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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코로나19보다 무서운 돈의 세계를 그린 '쩐의 전쟁'

사람 목숨 살리고 죽이는 돈에 관한 이야기 …한국드라마 고질병 '뒷심부족' 아쉬워

2020.02.28(Fri) 14:15:24

[비즈한국] ‘코로나19’로 전국이 뒤숭숭하다. 지금은 바이러스 자체를 두려워하는 상황이지만 조금만 더 장기전으로 가면 경제적 타격으로 인한 공포감이 더 클 것이다. 증시는 널뛰고 있고, 부동산 시장 분위기는 우울하며, 자영업자들은 벌써 눈앞이 캄캄한 지경이니까.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 놈의 돈을 벌기가 어려운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가장 사랑하는 소재는 역시 사랑이지만, 생각해보면 돈 또한 사랑만큼 빈번하게 다뤄지곤 한다. 사실상 신데렐라, 캔디 스토리의 핵심도 남녀가 빈부격차를 극복하고 사랑에 골인하는 것 아닌가. 돈 자체에 집중하는 작품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7년 방영한 ‘쩐의 전쟁’. 박인권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쩐의 전쟁’은 한국 드라마 고질병인 뒷심 부족에 시달리긴 했지만 평균 시청률 30%를 넘기고, 보너스 라운드란 이름으로 번외편 4회를 방영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박신양, 박진희, 신동욱, 김정화 주연의 ‘쩐의 전쟁’은 박인권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장태유 PD 연출, 이향희 작가 극본으로 진행되었다. 높은 시청률 때문에 무리하게 보너스 라운드인 번외편 4회를 방영했는데, 이 때문에 출연료 지급 소송 등의 분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진=SBS 홈페이지

 

‘쩐의 전쟁’은 도심 한가운데서 돈다발이 흩날리면서 갑자기 총을 맞고 쓰러지는 금나라(박신양)의 꿈으로 시작된다. 돈과 죽음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게 돈이라는 상징적인 오프닝이 아닐 수 없다. 뒤이어 금나라 여동생 금은지(이영은)의 결혼식장에서 행패를 놓는 사채업자들의 모습을 비춘다. 그렇다. ‘쩐의 전쟁’은 돈을 다루면서도 그중에서 가장 악질적이라는 사채업을 집중 조명한다.

 

드라마 초반 사채로 인한 금나라 집안의 불운은 그야말로 끝도 없다. 양말공장을 운영하며 급한 마음에 사채를 썼던 아버지는 원금 4억 원에 매달 이자만 2800만 원을 갚아야 하는 절망적인 현실에 굴복, 아들에게 ‘카드빚 쓰지 마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신용카드를 날카롭게 갈아 자살한다. 결혼하려던 여자친구 이차연(김정화)의 할머니는 금나라에게 돈을 주는 대신 다시는 차연을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한다. 어머니 수술비를 위해 그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그 돈을 사채업자에게 빼앗기고 어머니마저 아버지가 발견된 날 세상을 뜨고 만다. 그러고도 신용불량자가 되어 음식물쓰레기를 뒤지는 노숙자 신세까지 추락하니, 그야말로 풍비박산이다. 그래서 금나라는 차라리 사채업자가 되어 돈으로 세상에 복수하고자 한다.

 

서울대 출신 펀드매니저에서 동네 음식쓰레기를 뒤져 먹는 노숙자 신세로 추락한 금나라는 전설의 사채업자 독고철을 만나 사채업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은 역시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의 고니와 평경장의 관계와 유사해 보인다. 사진=드라마 캡처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해도 서울대 나온 펀드매니저 출신이 그 어떤 직업도 구하지 못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는 등 ‘쩐의 전쟁’이 그리는 세상이 다소 과장이 있긴 하지만, 법정 최고 금리가 66%에 달하던 2007년이기에 한 집안이 사채로 풍비박산날 수 있다고 본다(현재 법정 최고 금리는 24%로 인하됐지만 여전히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일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쥐약 바른 빵을 주워 먹다 죽을 뻔한 금나라가 대한민국 사채업의 전설인 독고철(신구)의 제자가 되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응원을 던졌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말종처럼 여기던 사채업자에게 말이다!

