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라임사태로 ‘펀드런(대규모 펀드 자금 회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증권사에게 자산운용사 총수익스와프(TRS) 자금 환매에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TRS 자금이 빠져나간 자산운용사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높아지면 해당 자산운용사의 펀드런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
하지만 TRS 자금 회수에 눈치를 보게 된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의 간섭이 과하다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자산운용사의 펀드 관리·감독 실패를 증권사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펀드런 위기의 배경에 개방형 펀드가 유동화하기 어려운 비유동성 자산에 투자하도록 방관한 금융당국의 관리 방침이 있다는 지적이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월 28일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최근 일부 사모펀드 운용사에 TRS 계약을 통해 대출해준 증권사들이 대규모 환매 조치에 나서면서 생긴 유동성 공급 문제로 해당 운용사의 환매 중단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권사의 역할은 사모펀드 운용 지원과 인큐베이팅을 위한 것인데 해당 취지에 어긋나게 (TRS 자금 회수로) 펀드 유동성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자산운용 업계에 제기되고 있는 펀드런 우려와도 무관하지 않다. 2019년 하반기 라임자산운용에서 1조 5000억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발단이 됐다. 이후 지난 1월 27일 알펜루트자산운용의 1817억 원 규모 펀드가 유동성 부족에 따른 환매 중단 위기에 몰리면서 자산운용사의 연쇄 ‘펀드런’ 가능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특히 알펜루트의 환매 중단 전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가 TRS 자금 회수에 나선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자산운용사의 펀드런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TRS 자금 회수 신중을 주문한 금융당국과 시각이 다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자산운용사의 펀드런 위기 원인을 TRS를 회수한 증권사에서 찾는 느낌이다”면서 “구조적으로 환매가 가능한 개방형 펀드가 유동화 어려운 자산에 대규모 투자하면서 (펀드런 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책임은 증권사가 지는 것 같아 (정부의 메시지가) 다소 의외였다”라고 말했다.
A 증권사 관계자는 “TRS 계약은 기본적으로 대출 거래로 봐야 한다. 대출 담보의 훼손 등 리스크가 발생하면 증권사마다 리스크 관리 기준에 따라 환매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라면서 “금융당국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B 증권사 관계자 역시 “(자산운용사의 펀드런을 막자는) 금융당국의 방향성은 공감한다”면서도 “TRS 자금 성격이 대출이고 거기에 맞는 리스크 관리 기준에 따라 자금이 운용되기 때문에 환매를 결정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메시지와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C 증권사 관계자도 “금융당국의 방침대로 증권사가 TRS 자금 회수에 신중을 기하다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면 배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고 답변했다.
실제 한국투자증권은 금융당국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알펜루트와 맺은 TRS 자금 260억 원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당국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리스크 관리 실패를 증권사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환매를 할 수 있는 개방형 펀드가 유동화 어려운 자산에 투자하도록 방치한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나온다”면서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의 책임을 증권사가 일정 부분 떠 안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금융투자협회와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사모펀드 설정액(412조 4090억 원) 가운데 현금화가 어려운 비유동성 자산을 담은 규모가 절반을 웃돌았다.
박나영 금융소비자연맹 정책개발 팀장은 “금융당국가 증권사에 낸 TRS 자금 회수 신중 메시지는 최종적으로 ‘엔딩유저’인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목소리라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다만 이익을 추구하는 증권사와 금융당국의 입장이 달라 필연적으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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