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신종 인플루엔자A(신종플루) 유행 당시와 현재 코로나19 상황은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치료제 유무다. 11년 전인 2009년에는 인플루엔자의 유일한 방어책으로 불리던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가 존재했다. 정부가 신종플루 유행 이전부터 치료제를 비축할 수 있었던 이유다. 당시 확진자는 물론 유증상자에게도 치료약이 빠르게 보급됐다. 이로 인해 타미플루는 신종플루 종식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약사가 돈이 되는 시장에 일찌감치 뛰어든 결과다. 타미플루는 1996년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만들어 스위스 제약사 로슈에 판권을 넘겼다. 흔히 독감이라 불리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종이 일어날지라도 세포막을 뚫고 나오지 못하고 체내에서 죽게 하면 감염을 차단할 수 있다. 이러한 작용기전으로 개발된 타미플루는 향후 수백 년이 지나도 ‘유효한 약’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반면 2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4000명을 뛰어넘고 사망자가 22명을 기록했지만 ‘코로나19 치료제’는 감감무소식이다. 결국 확진자들은 증세 완화에 중점을 둔 대증요법을 쓰고 있다. 기존 약이 코로나19에도 효과가 있다더라, 신약 개발에 돌입했다더라와 같은 이야기는 무성하지만 치료제 덕분에 완치됐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확진자들은 언제쯤 코로나19 치료제를 받을 수 있을까.
#갖고 있던 약물로 코로나19 임상시험…상용화 시기 단정짓기는 일러
결론부터 말하면 제약사가 코로나19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신약후보물질을 탐색하고 개발해 상용화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다. 국내외 제약사들은 이미 확진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신약 개발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과 동물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감기 바이러스의 일종이지만 변이가 심해, 코로나19 치료제 신약이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대신 기존 약물이 코로나19에도 효과가 있다는 점을 밝혀내 코로나19 치료제로 허가받는 방안은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몇몇 국내외 제약사들은 기존 약물이나 약으로 코로나19 확진자를 대상으로 새롭게 임상시험을 진행해 코로나19 치료제로 승인받는 방안을 노리고 있다. 이러한 약물 재창출 방법은 후보물질 발굴이나 전임상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코미팜, 이뮨메드 등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약후보물질을 이용해 임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감염병 확산세가 잦아들기 전에 약이 승인될지는 미지수다.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에볼라바이러스 치료약물인 ‘램데시비르’도 주목받는다. 미국 워싱턴주는 코로나19 첫 번째 확진자에게 램데시비르를 투여하자 하루 만에 환자의 폐렴과 호흡 곤란 증상이 호전됐다고 밝혔다. 현재 길리어드는 중국에서 임상을 진행 중이고 결과는 4월쯤 나올 예정이다. 길리어드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렘데시비르 임상 3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임상을 통과해 허가를 받으면 ‘국내 첫 코로나19 치료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코로나 바이러스 변종이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도 아직 임상 효과를 인정받은 명확한 치료제가 없다는 점을 돌이켜볼 때 미래를 장담하기는 이르다. 또 임상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안전성과 유효성을 밝혀낼 수 있을지 확답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환자가 과도하게 면역력이 증가해 대규모 염증 반응이 나오는 증상을 자사의 신약후보물질 파나픽스가 억제할 수 있다고 밝힌 코미팜도 “임상시험 약물이 의약품으로 최종허가 받을 확률은 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고 26일 공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관계자는 “렘데시비르는 허가받은 약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에 걸맞은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외국 임상 자료로 대체할 수도 있다”며 “우리나라 환자가 많으니 임상 대상을 구하기 쉬워 임상을 진행하려는 것인데, 환자가 많다고 해서 빨리 허가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효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약물 투약 중…“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 없어”
현재 국내 보건당국은 기존에 있는 약이나 약물 중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약물을 투약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치료제가 없다는 이유로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은 약물을 환자에게 실험적으로 처방하는 것은 의학 윤리와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환자와 의료진에게는 최선의 대안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환자에게 △C형 간염 치료제 리바비린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 △독감 치료제 자나미비르 △혈액제제 이뮤노글로불린G △항말라리아제 히드록시클로로퀸 △면역증강제 인터페론 등 6가지 약물을 처방 중이다.
현재 코로나19 치료에 투입이 고려되는 약물로는 일본 후지필름의 자회사인 후지필름도야마 화학이 개발한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 ‘아비간’이 꼽힌다. 아비간은 복통이나 선천적 장애 등 부작용이 보고돼 임신부에는 투약할 수 없으나, 코로나19 일부 경증 환자에 효과를 보였다. 일본은 아비간을 코로나19 치료에 투입했고, 중국 한 업체는 아비간의 원료를 도입해 ‘파빌라비르’라는 신약을 제조했다. 그러나 수입특례 방식으로 아비간을 도입하는 방안도 현시점에서는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의 식약처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인데 아직 연락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들 약물이 들어오면 치료 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에 대한 직접적인 효능이 입증된 ‘획기적인 신약’은 아니지만, 기저질환이 다 다른 환자들에게 치료 측면에서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설대우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는 “지금 쓰이는 치료제와 크게 차이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칼레트라는 간 독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리바비린은 독성이 강하다. 기저질환이 저마다 다른 확진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식적인 치료제가 없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백재중 녹색병원 호흡기내과 과장은 “사망자들은 고령 환자나 기저 질환이 있던 분들이 많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봤고 또 질병의 실체를 몰라 공포감을 가질 수는 있지만, 실제론 감기나 독감처럼 지나가는 사례가 대다수다”라며 “장기적으로 국내 제약사들이 자체 개발 능력을 높여 향후 감염병이 왔을 때도 치료제나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공공제약사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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