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무인도에 표류된 로빈슨 크루소가 구출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을 해야 할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바로 자신이 그 섬에 갇혀 있다는 것을 티를 내야 한다. 그저 멍하니 해변에 앉아서 섬 근처로 다른 배나 비행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도 있지만, 만약 누군가 근처를 지나가더라도 그 섬에 사람이 갇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과연 인류는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다른 우주 문명에게 알릴 수 있을까?
외계의 다른 문명과 신호를 주고받고 싶은 지구의 인류 역시 바로 이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와 비슷한 처지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정말 이 넓은 우주에 지구처럼 나름의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존재가 흔하게 있다면, 그들 사이에서 아직 그 누구와도 조우하지 못한 인류는 정말 외로운 외딴 섬에 갇혀 있는 신세라고 볼 수 있다. 아직 우리가 다른 존재의 신호를 포착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아직 그들 역시 우리 인류가 바로 이곳 태양계 세 번째 행성에 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해서인지 모른다.
#외계인에게 알리려면 ‘잘난 척’이 필요하다
즉 다른 외계 문명과 함께 어울려 놀고 싶은 우주의 인싸가 되고 싶다면, 먼저 지구 문명이 나서서 우리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그렇다면 지구는 대체 어떻게 해야 자신의 존재를 멀리 떨어진 다른 외계 문명에게 알릴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이러한 고민은 인류가 첫 번째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기 훨씬 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되어 왔다.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가 단순히 나뭇가지를 열심히 흔드는 것 정도로는 사람이 섬에 갇혀있다는 것을 알릴 수 없다. 나뭇가지는 굳이 사람이 흔들지 않아도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분명 사람이 아니고서는 생길 수 없는 흔적을 남겨야만 근처를 지나가던 비행기와 선박에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다.
외계 문명에게 신호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자연 현상으로 오해할 패턴의 신호를 보내면, 운 좋게 지구의 신호를 포착하더라도 지능을 가진 지구 문명이 보낸 메시지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우리가 어렵게 보낸 편지가 그저 바람에 실려 날아온 나뭇잎 취급을 받지 않도록 우리가 꽤 복잡한 지적 생명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따라서 우리 인류가 나름 발전된 수학·과학적 개념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줘야 한다. 또 우리가 메시지에 담게 될 과학적 개념은 전 우주를 통틀어 널리 이해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지식이어야 한다. 그래야 언어와 문화에 상관없이 모든 외계 문명이 우리의 의도대로 그 신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주 문명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나누는 첫 인사는 잘난 척으로 시작하는 셈이다. 잘난 척을 하되, 너무 어렵지는 않게 상대가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잘난 척이어야 한다. 쉽게 맞히지는 못하게 적당히 꼬면서도, 또 너무 꼬아버리면 재미가 반감되는 난센스 문제를 만드는 것처럼 절묘한 센스가 필요하다.
1820년 수학자 가우스는 직각삼각형의 각 변의 길이 사이 법칙을 이야기하는 피타고라스의 법칙이 여기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의 법칙은 직각 삼각형의 두 변을 제곱해서 더하면 그 빗변의 제곱과 같다는 것(a²+b²=c²)을 이야기하는 간단한 기하학적 법칙이다. 이 법칙의 성질을 아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림으로 직각 삼각형의 각 변의 길이를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을 세 개 그린 그림이 있다.
가우스는 지구 표면에 이 피타고라스의 법칙을 상징하는 그림을 크게 그려놓으면 달이나 화성에 살고 있는 외계인들에게 인류가 이런 수학적 법칙 정도는 알고 있는 지적 문명임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우스는 황량한 시베리아의 툰드라에 소나무를 심어서 이 그림의 모서리를 그리고, 그 속에는 밀을 심어서 삼각형과 사각형의 면적을 채우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마치 가끔씩 논밭에 거대한 기하학적 문양이 나타날 때마다 외계인이 남기고 간 낙서 흔적이라고 이야기하는 미스터리 서클처럼, 반대로 인류가 지구에 나무를 심어 그림을 그려서 우리의 메시지를 보내자는 생각이었다.
