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양준일이 연일 화제입니다. 1990년대 초반에 나온 음악으로 지금 젊은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며 단숨에 스타가 된 거지요. 양준일 열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작 1990년대에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던 양준일. 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양준일이 자신의 음악을 가요 프로에 홍보하러 갔더니 영어가 많은 팝음악이라고 거절당했고,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같은 팝음악 프로그램에 갔더니 이건 가요라고 하면서 거절당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듭니다. 양준일의 음악은 가요일까요? 팝일까요? 가요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이야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양준일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왔던 1집의 발라드 트랙이 아닌 2집에서 양준일이 온전히 책임을 지고 만든 ‘댄스 위드 미(Dance With Me) 아가씨’ 등의 음악이 더욱 그렇습니다.
양준일의 ‘댄스 위드 미(Dance With Me) 아가씨’.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음악과 무대를 보여준다. 양준일 또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밝혔다.
양준일의 음악을 팝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음악이 만들어진 토양이 완벽히 팝과 같습니다. 양준일은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비지스(Bee Gees)의 디스코 음악,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사운드 트랙 등을 듣고 자신의 음악 취향을 만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동시대 한국 음악과는 괴리가 있었다는 거지요.
퍼포먼스의 뿌리 또한 미국입니다. 그는 학창 시절 주변 학생들이 거리에서 보여준 ‘문워크’를 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메인스트림에서 춤을 추기 시작할 때 대다수 한국 뮤지션이 문워크를 알게 되었다면, 양준일은 마이클 잭슨이 참고했던 인디 시절 팝음악과 댄스를 익혔던 거지요. 성장환경이 사실상 팝 뮤지션과 같았던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미국인’ 양준일이 ‘미국 음악’의 영향을 받아 만든 음악은 가요라기보다는 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즐겁게 만든 댄스음악은 당연히 미국 음악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힘들 때 그를 위로했던 발라드 음악 또한 ‘엘튼 존’의 발라드였습니다.
양준일은 힘든 시절 엘튼 존의 발라드를 듣곤 했다고 한다.
양준일과 동시대, 혹은 조금 뒤 한국을 휩쓴 ‘신세대 댄스가요’는 그렇지 않습니다. 리듬에서 마이클 잭슨 등 미국 가수의 뉴잭스윙(new jack swing)을 차용했지만 그 중심에서는 가요 멜로디가 있었지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뿐 아니라 현진영, 듀스 등 성공적인 댄스 가수들은 모두 한국식 멜로디를 갖고 있었습니다. 멜로디가 거의 없거나 팝스러운 양준일과는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뉴잭스윙은 어반 뮤직에 힙합 리듬감이 더해진 리듬앤블루스 음악으로 1980~1990년대 초반 미국에 나타난 퓨전 뮤직 장르입니다.
그렇다면 양준일의 음악은 팝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양준일의 음악은 가요스럽지 않지만 케이팝스럽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H.O.T. 이후 한국 댄스 음악은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그들은 양준일과 동료인 팝 뮤지션, 그 중에서도 세계 최고였던 마이클 잭슨의 영향력에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이클 잭슨과 그의 기반인 1980~1990년대 알앤비, 뉴잭스윙의 완성도를 높였지요.
지금의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케이팝에 참여하는 팝 작곡가들은 케이팝이 ‘미국이 잊고 있던 예전 리듬앤블루스의 매력을 존중한다’고 칭찬합니다. 복잡한 화성, 팀플레이, 강조되는 멜로디라인, 그러면서도 강력한 비트 등이 1990년대 알앤비, 뉴잭스윙을 떠올리게 한다는 거지요.
이런 음악을 제대로 구현해낸 사람이 이미 한참 전에 있었습니다. 바로 양준일입니다. 그는 케이팝이 꾸준히 쫓아왔던 마이클 잭슨 식의 90년대 알앤비, 뉴잭스윙을 완벽하게 구사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을 따라한 게 아닌 그와 같은 토양에서 자란 동시대 음악입니다. 가사에 한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케이팝을 즐기는 젊은이들에게 먹히는 음악일 수밖에 없습니다.
양준일이 왜 1991년에는 외면 받았을까요? 왜 2020년에 다시 소환되었을까요? 우연이 아닙니다. 필연에 가깝지요.
1991년 마이클 잭슨과 같은 토양에서 자란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 뮤지션이 작품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팝 팬에겐 마이클 잭슨 정도가 아니었고, 가요 팬이 이해하기에는 가요 감성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로 1991년의 미국 댄스음악을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었지요.
그리고 2020년. 그동안 한국은 1991년 즈음의 ‘마이클 잭슨’ 류의 팝을 토양 삼아 급격하게 댄스 음악을 발전시킵니다. 어느새 케이팝은 마이클 잭슨의 ‘8090 댄스뮤직’ 적자로 전 세계에 위상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필연처럼 1991년, 마이클 잭슨의 시대에, 마이클 잭슨과 같은 음악을 한글로 발표한 뮤지션이 주목받게 된 셈이지요.
양준일은 1990년대 팝이면서 지금 케이팝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우연찮게 케이팝이라는 강의 ‘수원지’를 찾게 된 걸지 모릅니다. 바로 1990년대 뉴잭스윙 말이죠. 케이팝의 근원을 보여주는 필연의 음악, 양준일을 탄생시킨 음악들이었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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