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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군침 흘리는 까닭

기업 인수·투자·공동 개발등 다방면으로 협업…디지털 치료제 개발은 '시기상조'

2020.02.13(Thu) 15:12:58

[비즈한국] 스마트칫솔을 개발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키튼플래닛’은 최근 대형 제약사로부터 협업 제의를 받았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앱을 통해 어린이를 대상으로 디지털 덴탈케어 서비스를 선보인 키튼플래닛은 성인용 서비스로 사업 확장을 염두에 둔 시점에 받은 반가운 제안이다. 최종호 키튼플래닛 대표는 “제약사가 개인이나 병원을 위한 디지털 헬스케어로 사업범위를 확장하려고 할 때 필요한 AR이나 인공지능(AI) 같은 디지털 솔루션을 (우리가) 제공하는 방식으로 (협업이) 진행된다”고 했다.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 A사도 현재 모 제약사와 사업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밝혔다. A사 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진행 단계에 있다”며 “​제약사가 약을 판매할 수 있는 대상은 병원이나 약국에 방문한 환자로 제한적이다. 기기를 활용하면 치료제가 필요할 것 같은 환자를 미리 발굴할 수 있어서 제약사가 협업을 요청해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AI 기반 의료기기 업체 B사 관계자도 “아직 공개할만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항우울제 효능을 예측하는 기기를 개발하고 있어서 관련된 자료를 (제약사에)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군침을 흘리는 제약사들이 크게 늘었다. 신약 개발 과정은 물론 시판 허가를 받은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제약사들은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을 인수하거나 이 기업들과 함께 의료기기나 서비스를 함께 개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A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에 대한 제약사의 인식이 부족했다. 관련된 부서나 전문가들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제약사의 관심이 예전과는 다른게 느껴질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과 협업하려는 국내 제약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 12월 열린 ‘2019 실감콘텐츠 페스티벌’에서 시민들이 가상현실(VR)을 체험하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임상시험 환자 모집 용이…약물 부작용 감소에도 효과적

 

디지털 헬스케어는 헬스케어 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돼 개인의 건강을 관리하는 분야를 일컫는다. 주로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하거나 유전자를 분석하거나 인공지능을 활용해 개인의 건강정보를 수집하고 측정한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질병 진단과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해당 시장은 더욱 주목받는다.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으로는 AI 기술을 이용해 유방암을 판독하는 ‘루닛’, 희귀질환을 진단하는 ‘쓰리빌리언’, 당뇨 등 만성 질환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휴레이포지티브’ 등이 있다.

 

국내 제약사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방식을 원한다. 앞서 지난 7일 GC녹십자는 자회사 GC녹십자헬스케어와 유비케어가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유비케어는 전자의무기록(EMR)을 활용해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사업을 펼치는 기업이다. 제약사 관계자는 “의무기록을 안 쓰는 병원은 없다. 데이터를 이용해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강화하려는 녹십자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보령제약 역시 유비케어 예비입찰에 참여했다. 투자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공동 개발하려는 제약사도 적잖다.

 

이처럼 디지털 헬스케어에 제약사 관심이 높아진 배경에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운영하는 커뮤니티나 기록 데이터를 통해 임상 시험 피험자를 모집하거나 환자군을 정하기 수월해진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90% 정도의 임상시험이 환자모집 실패로 최소 6주간 지연된다. 약물 용기에 센서를 부착해 약물 복용 여부를 알려주는 기기를 개발하는 업체와 제약사가 협력하면 매출이 증가할 여지도 충분하다. 환자가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게 해서 처방 빈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외국 제약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과 손을 잡고 원격 임상시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벨기에 UCB 제약은 원격 임상에 활용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드는 업체인 MC10과 함께 파킨슨병 치료제 임상 시험을 완료했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점검한 것이다. 미국 의료 전문지인 모바일헬스뉴스는 지난 1월 28일 “디지털 진단 도구는 약물 치료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다. 올해는 더 큰 제약사와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간 전략적이고 집중적인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디지털 헬스케어에 제약사 관심이 높아진 배경에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짙다. 우선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운영하는 커뮤니티나 기록 데이터를 통해 임상 시험 피험자를 모집하거나 환자군을 정하기 수월해진다.

 

#제약사와 시너지 통한 성장 잠재력 평가…디지털 치료제는 시기상조

 

관련업계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앞서의 A사 관계자는 “허가가 필요한 의료기기에 대해서도 제약사가 임상 비용을 제공하는 등의 투자가 이뤄질 것 같다. 법에 저촉될 수 있는 부분은 시판이 되기 전 고려해봐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최종호 대표는 “아직 국내 헬스케어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 스타트업들은 홍보와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데 이 부분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껏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성장 속도가 다소 더딘 편이었다. 지난 11월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자체 발간 보고서인 ‘헬스케어 산업 동향’을 통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상위 100개 기업에 국내 업체는 단 한 개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혁신 서비스 도입에 소극적인 의료기관 및 성장이 제한된 시장을 위해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의료시스템 및 규제 개선 등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제약사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과의 협업으로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AR이나 VR 같은 디지털 기술을 질환을 치료하는 약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 FDA(식품의약국)은 지난 2017년 9월 미국 페어테라퓨틱스의 모바일 앱 ‘리셋(reSET)’를 알코올‧코카인‧마리화나 등 물질사용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사 치료 보조 기기로 허가했다.

 

그러나 제약업계에서는 디지털 치료제 개발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 두 곳의 제약사 관계자들은 “디지털 치료제는 처음 들어봤다”고 얘기했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전무는 “미국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얘기가 나왔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관련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얼마나 수익이 날지 예상할 수 없다. 보험 체계와 어떻게 접목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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