가우스 외에도 19세기 동안 많은 몽상가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1819년 오스트리아의 천문학자 조세프 리트로우는 사하라 사막에 폭 30km의 두꺼운 해자를 파서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제안했다. 사막에 판 두껍고 거대한 해자에 나일 강에서 끌어온 물을 가득 채우고 그 물 위에 등유를 부어서 불을 태우면 6시간 내내 불길이 타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트로우는 매일 밤마다 독특한 기하학적 무늬로 파놓은 이 우주 봉화의 불씨를 피우면, 화성에 살고 있는 외계인들에게 그 모습이 목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프랑스의 발명가 샤를 크로스는 지구 표면 위에 아주 많은 거울을 잘 배치해서 햇빛을 반사시켜 화성인들에게 지구의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을 고민했다.[1]
물론 당시까지의 이런 아이디어들은 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화성이나 달 정도에 외계인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사실 시베리아에 나무를 심어 그린 그림이나 사하라 사막에 피운 불씨는 달 정도 거리만 가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아쉽게도 지구 주변 달이나 화성에는 지구 표면에 그린 낙서를 구경해줄 외계인들도 없다. 그보다 더 먼 다른 별 곁을 도는 외계행성을 노려야 한다. 그렇다면 인류는 수십, 수백 광년 이상 떨어진 아주 먼 다른 외계행성을 향해 어떻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지구에서 날아간 라디오 사연
1890년대 라디오가 발명되고, 인류가 본격적인 무선 통신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인류는 사방으로 다양한 라디오 전파 신호를 우주 공간으로 방출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라디오 신호가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1895년 이탈리아 출신의 발명가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영국에서 송출한 방송으로 전해진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약 120년이 흘렀다. 빛의 속도로 퍼져나간 지구의 라디오 전파 신호는 이제 지구를 중심으로 지름 약 250광년 크기의 영역까지 퍼져나가고 있을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지구의 전파 신호가 도달할 수 있는 이 영역을 라디오 버블(Radio bubble)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라디오 버블 안에 들어오는 별에서만 지구의 전파 신호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라디오 버블보다 더 바깥에 있는 별에서는 여전히 지구는 아무런 전파 신호도 내보내지 않는, 지적 생명체는 살지 않는 고요한 행성으로 보일 것이다. 인류의 라디오 신호가 도달할 수 있는 이 라디오 버블은 지름 10만 광년짜리 우리 은하에 비하면 아주 좁은 영역에 불과하다. 아쉽게도 인류는 최근에서야 우주로 전파를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라디오 버블 안에 들어오는 별의 개수는 천 개 정도 된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약 4.3광년 떨어진 프록시마 센타우리 항성계에도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외계행성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아마 이곳에 누군가 살고 있는 누군가 우리 지구의 전파 방송을 엿듣고 있지 않을지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영상=Chandra X-ray Observatory
물론 이런 일반적인 방송 전파처럼 단순히 사방으로 전파를 내보내면 거리가 멀어지면서 빠르게 그 신호의 세기도 거리에 제곱해서 약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더 전략적으로 특정한 하나의 방향을 정해 그곳을 향해 아주 강한 전파 신호를 송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주 먼 별에서도 우주 배경 노이즈 속에서 지구의 전파 신호를 잘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1962년 소련은 새로 지은 예파토리아 행성 레이더(Evpatoria Planetary Radar, EPR)을 테스트하기 위해 한 가지 귀여운 장난을 시도했다. 평화(MIR), 레닌(LENIN), 그리고 소련(USSR)을 의미하는 알파벳을 모스 부호로 바꿔서 금성으로 보낸 것이다. 물론 금성인들은 아직 우리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1974년 전파 천문학자 드레이크는 굉장히 재밌는 시도를 했다. 그는 외계 문명의 메시지를 포착하기 위해 거대한 전파 망원경을 동원하는 세티(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를 맡았던 천문학자다. 그는 별들이 높은 밀도로 바글바글 모여 있는 구상성단과 같은 우주 번화가로 지구의 메시지를 보내야 지구의 메시지가 다른 외계 문명에게 발견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 명함을 더 많이 돌릴 수 있다는 간단한 논리였다.
