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저임금도 못 받는데 업무 강도는 말도 마세요. 법인에서는 ‘교육’이라고 하는데 뭘 배운다기보다 알아서 해야 하는 분위기예요,”(2개월 차 수습 노무사)
“고질적인 문제예요. 평가를 받는 과정이니까 대놓고 말을 못 해요. 수습 기간이 끝나도 이 분야에 취업해서 계속 봐야 하는 업계 사람들이니까.”(3년 차 노무사)
일부 전문자격사의 수습 기간에 이뤄지는 과도한 노동시간,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변호사·노무사·세무사 등 전문자격사는 시험에 합격한 뒤 수습 기간을 거쳐야 법에 명시된 고유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수습 기간을 ‘교육’으로 보고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지 않는 일부 사무소다.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합격생들은 사무소에서 6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지도 노무사는 수습 노무사를 평가해 결과를 한국공인노무사회에 제출한다. 수습 노무사들이 지도노무사를 포함한 사무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공인노무사회 홈페이지 내 ‘수습 노무사 전용 채용정보’를 살펴보니 ‘급여조건은 협의 후 결정’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써 놓은 사무소가 다수 보였다.
장의성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은 “인사노무관리를 담당하는 자격증이다 보니 공인노무사회 측에서도 직역을 고려해 최저임금에 준하는 임금을 주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과거 열정페이 문제가 여러 차례 지적됐기 때문에 많이 개선됐지만 일부 남은 곳은 수습 노무사들의 연락망 내에서 자체적으로 걸러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과 근로 사이, 회색지대의 수습 ‘사’자들
수습 과정에 있는 변호사들도 유사한 문제를 겪는다. 변호사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시험을 통과하면 6개월의 연수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법률사무소를 개설할 수도, 이미 개설된 법무법인의 구성원 변호사가 될 수도 없다.
변호사시험 합격자 실무연수를 받는 방법은 2가지다. 법률사무종사기관에 채용되어 일정한 보수를 받거나, 기관을 찾지 못한 경우 대한변호사협회에 실무연수 참가비를 내고 수습교육을 받는 식이다.
이 기간에 제공한 근로에 대해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 건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대한변호사회가 ‘협회 취업정보센터 실무수습 변호사 채용공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8년의 경우 64.2%에 이르는 채용공고가 최저임금 수준에 미달하는 급여를 제시했다. 2019년에도 40%에 가까운 채용공고가 최저임금 수준 또는 그 이하의 급여를 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아도 실제로 일한 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하면 최저임금에 미달하거나 최저임금법 위반을 회피하기 위해 일 6시간 근로하는 것으로 형식상 정한 경우, 수습 변호사의 불리한 지위를 이용해 급여 지급을 연기하거나 주말 근무를 강요하면서 관련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무수습 변호사가 할 수 있는 법률 행위는 제한적이다. 변호사법 제21조의 2 제1항에 따라 6개월의 실무수습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단독으로 법률사무소를 개설하거나 법무법인, 법무법인(유한) 및 법무조합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일부 법률사무종사기관은 이를 악용해 싼값에 노동력을 사용하고 6개월 수습 기간이 끝난 후 채용을 하지 않는다.
2월 17일 대한변호사협회 주최로 열린 ‘청년변호사, 협회에 바란다’에서 이재양 변호사(최창영 법률사무소)는 “6개월 수습 기간 후 채용하지 않는 블랙로펌도 많아 신임 변호사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12일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근로로 본다면 최저임금을 지켜야 하는 게 맞는데 교육으로 보면 또 다르다. ‘실무수습 기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교육과 근로라는 두 가지에서 회색지대인 부분이 있다. 협회에서 나서서 처우가 개선되고 있다지만 통계자료를 보면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무수습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세무사 업계도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세무사도 세무사법에 따라 법인 또는 개인 사무소에서 6개월간 실무수습을 이수해야 한다. 일부 사무소는 타 직종과 마찬가지로 근로시간은 긴 데 비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급여를 지급해 악명이 높다. 한국세무사회·한국공인노무사협회·대한변호사협회 같은 협회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해달라”고 공문을 보내거나 가이드라인을 고지하지만 별다른 제재가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 내부에서는 실무수습 제도에 대한 개선 또는 존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정형근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자의 실무수습 제도의 운영현실과 개선방안’에서 “현재는 실무수습을 주관하는 법무부에도 실무수습의 내용에 관한 어떤 지침이나 매뉴얼도 없다. 실무수습 중인 변호사는 대외적으로 그의 명의로 어떤 법률 행위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실무수습 기간에 실습을 지도하는 변호사와 공동으로 사건을 수임하고 함께 변론을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실무수습 제도를 폐지하고 변호사의 연수교육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실무수습 제도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됐지만 답이 찾아지지 않는 어려운 문제다. 실무수습 과정의 변호사에게 좀 더 많은 권한을 주자거나, 혹은 로스쿨 내 실무과정을 추가 보완하자는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뭐든 지금의 서류작업, 자료조사 정도인 실무수습 과정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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