 

금나라와 서주희의 관계는 묘하다. 금나라의 은사님이 서주희의 아버지이자 금나라가 사채업자가 되어 빚을 수금해야 하는 대상이 서주희네 가족이니까. 빚 때문에 결혼하려던 서주희는 금나라 때문에 결혼식이 파토나지만 나라와 계속 얽히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진=SBS 홈페이지

 

게다가 사채업자가 된 금나라가 빚을 받아내는 방식도 신통방통했다. 도박빚을 진 아들에게서 돈을 받아낼 방법이 없자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인망 있는 아버지를 활용해 아들의 가짜 장례식을 치루는 건 압권. 그 방법의 백미는 아들이 죽은 줄 알았는데 사실 살아 있었더라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게 권하는 것이었다. 친구의 아들이 죽었다 살아왔다는데, 냈던 조의금을 굳이 돌려받으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사람과 관계의 심리를 꿰뚫어 본 금나라의 절묘한 한 수였다. 돈을 빌렸다 갚지 못하는 조폭 넘버3의 경우, 넘버3와 조폭 두목의 관계를 절묘하게 이용해 원금은 물론 몇 년간 쌓인 복리 이자까지 받아내 버린다.

 

금나라가 쩐주가 되어 달라며 찾아간 악덕 사채업자 마동포. 금나라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원래 드라마 중반 사라질 역할이었다는데, 이원종의 연기가 빛을 발하며 끝까지 살아 남았다. 사진=SBS 홈페이지

 

‘쩐의 전쟁’에는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부단히 등장한다. 주인공 금나라는 물론, 돈을 택한 금나라 때문에 쓰리게 사랑을 잃은 차연, 보증을 잘못 선 아버지의 빚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을 하려다 빚 탕감으로 축의금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 나라를 만나며 결혼도 깨지는 서주희(박진희), 부모가 독고철에게 빚을 지는 바람에 어린 시절부터 고아로 자란 하우성(신동욱), 악덕 사채업자로 이름을 날리며 평생 돈을 모았지만 가족은 물론 그 누구도 믿지 못하다 나라에게 평생 모은 돈 50억을 빼앗기는 마동포(이원종) 등등. 사채업자가 된 금나라가 수금하러 다니는 일반 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쩐의 전쟁’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건, 우리 모두가 살면서 시시때때로 돈 때문에 울고 웃고 힘들고 외로워본 적이 있긴 때문인지도 모른다(한때 4개 신용카드를 ‘돌려막기’ 했던 나도 마찬가지).

 

독고철의 첫 번째 제자이자 금나라와 맞서는 악역 하우성. 하우성 역을 맡은 신동욱은 이 작품으로 평생 가져갈 흑역사인 대사를 남긴다. “누구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가지고 있는 거예요.”(원래 대사는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있는 거예요”였으나 치아 교정 때문에 발음이 새던 시기였기에 벌어진 참사였다고.)

 

앞서 말했듯 ‘쩐의 전쟁’은 한국 드라마 특유의 고질병인 뒷심 부족에 시달렸다. 드라마 밀도는 급격히 낮아지고, 금나라에 맞서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진 악역으로 설정된 하우성은 금나라가 뭘 하기도 전에 모래성처럼 스스로 무너졌고, 주인공에 몰두해 권선징악형 결말로 가나 싶더니 마동포의 돈 50억을 가로챈 원죄를 물어 금나라를 행복의 절정에서 죽이는 결말을 맺는다. 보너스 라운드로 방영된 4회분의 번외편은,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다. 그 모든 것을 견뎌내며 ‘쩐의 전쟁’을 보게 한 건 박신양의 열연과 돈이란 속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운 때문이었다.

 

본편 마지막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던 금나라와 서주희. 지금 보면 뒤에 커튼 색이 마치 영정사진의 검은 리본처럼 보인다. 금나라의 죽음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끌고 갔다면 불법 사채업을 인정한다는 오류를 범했다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사진=SBS 홈페이지

 

‘남자는 상처를 남기지만 돈은 이자를 남긴다’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돈귀신이 거짓말을 한다’ ‘돈을 벌려면 먼저 인간을 알아야 한다’ 등등 돈과 관련된 수많은 말들이 드라마 전반에 펼쳐지는데, 가장 평범하면서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지키지 못해 공감가는 말로 ‘돈은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빌려야 빚이 되지 않는다’가 생각난다. 아무 생각없이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최대로 늘려놨다가 낭패를 본 기억도 슬금슬금 나고.

 

어려운 시국이라 여기저기서 곡소리 나는 판국이지만, 우리는 결국 이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다. 코로나19든 극심한 경기 불황이든. 아,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 거 아니니까 우선은 마스크부터 저렴하게 구입하게 좀 해주고.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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