그래서 드레이크는 약 100광년 범위 안에 30만 개나 되는 많은 별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구상성단 M13으로 지구의 특별한 메시지를 송출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지름 300미터의 거대한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1679비트의 메시지를 보냈다. 1679라는 숫자는 두 소수 23과 73을 곱한 숫자로, 만약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눠지는 소수라는 수학적 개념을 알고 있는 외계문명이 이 메시지를 포착한다면 어렵지 않게 1679비트의 메시지를 23칸 73줄짜리 메시지로 변환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담긴 전략이었다.[2]
이 1679비트의 아레시보 메시지(Arecibo message)를 23칸 73줄로 다시 배치해보면 하나의 긴 그림 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안에는 1에서 10까지의 간단한 숫자에 대한 정의로 시작해, 사람의 몸을 가장 많이 구성하고 있는 수소, 탄소, 산소, 질소, 그리고 인의 원자 번호를 위에서 정의한 숫자 표기 방식으로 나타낸다. 그 아래에는 사람의 DNA를 구성하는 유기 분자들의 분자식을 위에서 정의한 원소와 숫자 표기 방식을 이용해 다시 나타내고 DNA의 이중나선 구조도 함께 그림으로 담아놓았다. 그 아래에는 태양계의 모습과 사람의 형태, 신장 길이, 그리고 아레시보 망원경의 모습과 그 사이즈가 함께 담겨 있다.
게다가 최근의 탐사에 따르면 M13처럼 높은 밀도로 별들이 모여 있는 구상성단과 같은 환경에서는 지구같이 고등 지적 생명체가 번성하는 환경을 갖춘 행성이 존재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서로 궤도가 겹치거나 인접한 별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빈번하고 복잡한 중력 상호작용에 의해, 별 주변을 도는 행성들의 궤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구처럼 적당한 환경을 갖추고 그 환경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별과 행성 사이의 거리가 계속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빈번한 중력 상호작용에 의해 행성이 중심 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항성계를 탈출해버리거나, 계속 궤도 반지름이 들쭉날쭉하면서 행성의 환경이 극심하게 변동하면 그 행성에서 오랫동안 고등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3][4]
#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순히 별이 많은 번화가로 신호를 보내면, 누구 하나 걸리겠지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전략에는 수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마치 사람이 많은 번화가로 가더라도 그 번화가가 우리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외국 사람들만 가득한 곳이라면 별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 제대로 지구처럼 다른 외계 종족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외계인 천문학자가 살고 있을 법한 곳을 잘 선별해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는 어떤 방식으로 고등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을 법한 행성을 선별할 수 있을까? 단순히 외계행성의 존재만 확인하는 것뿐 아니라, 그 행성에 정말 고도로 발전된 기술 문명을 갖고 있는 외계 지적 문명의 여부는 또 어떻게 추정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최근 천문학자들은 이런 소설 같은 고민을 더 현실적이고 실증적인 정상 과학의 범주 안에 가져와 아주 과학적인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다른 외계 지적 문명의 흔적을 찾고 싶다면, 역으로 만약 아주 먼 곳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외계인의 입장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근거로 지구에 기술 문명을 갖춘 지적 생명체가 거주하고 있다고 추정하게 될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우주적인 역지사지에 ‘우주에는 과연 우리뿐인가’라는 아주 오래된 이 위대한 질문에 대한 작은 실마리가 담겨 있다(다음 편에서 계속).
[1] https://books.google.co.kr/books?id=J4TZPlihVUoC&pg=PA205&redir_esc=y
[2] https://breakthroughinitiatives.org/initiative/1
[3]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01/5630/193
[4]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6/317334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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