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가 최초로 확인된 후 국내 첫 환자가 나타나기까지는 약 3년이 걸렸다. 바레인에 다녀온 60대 남성이 입국 2주 후인 2015년 5월 20일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다. 당시만 해도 감염환자의 97.8%가 중동 지역에서 나타나던 상황이라 우리에겐 그저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첫 환자 발생 이후 보건복지부가 ‘메르스 상황 종료’를 선언하기까지 218일 동안 상황은 급변했다. 국내에서만 감염 186명, 사망 38명이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순식간에 ‘세계 2위 메르스 발병국가’가 됐다.
결국 핵심은 ‘방역체계’다. 31일 오후 3시 기준 국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가 11명으로 늘고 30일과 31일 첫 2, 3차 감염자가 연달아 나오며 방역체계에 관심이 집중됐다. 서울 강남과 일산 등지를 활보한 확진자를 왜 공항 검역대에서 걸러내지 못했냐는 비판부터 중국에서 입국한 사람은 물론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을 모두 병원에 격리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체계는 어떻게 작동하고, 메르스 사태 때와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을까. 비즈한국이 방역체계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중국 입국자, 증상 없어도 모두 격리해라?
이번처럼 해외에서 감염병이 발생하면 우선 바이러스 자체가 국내에 유입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때문에 전국 공항과 항만에 있는 국립인천공항검역소 등 13개 검역소에 배치된 검역관들이 입국 단계에서 오염지역에서 입국하는 사람의 건강상태질문서를 검토하고 체온을 측정하며 ‘1차 방역’을 한다. 검역 인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역 과정에서 임상 증상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은 유증상자로 분류돼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에 격리된다. 복지부 산하 기관인 질병관리본부(질본)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은 서울대병원·명지병원·경북대병원·제주대병원 등 29개 병원 161개다.
격리된 사람은 검체검사를 받게 된다. 이후 최종 검사를 담당하는 질본으로부터 ‘양성’ 판정을 받으면 계속 격리돼 치료를 받고 ‘음성’이 나오면 격리 조치가 해제돼 퇴원 절차를 밟는다. 질본은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접촉자에 대해 모니터링을 한다. 30일까지는 모든 코로나 바이러스를 선별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여부를 확인하는 ‘판코로나 검사’가 실시됐는데 진단 결과가 나오기까지 하루에서 이틀이 걸렸다. 31일부터는 질병관리본부와 18개 국립보건환경연구원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특화된 검사법이 시행됐다. 복지부는 “짧으면 6시간 안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항 검역대에서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임상 증상 기준을 토대로 유증상자를 가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해서는 중국 우한을 방문한 이력이 있으면서 37.5도 이상의 열과 호흡기 증상이 모두 있는 사람이 대상이다. 국내 11명의 확진자 중 우한을 다녀온 1번째 확진자는 폐렴 증상이 있어 공항에서 바로 격리됐다. 우한에서 입국한 2, 5번째 확진자는 두 증상 중 하나만 충족해 능동감시자로 분류됐다가 상황이 악화돼 환자가 병원이나 보건소를 통해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다. 감염병이 확산되자 질본은 28일부터 하나의 증상이라도 있으면 유증상자로 분류해 격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우한 등 오염지역을 방문했는데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은 공항 검역대를 무사 통과할 수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우한에서 거주하다가 20일 귀국한 국내 3번째 확진자는 증상이 없어 유증상자나 능동감시자로 분류되지 않았다가 25일 1339 감염병 전문콜센터로 자진 신고한 후 격리됐다. 같은 날 우한에서 귀국한 4번째 확진자 역시 입국 때는 증상이 없었다. 고열과 근육통으로 25일 두 번째 병원 방문 후에서야 보건소에 신고돼 유증상자로 분류됐고 이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7번째 확진자도 무증상 입국자였다.
전문가들은 오염지역에서 입국했는데도 증상이 없는 사람을 모두 격리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한다. 최대 2주의 잠복기 상황에서는 감염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28일부터 오염지역은 중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따라서 지금처럼 오염지역 입국자를 전수조사 해 질본을 비롯한 시·군·구 보건소에서 감시를 철저히 하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적잖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잠복기 상황의 감염은 아직 공식적인 사례가 없다. 바이러스는 증폭돼야 감염된다”고 설명했다. 질본도 무증상 감염자를 격리할 근거가 없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메르스 때와 비교하면…” 방역체계 구멍 뚫렸다고 보기엔 일러
현재까지 세 명의 무증상 입국자가 뒤늦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국내 방역체계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메르스 사태 당시와 비교해보면 대체로 현 방역체계에 문제는 없다고 평가한다. 박기수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는 “무증상 입국자가 잠복기 상태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검역이 뚫렸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사회로 감염된 사례가 아직 없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자가 많았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꼽힌다. 당시 중동 입국자에 대한 건강상태질문서가 강제 징수가 아닌 ‘자진 신고제’였고, 메르스 확진자의 접촉자에 대한 관리가 부실했다. 무엇보다 확진자가 다녀간 기관 등에 대한 정보 공개가 늦어져 감염 확산 방지에 실패한 것이 뼈아팠다. 이번 사태에서는 건강상태질문서가 징구되고 접촉자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 중이다. 또 확진자별 감염·이동 경로도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밀접접촉자 선정과정에 허점이 있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6번째 확진자는 3번째 확진자와 식사를 함께했지만 일상접촉자로 분류됐다. 확진자의 접촉자 중 노출 시간이 길고 위험도가 큰 밀접접촉자는 보건당국의 모니터링만 받는 일상접촉자와 달리 자택에 자가 격리되고 보건소 담당자가 지정된다. 6번째 확진자의 경우 밀접접촉자였지만 외출에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셈이다. 결국 31일 6번째 확진자의 가족 2명에게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6번째 확진자의 접촉자는 현재까지 8명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무엇보다 보건당국·의료기관·환자의 협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기수 교수는 “병원에서는 환자의 (오염지역) 방문 이력 등을 통해 의심환자 신고를, 보건당국은 모니터링을, 환자는 협조를 게을리하지 않았을 때 제대로 방역체계가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기존에 지적이 일었던 부분을 다시금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형준 사무처장은 “역학조사관이 부족하고 격리자를 수용할 공공시설이 없다는 지적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30일 12시 기준 중국에서 7711명의 환자가 발생해 170명이 사망했다. 복지부는 “확진환자가 다녀간 기관에 대해서는 보건소가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우한시 방문 후 14일 이내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발생하면 질병관리본부 1339나 보건소와 상담해달라”며 “일반 국민들도 손 씻기, 기침 예절 준수 등 일상생활에서의 예방수칙을 지켜주고 의료기관에서도 감염관리 조치에 적극 협조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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