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군 복무 경험을 대학교 학점으로 인정하는 제도인 ‘군 복무 학점인정제’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2014년 국방부가 군 복무자 전원에게 학점을 부여하는 정책을 추진했을 때, 시민사회계는 1999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군 가산점제’의 문제를 안고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군 복무 학점인정제는 여러 해 논쟁에 그치다가 현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2018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교육부는 2017년 모든 대학이 학칙에 따라 학교 밖 학습을 학점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면서 뒷받침했다.
최근 서울대학교가 국방부와 협약을 맺으며 다시 이목이 집중됐다. 국방부는 서울대학교와 협약을 맺었으니 적용 대학이 많아질 거라 기대하는 눈치다. 올해는 2018년 협약을 맺은 12개 대학에 더해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12개 대학이 추가돼, 총 24개 대학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협약을 맺은 대학에 다니다가 입대한 장병은 사회봉사나 리더십 등 군 복무 중 축적된 교육적 경험을 각 대학이 정한 학점만큼 환산해 받을 수 있다. 2014년 추진된 정책이 군 복무자 전원에게 대학 학점을 부여하는 내용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국방부도 한발 물러난 셈이다.
2018년 국방부와 협약을 맺은 인하공업전문대학교의 경우 재학 중 군 복무를 완료한 학생을 대상으로 최대 6학점까지 인정해주고 있다. 군 복무 경험이 1년 이내라면 1학점, 1년 이상이라면 2학점을 취득할 수 있고 군 교육훈련, 군 복무 중 수강한 원격강좌 수에 따라 추가로 취득할 수 있다. 인정 학점은 성적증명서에 교양인정 학점으로 표시되며 평점평균 산출 시에는 미반영, 졸업학점에는 반영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교육부·개별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군 복무 학점인정제’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군대를 갔다 왔다는 자체만으로 학점을 부여하는 건 인하공업전문대학교 정도다. 대부분 봉사, 리더십 항목으로 들어간다. 제대 시 경력증명서를 발급하면 군 생활을 하면서 진행한 사회봉사나 자기계발 내역이 나온다. 본인이 다니는 대학에 자원봉사, 양성평등 관련 과목이나 학점이 있고, 군 생활 동안의 경험을 대학에서 인정한다면 학점으로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 가산점제와 달리 미필자의 기회를 박탈하지 않아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존재한다. ‘군 복무 학점인정제’를 향한 지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남성 중에도 군인, 군인 중에도 대학생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 요소가 짙다는 점, ‘보상’ 측면의 정책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중 첫 번째는 ‘군 가산점제’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이 난 맥락과 상통한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의 공직 취임권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군 복무 학점인정제’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의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유사한 문제를 갖는다.
하지만 군 가산점제와 비교해 군 복무 학점인정제는 위헌적 요소가 적다는 게 국방부와 연구자들의 입장이다. 2018년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이 발행한 논문 ‘군 복무 학점인정제도 도입에 대한 헌법적 검토: 군 복무자 지원제도의 요건에 대하여’는 “군 복무 학점인정제는 대학의 자율적 참여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학에 강제가 아니고, 군 가산점제처럼 군 복무자에 대한 혜택이 여성 및 장애인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는 없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군 복무 자체에 대한 ‘보상’이 충분치 않은 것이 근본적 문제
위헌 소지는 적지만 혜택을 받는 파이가 작다는 문제는 남는다. 위의 논문은 “군 복무자 지원제도라고 하기에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군 복무자의 범위가 너무 적고, 혜택의 정도도 미미하다”고도 지적한다. 실제 여러 대학의 SNS 기반 익명 커뮤니티에는 “우리 학교도 군 복무 학점인정제를 도입해달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도입된 대학 수가 너무 적어서 생기는 문제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그동안 여성단체는 해결책으로 군 복무에 대한 급여 현실화, 충분한 인권보장 등을 말해왔다. 국가가 강제로 인력을 동원하면서 그에 대한 명확한 보상체계를 갖고 있지 않으니 곁가지로 둘러가고 있는 모양새다. 기본적 책무를 방기한 채 더해지는 정책들은 오히려 성별 간 임금격차를 늘리는 등 차별을 넓히게 된다”고 말했다.
김형남 군 인권센터 사무국장도 군 복무 자체를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군 복무는 박탈’이라는 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서 주변부를 건드린다는 것. 김 사무국장은 “군 복무 중 사회봉사나 교육에 대해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건 대단히 차별적이라 보기 힘들다. 하지만 군 복무 자체를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건 다르다. 이런 류의 정책이 많지만 메리트가 될 수 없는 이유는 혜택이 아닌 ‘보상’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여전히 군인은 국가의 부품이고 언제 다칠지 모르며, ‘군 병원에 가면 반병신 돼서 나온다’는 말이 통용된다. 이 속에서 보상의 개념으로 정책을 끌고 가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밖에 되지 않는다. 군인의 처우를 개선하는 가운데 어떤 혜택을 더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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