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장인 정신을 갖고 소량으로라도 들여오려는 식품을 국민들이 접하지 못하는 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죠.” 지난 18일 만난 와인 수입사 대표 A 씨의 말이다. ‘사랑하는 와인을 국내 소비자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와인 수입을 시작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그 마음은 점차 무너지고 있다. 수입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식품 검사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식품 수입이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A 씨처럼 와인이나 치즈 같은 고급식품을 수입하는 업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국내 수입식품 수입(통관) 시스템에 상당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판매가를 높일 수밖에 없어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대규모로 상품을 수입하는 대기업보다는 다양한 품목을 소량 수입을 하는 영세사업자들의 고충이 크다.
#검사 기간 길어질수록 보관 비용 상승…결국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식품을 수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는 상당히 복잡하다. 우선 수입식품 판매업 영업허가를 받은 사업자가 식품 수입신고서를 지방 식약청에 제출해야 한다. 이때 영업신고증과 함께 제조회사정보·성분함량표·영양성분표 등의 서류를 제출하며, 이를 토대로 서류검사가 이뤄진다. 해당 품목을 처음 수입하는 경우 제품의 맛·냄새·상태 등을 통해 적합성을 판단하는 관능검사가 포함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동일한 식품을 이전에도 들여온 적이 있다면 무작위표본검사·정밀검사·관능검사·서류검사 중 하나를 지정받아 실시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일부 식품 수입업자는 첫 관문에 해당하는 서류 검사조차 쉽게 통과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심사를 맡는 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공무원이 누구냐에 따라 통과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 식약처장이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인정하는 식품도 서류 검사를 거쳐야 한다. 앞서의 A 씨는 “문제는 심사에 담당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최초로 수입할 때는 문제없이 통과됐던 와인을 세 번째 수입할 때는 바뀐 담당자가 문제시해 다시 신규 검사를 받아야 했다”며 “여기에 꼬박 3개월이 걸렸다. 수입하는 와인 품목이 500개 정도 되는데 수백 개의 식약처를 상대하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식약처는 서류검사에 통상 이틀 정도 걸린다고 명시하지만 그 기간은 훨씬 길어질 수 있다고 한다. 같은 와인사에서 수입 실무를 맡은 B 씨도 “보통 2주지만, 늘어지면 한두 달은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류 검사 이후 정밀 검사에는 10~15일, 무작위 검사에는 14일이 소요된다고 밝히지만 이 기간 역시 늘어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치즈 수입업자 C 씨는 “지난해까지는 평균 5일이던 (무작위)검사 시간이 올해는 평균 9~15일까지 늘어났다”고 말했다.
검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입업자들이 입는 타격 역시 커진다. 특히 치즈처럼 유통기간이 짧은 식품을 수입하는 업체에는 치명적이다. 가령 유통기간이 25일인 이탈리아산 버팔로 리코타 치즈를 수입한다고 가정하면 생산부터 검사, 통관까지 드는 기간은 짧게 잡아도 18일이다. 이 과정을 다 끝마치더라도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판매가 거의 불가능하다. 치즈가 아닌 다른 식품을 수입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검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물품을 보관하는 보세창고 비용 부담이 커지고 신선도도 떨어진다. 연어처럼 신선도가 생명인 식품을 수입하는 업자는 더욱 애가 탄다.
수입업자들은 검사하기 위해 수거해가는 검체 양에도 불만을 표한다.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위생감시원은 보세창고에 있는 수입식품 일부를 채취해 검사를 의뢰한다. 이때 감시원은 동법 시행규칙에 따라 식품 검체를 수거하는데 그 양이 실제 검사에 필요한 양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검사에 쓴 식품은 검체 반환 요청을 하면 찾아올 수 있으나 판매는 할 수 없다. A 씨는 “와인은 600ml를 가져가는데 500ml 병은 두 병을 가져간다. 그런데 막상 반환받아보면 한 병은 뜯지도 않았다. 뜯은 한 병도 80ml 정도 썼더라”고 하소연했다.
업계에서는 식약처 내에 와인 동호회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는 후문이다. 비싸고 인기를 끄는 와인일수록, 또 연말 전후로 무작위표본검사 대상에 선정되는 비중이 높다는 후문. 평소 검체 반환 요청을 하지 않던 업체가 반환을 요청했을 때 ‘물품을 잃어버렸다’는 답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검사에 드는 비용은 품목당 40만 원 정도인데 이는 수입업자가 부담해야 한다. A 씨가 대표로 있는 수입사는 검사 비용으로만 연간 1억 원을 쓴다고 밝혔다.
#유통기간 따른 ‘패스트트랙’ 도입 필요성 제기
이러한 고충은 소규모 영세사업자에게 집중된다. 대량으로 수입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달리 다양한 품목을 전략으로 삼는 중소업체가 수입에 필요한 검사 과정을 더 많이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검사비용‧보세창고비용·폐기비용·관세 등은 고스란히 소비자가격에 반영된다. 고급 수입식품 시장은 크지 않은데 소비자에게 ‘비싸다’고 외면당하는 때도 많다.
업계에서는 국내 수입식품 검사 시스템을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적지 않다. 유통기간이 짧은 식품을 먼저 검토하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하고 검사 기간을 대폭 줄여달라는 게 핵심이다. 검사 장기화에 따른 모든 비용 부담을 영세업체가 짊어져야 하는 점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안전한 식품을 공급하기 위한 측면은 이해하지만 그 정도가 과하다는 주장이다.
한편으로는 식약처의 문제라기보다는 식품이나 의약품의 안전에 유독 민감한 우리나라 정서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반론도 있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식품위생법이 엄격한 편이다. 불량 수입업자가 계속 나오거나 부적합한 물질이 검출되는 사례가 나와 법이 계속 강화된 것”이라며 “검사에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라고 밝혔다.
식약처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식약처 관계자는 “수거하는 용량이 과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재실험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만약 다시 검사해야 하는데 검체가 부족하면 채취하는 과정을 새로 거쳐야 한다. 이중의 노력이 필요한 셈”이라며 “기간도 최대한 단축하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원칙상 유통기한이 별로 안 남은 식품을 빨리 처리할 수도 없다. 공인된 해외시설에서 인증을 받으면 서류검사를 면제해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 명예교수는 “시료 채취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료 채취가 분석 결과에 미치는 오차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다만 신속한 분석이 필요한 식품을 수입하는 업체는 별도의 요금을 추가로 지불하고 검사를 빨리 받을 수 있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회사나 협회 등 단체를 중심으로 이를 바로잡아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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