원으로 지난해 3월 29일의 564원 대비 81원 하락했다. 10kg으로 환산하면 4만 8300원으로 강원도 판매가보다 10배 가까이 비싸다. 판매점별로는 전통시장이 284원으로 가장 싸고 기업형슈퍼(340원), 대형마트(626원), 백화점(683원) 순으로 저렴했다.
그나마 지난해 가을 감자 풍년으로 예년에 비해 떨어진 가격이다. 수요 감소도 감자의 가격 하락을 거들었다.
강원도는 국내 감자 생산량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여름에 수확해 보관했다가 이듬해 봄 햇감자 수확 전 판매한다. 그러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학이 늦어지는 바람에 대량 구매가 사실상 중단됐다. 4월 햇감자가 나오기 시작하면 고랭지 감자는 폐기 처분되고 만다.
상황이 이러자 강원도가 직접 농민이 재배한 상품을 판매하겠다며 온라인을 통해 10㎏ 1상자를 5000원에 팔기 시작한 것이다. 100g당 50원꼴이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방송에서 ‘못난이 감자’를 언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감자 판매는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가격이 저렴해진 것은 강원도가 적지 않은 예산을 소요하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이번 5000원 감자 판매와 관련해 상자 포장비 950원과 택배비 2500원을 비롯해 마케팅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있다. 감자 농가로서는 감자값 5000원을 오롯이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5000원짜리 감자를 기존 방식대로 도매상에게 넘겨 소매상에서 판매하면 최소 1만 원이 넘는다. 농산물유통정보사이트(KAMIS)에 따르면 고랭지 감자의 유통비용은 2018년 기준 58.7%에 달한다. 감자 소매가가 1만 원이라면 이 중 5870원이 유통비용이란 의미다.
농가가 생산한 감자가 소비자까지 전달되기까지 산지유통상-도매시장-중도매인-소매상 등의 복잡한 유통 과정을 거친다. 흉작이나 수요 증가로 감자의 소매가가 올라도 농가가 도매상에 넘기는 가격은 거의 일정하기 때문에 농가 소득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번 강원도처럼 지방자치단체가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판매하거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못난이 감자를 대량 매입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농가의 소득이 늘어나진 않는다.
현재 농산물 도매법인은 독점권을 행사하며 유통의 목을 쥐고 있다. 생산자로선 도매법인을 이용하지 않으면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팔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현재 유통 구조에 매달리고 있다. 또 도매법인은 지역 표심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인이나 지자체장도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다.
현재의 농산물 유통 구조는 변화하기 어려우며, 국민의 세금으로 농가의 소득 부족을 메꾸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번 강원도의 경우처럼 특정 지자체가 보조금을 풀면 농산물의 가격 교란이 일어나 도매업자나 다른 지자체들, 심지어 농가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예산을 들여 감자 판매량을 늘려주거나 보조금을 지급해도 농가가 이익을 보거나 농업의 유통 체제가 변화하지는 않는다. 정부도 수급 조절이 필요한 일부 농산물을 제외하고는, 보조금과 농가가 스스로 증산·감산을 판단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하는 정도의 소극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농업연구원 관계자는 “농업은 수십 년간 개혁 없이 보조금으로 생태계를 지탱했고, 어느 정치인도 매스를 들지 못했다”며 “생산량 예측과 재배 면적 분석만으로도 시장 가격을 합리적으로 책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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