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넷플릭스가 성공하면서 OTT(Over The Top, 인터넷으로 보는 영상 서비스) 시장에 디즈니, 애플, 아마존 등이 자체 OTT 서비스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양상이 국내 배달 앱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배달의민족, 배달요기요 등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유통 대기업이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질문 하나. 서울시 서대문구 주민 A 씨가 롯데리아 햄버거 세트를 배달 주문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앱은 몇 가지일까?
우선 롯데리아의 자체배달 앱이 있다. 홈서비스(배달주문)와 퀵오더(매장수령) 두 가지 기능이 있다. 다음으로는 ‘배달의민족(배민)’, ‘요기요’와 같은 배달중개 앱이 있다. 물론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기 위해 클릭했다가 ‘오늘만 3000원’ 할인 행사를 하는 버거킹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롯데리아 일부 지점에서는 소비자를 끌어오기 위해 배달중개 앱에 한해 자체적으로 리뷰 이벤트(리뷰를 남기면 사이드 메뉴를 제공하는 방식)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카카오주문하기, 쿠팡이츠 등 다른 배달중개 앱을 선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롯데지알에스’의 자사브랜드 전용 배달 앱이다. 2월 10일 롯데의 외식기업 ‘롯데지알에스’는 자사 5개 브랜드(롯데리아, 엔제리너스, 크리스피크림 도넛, T.G.I. 프라이데이, 빌라드샬롯)의 배달주문과 매장수령 기능을 담은 앱 ‘롯데잇츠’를 출시했다.
롯데지알에스 관계자는 “앱의 주요 기능은 배송서비스다. 이젠 매출이 배달에서 판가름 난다. 지금은 롯데리아 배달 앱과 병행 운영 중이지만 롯데리아 배달 앱을 곧 없애고 롯데잇츠로 통합할 계획이다. 갑자기 앱이 바뀌면 고객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기간을 두고 전환하자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 롯데잇츠 앱의 프로모션은 본사에서 진행하는 통합 판촉이고, 배달중개 앱상 리뷰 이벤트는 점포별 판촉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롯데가 출시한 ‘자사 브랜드 전용 배달 앱’ 경쟁력 있을까?
‘롯데잇츠’ 앱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출시 10일 만에 다운로드 수 100만을 기록했다. 다양한 프로모션이나 광고를 통한 유입이 실적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반응은 차갑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는 브랜드별 앱을 통합하면서 오류가 잦고 특별한 이점을 체감할 수 없다는 리뷰가 줄을 잇는다. 가장 냉정한 건 “배달중개 앱 대신 이걸 쓸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롯데잇츠’는 ‘배달중개 앱’에 익숙한 소비자를 끌어올 수 있을까? A 씨가 거주하는 서대문구 배달권역 지점은 ‘롯데리아 서대문역점’이다. 배민에 리뷰가 2900여 개, 요기요에 1000여 개다. 롯데잇츠도 출시 직후 사이드메뉴 무료 제공 등 이벤트를 하고 있지만, 배달중개 앱이 자리 잡은 시장에서는 일시적인 프로모션으로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의 롯데지알에스 관계자는 “롯데리아뿐 아니라 다른 브랜드도 배달주문이 늘고 있는 만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보자는 취지에서 앱을 만들었다. 또한 배민, 요기요 같은 배달중개 앱의 수수료가 점주들에게 부담일 수 있으니 자체 브랜드 앱을 통해 이를 완화하고자 했다. 쿠폰 제공, 스탬프 기능 강화 등 경쟁력에 대해서는 고민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시각은 회의적이다. 박성의 진짜유통연구소 소장은 “소비자들은 여러 선택지를 비교해 합리적 선택을 하는 데 익숙해졌다. 자사몰이나 앱은 편의성이 떨어진다. 가격에 특별히 메리트가 없다면 경쟁력이 없다. 롯데가 롯데잇츠 앱을 운영하기 위해 중개 앱에서 자사 브랜드를 빼지 않는 이상 소비자의 선택을 받긴 힘들다. 자사 브랜드 확장 또는 타사 브랜드 입점 여부에 승패가 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선 롯데잇츠가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았다. 점포마다 다르겠지만 직접 전화해 주문하거나 자체 브랜드 앱,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하는 것보다 배달중개 앱을 통한 주문 비율이 월등히 높은 상황에서 ‘굳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다만 롯데의 경우 배달주문이 많은 롯데리아를 갖고 있으니 고려할 만한 선택지였을 수 있다. 내부 푸드코트·급식용 브랜드가 많은 현대나 신세계와는 경우가 좀 다르다”고 말했다.
#미래 보고 투자? 배달 앱 중개하는 배달 앱 등장할 수도
배달시장 성장에 따른 선제 대응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 회장)는 “1인 가구 증가, 코로나19 이슈 등으로 배달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플레이 하고 있어야 기회도 생긴다는 관점에서 전체 파이가 커지니 롯데 입장에서도 손해 볼 장사가 아닐 수 있다. ‘앱 이코노미’가 개화하면서 배달 음식의 객단가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롯데리아를 제외한 타 브랜드들의 배달 시너지 효과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뿐만 아니라 타 대형 유통그룹들도 시장 전환에 각자의 방법으로 대응 중이다. 최근에는 배달대행업체 ‘부릉’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메쉬코리아 지분 매각 예비입찰에 신세계그룹의 이마트가 등판했다. 자체 배달망을 갖추는 대신 전국으로 세를 넓힌 배달대행업체와 본격적으로 손을 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성훈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배달 앱은 제조업과 달리 엄청난 투자나 인프라가 필요하지 않다. 배민·요기요·롯데잇츠 등 배달 앱들의 기술에 큰 차이가 없다. 결국 마케팅이 성패를 가른다. 소비자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라도 순위가 바뀔 수 있는 시장”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성훈 교수는 배달 앱 시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여러 선택지를 모아볼 수 있다는 배민의 장점이 영원히 통하진 않을 것이다. 이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배달 앱을 중개하는 배달 앱이 나타날 수도 있다. 호텔스닷컴, 다방 앱이 예시다. 지금의 배민·요기요가 양분한 시장을 기반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대형 배달중개 앱 몇몇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는 지금의 시장 형태 또한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큰 기업일수록 데이터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자체 앱 구축에 힘쓰는 사례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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