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문재인 대통령은 2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기업 피해 최소화와 국민의 소비 진작, 위축된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과감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며 “예비비를 신속하게 활용하는 것에 더해 필요하다면 국회의 협조를 얻어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검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책적 상상력에 어떤 제한도 두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작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책임진 2명의 경제 수장 움직임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추경 검토 지시로 다시 한 번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패싱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또 한 번 뒷북을 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홍남기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추경 검토를 지시하는 시각에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출장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었다. 재정정책 사령탑이 자리를 비운 동안 추경 추진이 결정된 셈이다. 홍 부총리가 귀국 후 페이스북에 “금주 발표할 행정부 자체적 지원방안에 더해 이제는 추경을 편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지만 패싱 논란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홍남기 부총리가 이보다 사흘 전인 21일 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출국하면서 추경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명한 때문이다. 홍 부총리는 당시 “소상공인 임대료 지원 등 코로나19 관련 1차 경기대책 패키지를 내주 후반부에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추경 여부보다 사업과 정책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해 추경 추진 검토를 하고 있지 않음을 시사한 바 있다.
홍남기 부총리가 중요 정책에서 배제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점에서 패싱 논란은 계속될 조짐이다. 지난해 8월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발표할 당시 홍 부총리는 경기 회복에 장애가 된다며 발표 연기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도권 부동산 가격 급등 우려를 이유로 청와대를 설득하면서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 들어갔다.
같은 해 5월 3기 신도시 발표 당시 홍남기 부총리와 기재부 반대에도 김현미 장관과 국토부가 나서 고양선과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장 구간에 대해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도록 결정했다. 홍 부총리는 패싱 논란 가라앉히기에 주력하는 모습이지만 재정 정책 사령탑으로서의 위상은 또다시 구겨졌다.
한편 이주열 총재는 27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1.25%로 동결했다. 이 총재는 금통위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애로는 코로나19이며 다른 감염병 사태보다 충격이 크리라 생각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당장의 실물경제 위축은 벌써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3%에서 2.1%로 낮췄다. 1분기 역성장을 전망하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서도 기준금리는 동결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을 한 셈이다.
이주열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 배경으로 주택 가격 상승 우려를 들었지만 경제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는 상황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5일 한은이 발표한 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9로 전월 대비 7.3포인트 하락했다. 메르스 발발로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던 2015년 6월(-7.3포인트) 이후 4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26일 발표한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 전산업 업황BSI는 전월 대비 10포인트 하락한 65를 기록했다. 2003년 관련 통계가 생긴 이래 최대 낙폭이다. 이런 상황인데다 다음 금통위가 4월 9일로 잡혀있다는 점에서 자칫 실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주열 총재가 그동안 기준금리 결정에 있어 뒷북을 쳐왔다는 점도 이런 걱정을 깊게 한다. 이 총재는 2014년 세계 경제가 신흥국 신용위기 여파로 시달리고 미국 기준금리가 사실상 제로(0) 금리일 때도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한 발씩 늦었다.
이주열 총재는 당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척하면 척’ 발언 등을 통해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한 뒤에서야 인하에 나섰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 때도 한발 씩 늦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도 인상을 늦추다가 이낙연 국무총리 등이 집값을 잡기 위해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서자 인상 조치를 취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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